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밥으로 하시겠어요. 빵으로 하시겠어요?

패밀리레스토랑의 원조! 경양식집

2023.03.06 | 조회 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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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직접 공수한 케케묵은 낭만 장아찌를 잔-뜩 퍼서 댁의 편지함에 보내드려요.

구독자, 안녕하세요! 봄기운이 가득한 경칩에 돌아온 장아지 인사드립니다. 지난주, 제가 한걱정을 가지고 편지를 마무리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저! 잘 마치고 돌아왔어요! 100퍼센트 만족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분의 도움 덕분에 무사히 마지막 프로젝트까지 자알 마치고 자유로운 백수의 몸으로 여러분께 다시 편지합니다. 

제 자유,,, 느껴지시나요?
제 자유,,, 느껴지시나요?

제 퇴사를 사랑하는 동료들은 '졸업'에 비유해주었어요. 그리고 잘 졸업한 사람들은 꽃을 받아야 한다며 꽃다발을 주었는데요. 오랜만에 꽃다발을 받고 잊고 있던 졸업의 감각을 느껴보니까 모름지기 졸업했으면 외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동 와장창 인가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어요.

잉글랜드 돈가스 [출처: 문화뉴스]
잉글랜드 돈가스 [출처: 문화뉴스]

그래서, '졸업'하면 떠오르는 외식 메뉴... 짜장면이 사실 제일 먼저 떠올랐지만 이건 이삿날도 먹고 이래도 먹고 저래도 먹고 너무 대중적인 듯하여 지금은 자취를 감추는 추세이지만 분명 우리를 설레게 했던 가벼운 양식, 경양식을 오늘의 주제로 담아 보았습니다.

백 년도 더 된 경양식의 역사

일제강점기 대중잡지 '별건곤'에 나온 시대적 풍경 꼴불견 대회(왼쪽)과 식당 메뉴판의 이름들을 꼼꼼히 받아 적고 있는 학생의 모습(오른쪽) [출처: 휴머니스트]
일제강점기 대중잡지 '별건곤'에 나온 시대적 풍경 꼴불견 대회(왼쪽)과 식당 메뉴판의 이름들을 꼼꼼히 받아 적고 있는 학생의 모습(오른쪽) [출처: 휴머니스트]

경양식이 한반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일본의 영향이 컸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문물을 다수 받아들인 상태였는데요. 제대로 한 상 차려놓고 양식으로 먹긴 좀 복잡하지만, 보급형으로 기분은 낼 수 있는 양식이라는 의미로 경양식(輕洋食)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이 경양식이 조선에도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밥으로 하시겠어요? 빵으로 하시겠어요?'

양식이 일본을 스쳐 들어오면서 경양식은 일본의 입맛에 맞게 변화를 겪기도 했습니다. 글 쓰는 요리사로 잘 알려진 박찬일 셰프는 그의 칼럼인 푸드 오디세이에서 우리가 경양식 집에서 자주 듣던 밥과 빵 중 선택할 수 있는 옵션도 일본에 의해 개량된 것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은 빵보다 밥을 훨-씬 선호했거든요. 깨가 뿌려진 밥과 함께 나오는 단무지 역시 일본에 의해 한차례 변화한 형태의 양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예시예요. 

1920년대에 조선 땅에 들어온 경양식은 그때부터 상류층이 누리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는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이상의 소설 '날개' 속에서도 드러나고 있어요.

“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 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

-이상 '날개' 중

'날개'의 주인공이 몇 번이고 메뉴를 읽는 이 식당이 바로 조선 경양식 레스토랑의 메뉴판이었다고 하는데요. 여러분 그거 아세요? 이상의 날개에 나온 이 레스토랑, 2021년까지만 해도 영업하던 식당이었습니다.

경양식 대표주자, 서울역 그릴

서울역 그릴 [출처: 연합뉴스]
서울역 그릴 [출처: 연합뉴스]

1925년부터 (구)서울역사 2층에서 운영된 '서울역 그릴'이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인데요. 이곳은 서울역 철도청의 소유로 운영되었으며 당시의 많은 고위 간부들이 이용하던 고급 식당이었다고 합니다. 그 인기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까지도 계속 이어졌고요. 무려 1970년대까지 5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괜찮은 한 끼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습니다.

과거 서울역 그릴의 모습 [출처: 여성경제신문 / 국가기록원 CET0097609]
과거 서울역 그릴의 모습 [출처: 여성경제신문 / 국가기록원 CET0097609]

인기가 높아지면서 분점이 생겨나기도 했었는데요 80년대로 넘어가면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플라자호텔에 소유권이 넘어가는 역사의 부침도 겪었습니다. 오랜 시간 주인이 바뀌던 '서울역 그릴'은 2011년 새로 지은 서울역 4층에 새롭게 부활하며 굴곡 있는 역사 속에서도 너끈한 힘을 보여주었는데요. 격동적인 역사를 살아낸 최초의 경양식 레스토랑도 유례없던 전염병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재정 악화가 계속되던 서울역 그릴은 결국 100년의 역사를 몇 년 남기지 않았던 2021년 기나긴 역사를 뒤로하고 우리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릴이 있던 자리엔 또 다른 식당이 지어질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그릴의 뒤를 이어 어떤 식당이 자리 잡게 될지 아쉬운 만큼 궁금해지네요.

7080 외식하면, 경양식🍽

일제강점기, 경양식이 고위 간부들에게 허락되는 음식이었다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서민층에도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경양식 레스토랑이 동네 곳곳에 자리 잡게 되고 기념일 외식하면 부동의 1등을 차지하던 중국집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기 시작하지요. 다른 음식보다야 비싸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소위 칼질하러 갈 수 있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였습니다. 나비넥타이를 하고 수프를 내어주는 웨이터들도 고급요리를 먹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데에 한 몫 했지요.

지점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애피타이저로 수프가 나왔고 그 뒤엔 메인 메뉴가 선택한 빵 혹은 밥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후식으로 티나 커피를 내어주는 곳들도 있었고요. 메인 메뉴의 가짓수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건 돈가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 오므라이스였지요. '정식'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참신한 메뉴들도 이따금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나열된 메뉴들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경양식이라지만 오늘날 양식보다 분식에 가까워진 메뉴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사실이 오늘날 경양식의 자리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요. 70, 80년대에 인기를 끌던 경양식은 진짜 양식으로 대표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미국에서 들어온 패밀리레스토랑이 인기를 끌면서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쉽게 만들 수 있는 특징으로 김밥천국과 같은 분식 메뉴로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게 되지요. 

그럼에도 비교 불가한 경양식 레스토랑의 무드

찾는 사람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경양식 레스토랑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주택에 살았던 우리 집 바로 옆에도 낮에는 경양식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다가 저녁이 되면 호프로 변신하는 식당이 있었는데요.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이사를 했을 땐 간판 불빛이 들어오는 걸 봤던 기억이 있는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자취를 감췄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경양식 레스토랑이 소렌토, 솔레미오, 베니건스, 아웃백에 밀려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는 말은 귀하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런데도 전국각지에는 경양식 레스토랑의 무드를 간직하며 운영되는 식당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식당들을 소개해드릴게요!

잉글랜드 왕돈까스

잉글랜드 왕돈가스 [출처: 문화뉴스]
잉글랜드 왕돈가스 [출처: 문화뉴스]

첫 번째 장소는 구도심의 낭만을 간직한 인천에 있습니다. 레트로 무드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이, 정환이 가족의 외식 장소로도 등장했던 장소인데요. 과자 봉지 하나까지 제대로 고증해내어 디테일한 추억을 소환했던 응답하라 제작진이 섭외했을 정도니, 시간여행하기 이만한 장소도 없을 것 같네요. 주의하실 점은, 모두가 그 경험을 원하는 관계로 갈 때마다 엄청난 대기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 90번길 7 혜성빌딩 2층

032-772-7266

대표메뉴 : 잉글랜드 돈까스(9,500원)

에버그린

에버그린 돈가스 [출처: 내일신문]
에버그린 돈가스 [출처: 내일신문]

다음 경양식 레스토랑은 안양에 있습니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도 등장했던 맛집이라고 하는데요. 과거의 무드보다는 과거의 맛을 간직한 채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싶어요. 기름진 돈가스 먹다 보면 김치, 단무지, 샐러드 더 먹고 싶을 수 있잖아요. 직접 갖다먹으라고 아예 셀프바를 만들어놨습니다. 밥도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다고 하니까요. 경양식집의 무드보다 특유의 맛이 그리우신 분들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네요. 주의하실 점은 여기도 대기 줄은 장난 아니라고 합니다. 매스컴의 힘이 새삼 대단한 것 같아요.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인덕원로 29-16

031-425-4359

대표메뉴 : 에버그린 돈가스 정식 (12,000원)

다원 레스토랑

다음 레스토랑은 서울 등촌역 부근에 있습니다. 32년째 한 자리를 지키며 운영되고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레트로 끝판왕' 같은 표현으로 이 장소를 수식하고 있는 걸 보면 세월을 머금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계단과 체리 색 테이블은 얼핏 보더라도 그 시절 경양식집을 연상케 하는데요. 특별한 게 여긴 셀프 계란후라이 바가 있다고 합니다. 찐계란 아니고 후라이긴 하지만.... 계란을 갖다 먹을 수 있다니까 괜히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렇습니다. 

서울특별시 강서구 공항대로 65길 1-5

02-3665-3600

대표메뉴 : 안심+돈까스 (20,000원)

장아지의 경양식 : 잔디불

레트로의 장소화 '잔디불' 외관 [출처: 장아지]
레트로의 장소화 '잔디불' 외관 [출처: 장아지]

마지막은 회사를 졸업한 제가, 동료들과 함께 다녀온 외식장소! 도봉구에 있는 경양식집 잔디불을 소개하겠습니다. 정문 앞에서부터 연신 '우와'를 외쳤습니다. 정말 시간이 멈춰있는 곳 같았어요. 1988년부터 운영되었다고 하니 정말, <응답하라 1988>이죠? 들어설 때 나던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어요. 난로 냄새라 그래야 하나요? 정말 옛날에 엄마랑 갔던 경양식집에서 나던 냄새가 솔솔 나더라고요. 

정다운 친절 [출처: 장아지]
정다운 친절 [출처: 장아지]

우리의 선택은 돈가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를 모두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정식이었습니다. 나비넥타이를 한 웨이터는 없었지만, 여자 사장님께서 냅킨을 깔고 포크, 숟가락, 나이프를 놓아주셨어요. 

얼마 뒤 크림수프가 들어왔습니다. 수프 하나 먹으면서도 각자가 가진 경양식 레스토랑의 추억을 말하느라 바빴어요.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예전에 수프 cf에서 빵도 수프에 찍어 먹고 김밥도 수프에 찍어 먹길래 김밥 싸서 수프에 찍어 먹었다던 동료의 추억이었습니다. 저 진짜 이거 뭔 광고영상인지 너무 궁금한데 혹시 기억하시는 분 계신가요?

경양식 원정대 [출처: 장아지] 
경양식 원정대 [출처: 장아지] 

얼마 뒤, 우리에게 놓인 정식 세 개. 정말 더하고 뺄 것 없이 정식이었고요. 예상외로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생선가스가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 타르타르소스라 그래야 하나요? 너무 맛있었어요. 아! 빵과 밥 중 선택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무조건 밥으로 나오더라고요.

이건 여담이지만... 제가 김치볶음밥을 진짜 좋아하는데 메뉴판에 김치볶음밥이 있어서 지금 주문되냐고 여쭤봤거든요. 사실 메뉴판에 있으면 주문이 되어야 맞긴 하잖아요? 혹시 어려우실까 싶어서... "사장님 혹시 지금 김치볶음밥 될까요?" 여쭤봤는데, 사장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힘들죠." 그 멘트가 너무 정중한데 시크하고 근데 왜 힘든 건지 이해는 안 가고 너무 뻘하게 터져서 그 이후로 뻑하면 우린 '아무래도 힘들죠'로 메기고 받고 있습니다.

정식 가격은 8,000원이었는데요. 저렴한 가격으로 추억의 맛과 장소를 선물 받은 것 같아서 재밌었어요. 위생이 아주 중요하다면 추천해 드리지는 않습니다. 친절이 아주 중요하신 분도 추천해 드리기는 조심스러워요. 그치만 그 시절 경양식집의 맛과, 멋 그리고 내음이 그리우신 분들이라면 더없이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11시 30분 오픈이고 저희는 오픈런 했다고 생각했는데 1팀이 먼저 들어와 있었고요. 저희 다 먹고 나갈 때쯤 다른 팀이 또 들어오더라고요. 

인상 깊었던 잔디불 도배 계단 [출처: 장아지]
인상 깊었던 잔디불 도배 계단 [출처: 장아지]

사라져서 귀해진 레트로의 대명사, 경양식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구나!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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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원조! 칼질의 재미를 선사했던 경양식을 담아 편지했습니다. 이따금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뭔가 느끼면 벅찬 감정, 아시나요? 사라진 '서울역 그릴'에 못 가본 게 전 너무 아쉬워요. 모든 건 기어코 과거가 되므로 지금은 있는 잉글랜드 왕돈가스도, 다원 레스토랑도, 에버그린도, 잔디불도 언젠간 사라질 수 있습니다. 과거를 머금은 곳들이 사라지기 전에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일! 제가 장아지를 발행하며 전하고 싶은 가장 궁극적인 메시지입니다. 지나버렸지만 의미 있는 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더 많은 정보를 담아오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여기서 다시 만나요!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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