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추락 혹은 도착

Story. ⟪인간의 대지⟫ 생텍쥐페리

2023.06.04 | 조회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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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알렉산드리아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이야기 보관소 【알렉산드리아】

가끔, 필요할 때가 있다. 

하루의 끝.

시계마저 지친 그 자리에 설 때.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마음 속을 아무리 헤쳐봐도, 찾고 싶은 것을 손에 잡지 못할 때. 

아니,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을 때.

 

그럴때.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놓쳐버린.

혹은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곳의 문을 연다. 

 

이야기를 찾으러.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으러. 이곳에 온다.


 집 밖 마당에는 할아버지가 심어두었다는 매실나무가 있었다. 어린시절 나는 그 나무를 매화나무라 불렀다. 매실 열매보다 앞서 피는 매화꽃이 좋았기 때문에 매화나무라 불렀다. 마당이 그리 크지 않아 세 그루 정도가 전부여서 흐드러진다거나 빼곡하다거나 하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봄이면 한참을 매화나무만 바라보곤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무용한건 할아버지와 똑같다며 핀잔을 주었다. 지금이라면 "낭만적인거야!" 라고 되받아쳤을텐데. 그때의 나는 낭만 같은 단어까진 알지 못했다.

 엄마는 매화보다는 매실을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엄마의 말에 비춰보면 당신께서 매실을 사랑하는 이유는 '실용적'이어서 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매화가 아무리 예뻐봤자 감상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물론 감상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매화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매화는 굉장히 중요하다. 종족의 번식은 물론이고, 매화가 피고 또 져야 매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는 매화가 떨어지는 순간을 사랑했고, 나는 바닥에 쌓인 매화를 보며 입을 삐죽 거렸다. 

 "이게 시작이란다." 

 엄마는 부엌 창고에 가게에서 사온 설탕을 쌓아두며 내게 말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매화가 이렇게 떨어져버렸는데. 시작은 무슨? 그때는 어렴풋이 여름을 말하는 건가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매실의.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매실청의 시작이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매실을 가지고 온갖 음식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특기였던 것은 시디 신 매실 장아찌와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매실청이었다. 매화가 떨어지고 매실이 열리고 그것이 또 떨어져야 완성 되는 매실청. 얼음 가득한 유리잔에 탄산수를 따르고 매실청을 진하다 싶을 정도로 부은 뒤, 잘 저으면 여름을 나는데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툇마루에 앉아 얼굴을 가릴만큼 큰 잔에 잔뜩 담은 매실음료를 마실때면 엄마가 곁에 와 앉았다. 

 "맛있어?"

  입에서 잔을 떼지도 않은 채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맛있다는 최대치의 표현.

 "그렇게 맛있게 먹을 거면서 꽃 떨어질 땐 뭘 그리 울었대." 

 매실청 먹는 나를 놀리는 것은 엄마의 늦여름 취미생활이었다. 그럴만도 한것이 매화가 떨어질때면 나는 괜스레 눈물이 났다. 쿵! 하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뿐. 내려앉을 뿐인데도. 그렇게 내려앉은 후에도 목련처럼 지저분해 지거나 색이 흩어지는 것도 아닌데도. 낙화를 보면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 무심한 중력 같으니."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날을 기억한다. 학교 행사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하교했던 그 날. 무슨 횡재냐 싶어 친구들과 매일 가던 농구장으로 뛰어가던 날. 운에 운이 더해진 날인지, 벤치에 떨어진 만 원 한 장을 주워 친구들과 음료수를 사먹던 날. 그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회사도 일찍 끝나는 날이었을까? 공원에는 우리보다 먼저 그곳을 서성이는 어른들이 있었다. 죄다 양복차림 이었고 내려앉은 어깨가 눈에 띄었다. 이미 몇 게임은 연속으로 진 선수들 같았다. 그들은 벤치 이곳저곳에 앉아서 하릴없는 눈빛으로 전방 혹은 바닥을 응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농구를 시작했다. 실력이라 말할만한 것도 없던 우리의 플레이에 아저씨들은 무슨 코미디 프로그램 보듯이 웃었다. 그러다 한 어른이 다가오더니, "눈 감고 자유투 넣기 내기할래?" 라며 우리를 도발했고,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는 소년의 소신으로 대결을 받아들였다.

 몇 번의 실패와 마지막 기회. 나는 만화책에서 본것처럼 마음음 가다듬고 온갖 이미지 트레이닝을 마친 후, 슛. 성공이었다. 환호하는 우리들과 달리 내기를 하자던 어른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고작 몇 천원에 불과했던 내기인데 왜 저럴까? 싶었지만 그저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구나...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이다.

 아무튼 뜻하지 않은 돈이 생긴 우리는 적당히 농구를 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편의점에도 양복입은 아저씨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평소만큼의 삼각김밥이 없었고, 우리는 컵라면을 하나씩 사서 먹었다. 사발면이 익기까지 3분. 국물까지 마시는데 3분. 그 시간 동안공원에 있던 아저씨들이 편의점을 들렀는데, 내기를 걸어온 그 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열 받아서 자유투 연습하고 있으려나?"

 별 생각없이 라면 국물을 마시던 내 귀에 얼핏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야, 저기 너희 아빠 아니냐?"

 나는 국물을 마저 마시던 터라 보지 못했다.

 


 

"뭐 찾으시는 이야기라도 있으신가요?"

낡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의뢰인. D는 그에게 가 친절히 물었다. 의뢰인은 "아니, 뭐..." 라며 쭈뼛거렸고, D는 언제나 그렇듯 적당한 미소로 응대했다.

"찾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마음껏 꺼내 보시고, 없다면 의뢰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의뢰인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몇 권의 책을 꺼냈다 넣기를 반복. 그때마다 한 숨을 내쉬길 반복. 나와 D의 눈치 보기를 반복. 그러다 이야기 자리에 앉아 펜을 들었다. 평일 열 한 시에 찾아온 저 손님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필요할까?

 


 

- 이름 : 이철민

- 기분 : 절망

- 잃어버린 것 :

평일의 이른 시각. 양복을 입고 이곳을 찾은 저를 보며 아마 예상하셨겠죠. 맞습니다. 지난 주, 저는 명예퇴직을 당했습니다. 평생직장 같은 거 없다. 임원 된다고 달라지는 거 하나 없다. 아니, 임원은 계약직이니 더 불안한거다. 퇴직금은 함부로 쓰는 거 아니다. 괜히 사업 생각은 하지도 마라. 주식? 코인? 그래 그런 게 나을지도 모른다. 다 됐고, 빚 갚을 때까지만 버틴 다음에 조금씩만 쓰면서 살아라. 안쓰는게 버는거다...

퇴직이 결정되고, 얼마나 많은 소릴 들었는지 모릅니다. 남의 일이니까 할 수 있는 말들. 자신에겐 닥치지 않을 미래라 생각하니 내뱉을 수 있는 말들. 그런 말들에 갇혀 회사생활 30년을 정리했습니다. 그것을 당당히 집에 알릴 자신은 없었습니다. 아직 대학도 안 간 아이들과, 저를 만난 뒤 하루도 빠짐없이 고군분투 하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릴 용기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죠. 아무리 볼을 꼬집어봐도 꿈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인하는 게 전부니까요.

오늘도 그랬습니다. 관성처럼 일어나 관성처럼 옷을 입고 관성처럼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이렇게 걷다보면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것처럼 과거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어. 이렇게 걷다보면 어쩌다 만난 귀인이 근사한 제안을 해주지 않을까 싶어. 아니. 이렇게 앞으로 가지 않으면 페달을 멈춘 자전거처럼 고꾸라질까 두려워. 계속 걸었습니다. 덕분에 넘어지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걸을 수만은 없는 일이겠죠. 언젠가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말해야 할 것이며, 또 언젠가는 남은 생을 위해 새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도무지 힘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아무리 채워보려 해도 용기가 빠져나간 자리는 헛헛하기만 합니다. 든든한 국밥 한그릇까진 아니더라도. 시원한 냉수 한 잔 정도는 마셔얄 것 같은데... 그래야 힘 좀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걸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혹시 이곳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내 연료통에 기름이 되어줄 이야기를 채워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해 봅니다.

 


 

"중력은 참 무심하죠?"

D의 말에 아주 오래 전, 괜스레 멋있게 들리던 '중력'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지. 특히 저렇게 상승하던 사람들에게는..."

의뢰인은 상승하고 있었다. 지난 30년 동안 눈에 보일만큼의 수직상승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또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높이에의 감각이 무뎌질 때쯤. 하강이란 단어를 잊어갈 때쯤. 그때쯤, 무심한 중력은 찾아온다.

"차라리 적당히 올라갈 걸. 차라리 오르지 말 걸. 그랬다면 떨어질 일도 없었을 텐데. 그쵸?"

우린 모두 D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상승의 순간.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그 순간. 그 유쾌한 감각을 기억하는 이라면 포기할 수 없다. 상승의 순간을. 그리고 그것은 재밌는 게임처럼 중독성이 강해, 한 판 더. 한 판만 더. 끝없이 갈구하게 된다. 더 두둑해지는 월급이나 주변의 대우 같은 것은 그 기분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결국 우린 모두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 문제는 그거다. 중력을 벗어나려면 우주까지 올라야 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육십억 인구 중에서도 선택받은 몇 명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모두 '추락'이라는 라스트 씬을 먼저 찍은 이들이라는 것이다. 의뢰인도, D도, 나도. 그렇다.

"어떤 이야기 찾아줄 거예요?"

"글쎄. 일단 목이 마르다고 하시니... 냉수 한 잔 부터 드려야겠죠?"

"냉수? 물 좀 사올까요?"

"어유~ 물질만능주의. 뭐든 사서 해결하려는 버릇! 고쳐보도록 해요!"

"아니...! 그게 아니고... 물이 필요하시다니까... 그런거잖아요. 그럼 Y는 어디서 찾아올 건데요? 그 냉수?"

"냉수라면 거기지."

"거기 어디?"

"사하라."

 


 

"우리는 떠돌이별 위에 살고 있다. 때로 비행기 덕에 우리는 이 별이 드러내는 제 기원을 볼 수 있다. 달과 관계있는 늪이 숨은 혈연관계를 드러낼 때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생텍쥐페리는 비행기에 올라 하늘을 유영하는 상승을 만끽한 후, 죽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 높은 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낮의 전투기 조종사와 밤의 우편배달부로 하늘을 거닐며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것은 온갖 철학을 가져와야 하는 형이상학적인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사막을 헤매다 절망에 빠졌을 때, 우리는 별안간 전방 좌측 수평선 위에 반짝이는 점 하나를 보았다. 나는 격렬한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비행장일 수밖에 없었다. 비행장의 신호등 외에는 어떤 가능성도 없었다. 왜냐하면 사하라 사막은 밤이면 완전히 빛이 꺼져 거대한 죽음의 영토가 되기 때문이다."

 

그랬다. 하늘과 상승을 동경하는 이여도 그들의 최종 종착지는 어느 비행장의 불빛. 삶을 담보로 하는 가장 낮은 곳의 대지였다. 어쩌면 생텍쥐페리는 믿고 있었던 것이리라. 자신이 아무리 상승을 한다한들. 대지가 자신을 포기할 리는 없다고. 삶이 자신을 내버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물론 그런 기대는 승리를 담보하지 않는 도박과도 비슷한 경향이 있어 완전히 기대를 져버릴 때가 있다.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 역시 판돈을 잘못 건 참이었다.

가장 높은 하늘에서 가장 낮은 모래의 바닥에 떨어진 생텍쥐페리. 그의 곁에는 더는 상승하지 못하는 고장 난 고철덩어리가 요란한 소리와 냄새를 내고 있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래 뿐인, 출구를 아는 이들에게는 황홀한. 허나 출구를 모르는 이들에겐 지옥의 문과도 같은 사막에서 불행히도 그는 출구가 쓰여진 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순간 몇 번의 심경 변화를 겪게 된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라 불리는 것인데, 처음엔 부정이다. 이곳은 사막이 아니고, 나는 불시착한 것이 아니다. 조금만 걸으면 비행장이 보일테고,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오아시스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현실을 깨닫고, 그때부터는 분노의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화를 낸다한들 목만 마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다음은 타협이다. 허나 타협할 대상이 없다면 어떨까. 그때부터는 우울에 빠진다. 그리고 최종단계는 수용. 즉, 받아들임이다.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 역시 이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다섯 단계 중, 그는 한 단계를 더 추가하는데, 그것은 바로 '상상'이다. 예를 들면 우주 아주 작은 별에 사는 왕자를 만나는 것과 같은.

"이 물건은 뭐야?"

"그냥 물건이 아니야. 날아다녀. 비행기야. 내 비행기."

나는 그에게 날아다닌다고 말하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가 소리쳤다.

"뭐라고! 그럼 하늘에서 떨어진 거네!"

"그렇지." 나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아! 재미있는걸!"

생텍쥐페리의 상상 속 어린 왕자는 '추락'이나 '불시착' 같은 단어를 모르는 것인지, 알지만 그조차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하는 것인지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 하품을 하면 방 안의 모든 이가 하품을 연이어 하는 것처럼, 생텍쥐페리는 상상 속 어린 왕자의 웃음에 따라 웃었을 것이다.

이렇게 상상을 더하면 퀴블러 로스가 말한 죽음의 5단계는 크게 흔들린다. 문제는 상상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거대한 괴수를 상상하기 위해서는 코끼리 뼈라는 실존을 보아야 하듯, 상상 속 웃음을 현실로 가져오려면 이런 것이 필요하다.

"내 아내는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살아 있다면 걸을 거라고. 동료들도 내가 걸을 거라고 믿을거야. 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있어. 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 물도 희망도 없는 그곳에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 더 편할 그곳에서. 생텍쥐페리는 상상 속 어린왕자를, 현실의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 두 가지 단계는 놀랄만한 힘으로 죽음으로 가는 선로를 꺾어 버린다. 그리고 내달린 그곳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철민 님에게.

 

철민 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찾으러 저는 지금 사막의 바람이 부는 자리에 와 있습니다. 언젠가 이 자리를 생텍쥐페리가 헤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를 사랑했고, 비행을 즐겼으며 하늘을 자신의 또 다른 대지로 느낀 생텍쥐페리는 언제나 그곳에 오르곤 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이곳 사막에 불시착 했고, 죽음의 모래 가운데서 절망했습니다. 한번은 멈춰버릴까, 또 한 번은 모든 것을 포기할까. 그 역시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런 절망을 부추긴 것은 언제까지고 그를 올려줄 것 같았던 비행기가 산산히 부서진 탓도 있겠지요.

만약 그가 그곳에서 걸음을 멈췄다면 우리는 읽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린왕자>는 물론이고, 이 불시착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긴 소설 <인간의 대지>역시 읽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대지>에서 생텍쥐페리는 자신을 걷게한 두 가지 동력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상상과 사랑이었죠.

추락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그 단어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 역시 인간이 부여한 것이죠. 추락한 생텍쥐페리 역시 그 부정적 뉘앙스에 잠식당할뻔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상상했습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시선을. 그 시선으로 자신의 현실을 바라봐 줄 한 사람을. 그렇게 도착한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의 현실을 즐거운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어린왕자가 알려준 사고의 전환은 생텍쥐페리를 사막의 모래 속에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죠. 하지만 아직, 걸음을 옮길만한 동력은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는데요. 그것을 해결한 것은 현실의 사람이었습니다. 땅에 있을 때도, 하늘에 오를때도, 언제나 자신을 믿어준 이들. 그들의 품과 목소리, 그리고 눈빛을 떠올리자 생텍쥐페리의 엔진은 다시 돌기 시작했죠. 그렇게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이것을 찾아내었죠.

물!

물, 너는 맛도 색도 향기도 없다. 그러니 너는 정의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를 알지도 못한 채 너를 맛본다. 너는 생명에 필수적인 정도가 아니라 바로 생명 그 자체이다. 너로인해 감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쾌락이 우리에게 스며든다. 너와 함께 우리의 몸에서는 우리가 체념했던 모든 힘이 되살아난다. 너의 은총으로 우리 몸에는 우리 가슴에서 메말랐던 모든 샘물이 콸콸 흘러넘친다.

언젠가 생텍쥐페리의 입에 닿았던 저 한 잔의 물을 마실 수 있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추락으로 시작한 새로운 여정에 응원의 마음을 더합니다.

 

 <유실물 보관소, 알렉산드리아> Y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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