구독자 안녕하세요.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이번 주는 유독 주말이 빠르게 지나간 기분이에요. 저만 그런 건 아닐 듯 한데...
이번 주의 특이사항을 꼽자면, 어제부터 좀처럼 잘 작동되지 않는 카카오톡 오류를 단연 첫 번째로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너무 편하게 살았던 걸까요? 어플 하나 문제가 생긴 것뿐인데 일상은 너무 고요하고 연쇄적으로 따르는 오류가 너무 많아 당황했답니다. 모두의 영업일인 내일이 찾아오면 또 어떤 불편함이 따를지 걱정도 되면서, 아날로그 시대를 사는 듯한 기분이 들어 웃음이 나기도 하네요.
오늘 준비한 주제는 '극장 구경'입니다.
생소한 표현이지만 예전엔 영화 보러 가자는 말보다 극장 구경 가자는 말이 흔했대요.
그 정도로 극장에 가는 일이 흔치 않았다는 것을 뜻하겠죠?
특별한 경험이었던 극장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오늘은 그때, 그 극장으로 함께 구경을 가보면 좋겠습니다.
🎥별들의 고향 충무로
극장 구경을 언급하려고 보니, 영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인 '충무로'를 먼저 소개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더라고요. 연극은 대학로 - 영화는 충무로에서 성장하는 것이 어쩐지 정석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걸까요? 그렇다면, 충무로는 언제부터 별들의 고향이 되었을까요?
그 시작은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찾아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충무로의 이름은 '혼마치'였다고 해요. 어감에서 알 수 있듯 당시엔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충무로'라는 이름은 광복 이후 1946년 이순신 장군의 호를 붙여 새롭게 얻은 이름이라고 하네요.
충무로가 왜 영화인들의 메카가 되었냐고 물으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답변은 '사람이 모이는 곳 중엔 땅값이 저렴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 하면 가장 각광받던 장소는 단연 24시간 불야성이던 명동이었는데요. 명동이나 종로는 땅값이 너무 비쌌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근방에 있으면서 땅값은 좀 저렴한 충무로에서 예술 활동을 시작하는 영화인들이 많이 모여들었대요. 영화판으로써 충무로의 전성기는 60년대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영화법이 바뀌기 전까지, 무려 71개의 영화사가 충무로에 있었다고 해요.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제작사가 충무로에서 강남으로 위치를 옮겨 갔지만, 포스터 등을 만들어내던 근방의 인쇄업소들과 영화 소품을 빠르게 납품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오토바이 가게 등 충무로 근방엔 영화 전성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장소들이 아직도 자리하고 있답니다!
명절의 다른 이름은 극장 구경하는 날
그렇다면, "극장 구경 하러 가자!"라는 말을 자주 하는 때는 언제였을까요?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명절인 추석과 설날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었대요. 요즘도 연휴를 대비해서 많은 영화가 개봉을 준비하잖아요? 그 역사가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됐다는 점이 전 인상적이었어요. 연휴에 영화를 보러 가는 건, 대가족이 모여 명절을 준비하고 함께해야 한다는 공식이 깨진 다음에야 흔해진 풍경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50년 전 명절에도 극장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가득했습니다. 다만 오늘날처럼 평화로운 모습은 아니었대요. 정원 이상의 사람들에게 티켓을 판매했기 때문에 극장 안은 이미 만원이었는데 그걸로도 모자라 암표상들이 들끓었다고 해요. 오늘날 웃돈을 주고 파는 콘서트 티켓처럼 영화티켓의 가격을 대폭 올려받기도 했대요. 그러다 보니 상영관은 물론 휴게실 내부까지도 아수라장이었다고 합니다. 지정좌석제가 없던 그 시절에만 볼 수 있던 놀라운 풍경인 것 같아요.
극장 구경하면 이곳! : 서울 대표 극장
그 당시에는 영화관에도 급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류극장 - 개봉관
일류극장은 개봉관인데요. 말 그대로 영화가 처음 나와서 개봉하는 영화관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극장이 동시에 영화를 개봉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 극장들은 단연 그 지역의 가장 중심에 있고 시설도 가장 좋습니다. 서울의 3대 개봉관은 어떤 곳들이 있었을까요?
단성사
단성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영화관입니다. 1907년 일반 극장으로 시작되었으나 1918년 사장이 바뀌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극장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대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사장에게 인수되면서 단성사는 '대륙극장'으로 한 차례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요. 광복 후인 46년 1월 다행히 단성사라는 이름을 되찾습니다. 그러나 한국사의 크나큰 아픔인 한국전쟁을 겪으며 단성사로 대표되는 영화계에도 암흑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모든 것들이 폐허가 되면서 영화를 누릴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어두운 50년대를 보내고 1960년대부터 영화계에는 대부흥기가 찾아옵니다. 그 중심엔 단연 단성사가 있었습니다. ‘역도산’(1965), ‘겨울여자’(1977), ‘장군의 아들’(1990), ‘서편제’(1993) 등 히트작들이 잇달아 단성사에서 개봉했고요. 1993년 4월 단성사에서 처음 상영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194일이라는 개봉관 최장 상영에 관객 113만 명 이상을 기록하면서 한국영화사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도 했답니다. 이렇듯, 한국영화사에 있어 든든한 뿌리 역할을 했던 단성사는 2000년대에 들어서며 여러 이해관계에 존폐 위기를 맞이합니다. 하여, 멀티플렉스로 찢어졌다가 현재는 귀금속 쇼핑센터로 그 모습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다지만 곱씹을수록 씁쓸한 말로인 것은 어쩔 수 없네요.
피카디리
단성사에 비하면 나이가 어립니다. 대한민국 영화사의 황금기인 1960년에 만들어진 극장이거든요. 본래 이름은 서울시네마였는데요. 런던의 예술 거리 '피카디리'를 따서 1962년 상호를 변경했습니다. 1986년에는 극장 앞에 스타 광장이라는 광장을 만들었는데요. 이곳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의 손자국을 찍어두었다고 합니다. 이건 또 할리우드 같지요? 여러모로 외국 거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공간이었네요. 피카디리는 단성사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두 공간은 가까이에 붙어서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고 영화로 대표되는 지역 정체성을 부여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 대표 멀티플렉스 cgv에 인수되어 cgv지점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울극장
서울극장은 특이합니다. 이다음에 소개될 재상영관이었던 '세기극장'을 인수하여 1979년부터 '서울극장'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인데요. 재상영관이 개봉관이 되려면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겠지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극장의 상영관은 하나뿐이었다고 하는데요. 이 서울극장은 최초로 3개의 관을 가진 복합상영관으로 운영되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할리우드 영화를 수입, 상영하여 영화 배급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었대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에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멀티플렉스와 코로나 여파로 인해 2021년 8월 서울극장은 끝내 문을 닫았습니다.
이류극장 - 재상영관
개봉관을 거친 영화는 이류극장인 재상영관으로 옮겨갑니다. 이 영화관에서는 오로지 개봉관을 거쳐 다시 상영되는 영화들만 취급합니다. 위치는 일류극장들 보단 살짝 중심에 빗겨 난 곳에 자리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삼류극장 - 동시상영관
여기서 끝이냐? 아닙니다. 삼류극장이 또 있는데, 여긴 영화를 동시 상영하는 곳이었어요. 영화 한 편 값을 내면 연달아 두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관을 동시상영관이라고 불렀다는데요. 한편 가격에 두 편이라니 얼핏 들으면 좋은 것 같지만... 왜 그랬을까요? 한 편만 팔기엔 안 팔릴 것 같은 영화 두 개를 붙여서 한 편 값이라도 받았던 것 같아요. 여긴 삼류극장이니까요.
삼류라고 하는 워딩에서부터 왠지 모르게 쾌적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드시지요? 실제로도 그랬다고 합니다. 영상 상태는 물론이거니와 관객들 역시도 상영관 내에서 소변을 본다거나 불량청소년들이 떼거지로 들어와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위치 역시 주변에 유흥가나 여인숙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여러모로 영화를 제대로 보기 힘든 곳이었지만,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거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동시 상영관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장소였대요. + 동시 상영 영화 중 하나는 에로영화를 상영해주는 일도 잦았기 때문에 이를 보기 위해 방문하는 청소년들도 제법 많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극장들이 있었다니! 영화 구경이 아니라 극장 구경이라고 표현할만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찾아보면서 아쉬웠던 건 어쩔 수 없이 '그 공간들을 지금은 겪어볼 수 없다.'라는 사실이더라고요. 세월이 흐르며 많은 것들은 사라지는 거라지만, 내가 아쉬워하는 '그것'도 한 때는 누군가가 아쉬워하던 '그것'이 사라진 자리에 세워진 것이라지만, 세월을 안고 속절없이 사라지는 그것들은 늘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이 안타까운 조각들을 조금이라도 포착하기 위해 장아찌를 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사는 경기도 광명엔 요즘 크고 작은 철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잡다한 만물들이 싸여있던 고물상과 정겨운 모습을 한 '수퍼', 노포까진 아니더라도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의 애환을 어느 정도는 머금었을 중년의 가게들이 철근 기둥 사이에 가려져 허물어져 가고 있어요. 여러분의 주변엔 어떤 것들이 시간을 끌어안고 사라지고 있나요? 지킬 순 없다지만 목격자가 되어 잘 보내줄 수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주간 없어질 위기에 처한 풍경들을 눈과 마음에 잘 간직하며 지내보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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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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