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들을 찾아 도쿄에 갔다

오만번째 미도리가 되기 위하여

2026.06.23 | 조회 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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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뜨거운 태양이 늦도록 작열하는 여름날 인사드립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왜 애틋한 것들은 자꾸 사라질까요. 어쩌면 사라져서 더 애틋한 걸까요. 한국 독자들에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더 익숙한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는 재즈바 DUG가 등장합니다. 주인공 와타나베와 미도리는 이곳에서 대낮부터 보드카 토닉을 마셔요. DUG는 실제로 도쿄 신주쿠에 있는 재즈바입니다. 음악을 좋아했던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젊은 시절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해요. 1961년부터 65년의 역사를 써온 DUG가 6월 27일 폐업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 가보지 않으면 나중에 언젠가 도쿄에 갔을 때 빈자리를 보며 오래 아쉬워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40시간의 도쿄 여행을 떠나왔습니다. 온 김에 막연히 도쿄에 가게 된다면 꼭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도 몇 개 달성했어요. 먼저 본 여행의 목적인 DUG 얘기부터 들려드릴게요.

숱한 미도리와 와타나베의 D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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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의 첫인상은 '사람 정말 많다.' 였어요. 방사형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몰려 들어가는 통에 구글맵 보고 서있기가 어렵더라고요. 다행히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DUG가 있었는데요. 저녁 6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매장 밖까지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이정표가 되어 더 찾기 쉬웠어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메운 사람들을 보며 오늘 저녁 먹긴 틀렸구나, 아쉽기도 했지만요.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묘한 연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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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좀 안 되게 기다리자, 자리가 났어요. 대기하면서 벽면에 꽂힌 엽서 몇 개를 골랐습니다. 한 장에 100엔이라는 엽서 네 장을 고르고 현금을 낸 뒤 보드카 토닉을 시켰습니다. 주문서를 받아적고 돌아서려는 점원에게 다급히 '나마비루 구다사이'를 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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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 흉내는 내고 싶은데 제가 또 진짜 미도리는 아니잖아요. 갈증이 나서 일단 맥주를 좀 마시고 싶었거든요. 점원은 코스터를 하나 더 깔아주며 '굿 초이스!'라고 말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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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 토닉과 에비스 맥주를 거머쥐니 권위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아까 산 엽서 네 장 중 가장 활기찬 사진이 인쇄된 엽서에 편지를 썼습니다. 수신자는 같이 오기로 했지만 아쉽게 오지 못한 친구입니다. 가장 먼 거리를 연결하는 블루투스는 어쩌면 엽서일지도 모르겠어요.

흡연이 자유로운 DUG 내에서 참 많은 사람이 담배를 즐기고 있었는데요. 그중 인상적이었던 건 파이프로 담배를 태우는 할아버지였어요.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늘어선 인파에 한 잔만 마시고 나가야겠다 싶었는데 기어이 보드카 토닉을 한 잔 더 마시고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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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 때보다 더 많아진 대기 줄을 보며 이들은 오늘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건져서 돌아갈까 궁금해졌습니다.

문 닫는 DUG에 굳이 가야 할 정도로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좋아하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그렇지 않아요. 다만, '무라카미 하루키'와 '상실의 시대'라는 코드를 좋아해요. 그런 거 있잖아요. 1917년 이광수의 ⟪무정⟫이 발표된 뒤에 사람들은 다 팔에 ⟪무정⟫을 들고 다녔다는 얘기, 전도연, 한석규 주연의 영화 ⟪접속⟫이 유행하고 난 뒤엔 PC통신 이름으로 여인과 해피엔드를 쓰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아졌다는 얘기.

작품을 넘어 문화가 된 것들을 좇는 것이 재밌습니다. DUG가 사라지기 전에, 오만 번째 미도리가 되어보고 싶었달까요.

그런데 사실 DUG는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간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신주쿠가 아니라 니혼바시였거든요.

이미 80년 전에 세상을 떠난 한 시인이 마지막으로 먹고 싶어 했던 멜론을 찾아서요.

그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서 들려드릴게요.

추신 : 하루키를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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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는 사라지지만 서울 한복판에 하루키의 족적이 깊게 패어있습니다.

플랫폼엘에서 전시 '하루키를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열리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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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월 2일까지는 하루키의 취향과 문장 그리고 하루키를 사랑하는 하루키스트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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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 나와 같은 문장에 밑줄 긋고 가슴 설레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미소 짓고 싶은 여러분이라면 한번 꼭 가보세요! 굿즈샵이 어질어질하게 잘 빠졌으니까 충동구매 주의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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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무더운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제철의 감각 놓치지 않는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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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쿨한생각의 프로필 이미지

    쿨한생각

    0
    1일 전

    문득 그시절의 돌격대 에게 잘 살고 있는지 안부 전화라도 한통 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린라이트 였지만 그때는 내가 적록색맹인 시절에게도 안부를 .. ^^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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