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인가 주변에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연휴가 많은 5월에는 긴 여행들을 다녀오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과일 값이 치솟고, 물가가 오르고, 사는 일은 분명 고달파졌는데, 국내로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해외여행은 한번 가면 어찌 됐든 큰 비용이 드는 일이다. 주변에 있는 지인들은 그래도 여행 갈 만한 상황이라는 얘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좀 서글퍼지기는 한다.
나는 원래 주말이나 쉬는 날이 오면 집에 있지 않고 어디라도 나가는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만날 약속을 하거나, 가까운 공원 등을 걷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미술관 같은 곳을 가거나 했다. 하다못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나가기라도 했다. 왠지 쉬는 날 집에서 있으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제대로 쉬는 것도 아니어서 시간이 아까웠다.
그랬던 내가 최근 1~2년 동안 쉬는 날이 되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몸이 귀찮은 것도 있고, 조금은 자발적으로 집에 머물러 있기도 했다. 집 정돈하는 일들을 하면서 그 자체를 즐길 때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원래의 내 일상은 아니다. 아직도 나는 주말이면 바깥 외출을 꿈꾼다. 5월 1일 노동절에도 집에서 쉬었고, 주말에도 집에 있었다. 5월 5일 어린이날엔 비가 종일 와서 어딜 나가지도 못했다.
‘아니, 이건 좀 너무 하잖아!’ 나는 5월 6일에는 기필코 밖으로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5월 6일 월요일. 이날은 일요일이었던 어린이날의 대체휴무일이었다. 밖은 어제에 이어 비가 왔다. 비 와도 상관없다. 이런 날에 가기 좋은 곳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선유도 공원이다. 선유도 공원은 우리 집에서 20분 정도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 게다가 비 오는 5월이면 초록이 싱싱한 때다. 사람들도 없기 때문에 호젓하고 차분한 선유도를 오롯이 즐길 수 있다. 갑자기 에너지가 샘솟는 듯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나는 혹시나 하여 깔개를 준비했다. 텀블러에 따뜻한 커피도 담았다.
선유도에 도착하니, 예상했던 대로 사람들이 적고, 한적하고, 조용했다. 더운 날씨로 데워졌던 공기가 비를 뿌리고 나니 시원했다. 하늘은 깨끗하고, 초록은 물기를 가득 머금었다. 선유도 공원은 생기가 넘쳤고, 아름다웠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위안을 받은 느낌이었다.
선유도 공원은 평상시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마음만 내키면 자주 올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한참 만에 오게 되었다.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걸까. 돈이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돈이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여행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무엇이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수년 전, 몸과 마음이 아팠을 때 선유도와 근처의 한강공원을 거의 매일 드나들면서 치유를 받았었다. 딱 이맘때였던 것 같다. 돗자리를 펼쳐 놓고 누워서 내 눈에 보이는 만큼의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 이후에도 자주 선유도 공원을 찾았다. 아주 이른 새벽에도 왔고, 아주 늦은 밤에도 왔었다. 꽃이 필 때도 왔고, 낙엽이 구를 때도 왔고, 바람이 불 때도, 비가 올 때도 왔다. 혼자 오기도 하고, 누군가와 같이 오기도 하고, 반려견 몽실이와 오기도 했다. 올 때마다 선유도 공원은 다채로운 모습이지만, 한결같이 편안하게 나를 반겼다.
오늘도 나는 선유도 공원에 왔다. 공원을 돌며 충분히 눈인사를 한 다음, 내가 좋아하는 흔들 그네가 있는 곳으로 갔다. 가랑비가 살살 왔지만 나는 갖고 온 작은 돗자리를 흔들 그네에 깔고, 혼자 자리를 다 차지한 다음,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발을 굴리고 또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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