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풍선과 바구니 2부

Story.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2023.07.18 | 조회 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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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보관소 알렉산드리아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이야기 보관소 【알렉산드리아】

가끔, 필요할 때가 있다. 

하루의 끝.

시계마저 지친 그 자리에 설 때.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마음 속을 아무리 헤쳐봐도, 찾고 싶은 것을 손에 잡지 못할 때. 

아니,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을 때.

 

그럴때.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놓쳐버린.

혹은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기 위해.

이곳의 문을 연다. 

 

이야기를 찾으러.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찾으러. 이곳에 온다.


두 사람의 결혼을 멋진 노래로 축하해 준 김인경 님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제 이해경 신부의 오랜 친구가 전하는 축사가 있겠습니다.

"떨려요?"

말끔한 정장을 입은 D가 남의 속도 모르고 묻는다.

"떨 거 뭐 있어요. 그냥 진심만 담으면 충분한데. 안 그래요?"

안 그렇다. 해경이에게 줄 선물이라면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해경이가 나한테 해준 게 얼만데...

"다들 기다린다. 잘하고 와요. 화이팅!"

"아...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해경이와 중학생 때부터 함께한 오랜 친구입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해경이는 제가 일하는 곳에 와주었고, 고맙게도 결혼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청첩장을 건네는 해경의 표정. 저는 그것이 몹시 생경했습니다. 해경이는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잘 뛰고, 잘 넘어지고, 또 훌훌, 잘 털어내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해경이었기에 그녀의 얼굴에 긴장이 내려앉은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해경은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긴장의 원인은 해경이답게. 상대를 향한 애정과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해경이는 어릴 때부터 늘 그랬습니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고, 상대의 감정을 무엇보다 아끼는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낌의 결과로 떠오르는 상대의 푸른 미소. 그것을 사랑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해경이는 긴장한 것일 겁니다. 결혼이라는 깊은 약속. 그 약속의 시작점에서 자신도 모르게 머뭇거렸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저 역시 자주 머뭇거렸습니다. 지금보다 소심하고, 지금보다 걱정이 많던 어린 날의 저는, 거의 모든 순간에 주저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해경은 손을 내밀어 주었습니다. 같이 가자고, 같이 뛰자고. 더 높이. 더 빨리. 저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엔 제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경이와 해경이의 동반자. 두 사람의 항해의 시작. 그곳에서 순풍을 기원하며 가볍게 등을 토닥여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로 말이죠.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 사람들이 그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세상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Y가 찾아오라는 이야기를 찾기 위해 카파도키아의 협곡을 날고 있다. 바구니에는 조종사를 포함해 여덟 명 정도가 탈 공간이 있으며, 앉아도 무방하지만, 모두가 그 광활한 풍경을 보기 위해 기꺼이 기립한다. 나 역시 그렇다. 이 높이에서만 볼 수 있는. 내 키의 몇십 배 정도? 그 정도로 오르면 볼 수 있는 그 풍경을 즐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역설적으로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치며 가능해졌다. 과거, 인간은 하늘을 동경했다. 더 높은 곳으로 날고 싶었고, 더 먼 곳을 바라보려 했다. 그때 힌트가 된 것은 새였다. 날개 달린 새들은 인간의 모델이 되었고, 많은 과학자 혹은 몽상가라 불리는 이들이 날개 비슷한 것을 만들어 보려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것을 몸에 달고 하늘을 날려 했다. 새가 그렇게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날개가 없다. 태초에는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없다. 그렇기에 날개 비슷한 것을 만들고, 그것을 팔에 낀 채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날 수 있을 만큼의 동력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추락했다. 혼자인 이들이 곧잘 그러는 것처럼.

 이것은 이카로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역시 인간이었고 그래서 하늘을 동경했다. 다른 이들보다 신의 지혜에 가까이 다가섰던 그는 밀랍 날개를 만들었다. 가볍고 넓은 그 날개를 달고 이카로스는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마치 한 마리 새처럼. 날개를 달고 올라선 지상의 풍경은 황홀했다. 아니, 이카로스가 아는 단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완벽했다. 이카로스는 생각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그 어리석은 질문에 이카로스는 홀로 답해야 했다. 날개를 단 인간은 자신이 유일했으니까.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인간이 현명한 답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멍청한 결정을 해버린다.

 "좋아, 더 가까이. 저 높은 태양 가까이 올라서 보자."

 그렇게 결정한 이카로스는 빠르게 날갯짓했다. 그의 곁에 누군가 있었다면.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면 그에게 말했을 것이다.

 "인제 그만. 우리 내려가요."

 그랬다면 이카로스의 밀랍 날개는 녹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카로스도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처음 찾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다들 이카로스는 욕심 때문에, 지나친 욕망 때문에 추락했다 생각하겠죠.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카로스는 해경이 같은 연인이 없었기에, 애정이 어린 조언을 건넬 동반자가 없었기에 추락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앞에 서 있는 저 두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죠. 지금도 저렇게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 보도록 하죠. 이카로스 이후의 사람들. 그들은 어땠을까요? 사실 우리들은 과거의 일들에서 배울 만한 점을 찾길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카로스 이후의 사람들은 생각했죠. 더 높이 날고 더 멀리 보려면 이제껏 함께한 적 없는 두 사람을 함께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떤 것들이 떠오르실까요?

 "신랑 신부요!"

 "맞아요. 아버님. 좋은 답이에요! 저는 이런 답도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이제껏 함께한 적 없는 풍선과 바구니. 사람들은 이 둘이 함께하자 '상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로맨틱한 과학적 사실에 흥분했다. 얼마나 좋은가. 떨어져 있던 두 존재가 함께하여 하늘로 상승한다는 것. 그것만큼 프러포즈하기 좋은 이야기가 있을까? 그런 이유로 실행력 좋은 어떤 이들은 이것을 비유로만 사용치 않고, 직접 열기구에 오르며 보여주었다.

 어떤 이들은 실제로 성공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열기구에 올라 바람을 타고 또 타며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무사히 도착해 반지를 건넸다.

 하지만 생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반드시 계획한 대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때로는 바람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불 때고 있고, 또 때로는 공기가 충분히 데워지지 않거나, 깜빡 졸거나, 비가 오는 바람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심하게 운이 안 좋다면 추락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제는 또 있다. 운이 좋게 상대가 있는 곳에 도착하고, 그에게 반지를 주고, 함께하는 삶을 맹세하고, 바구니에 오른다 해도. 기구가 원하는 곳으로 두 사람을 데려다줄지는 미지수다. 앞서 말한 많은 이유로 기구는 궤도를 이탈할 수도 있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을 수도 있다. 


 함께하려는 수많은 두 사람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도 이것이겠죠. 우리가 탄 열기구가 순풍을 맞지 않으면 어쩌나, 연료가 중간에 떨어져 버리면 어쩌나, 부부싸움을 해야 하는데 열기구 안에 던질만한 것이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할 것입니다.

 그 용기 있는 해경이조차 그랬으니, 이 걱정은 함께하는 이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겠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겁니다.

 "이제껏 함께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을 함께하게 해보라. 때로는 세상이 변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은 추락해 불에 타오를지도 모른다. 혹은 타올라서 추락하거나. 그러나 때로, 새로운 일이 벌어지면서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나란히 함께 그 최초의 환희에 잠겨 몸이 떠오르는 그 최초의 가공할 감각을 만끽할 때, 그들은 각각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대하다. 함께할 때 그들은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본다."

 풍선과 바구니. 이 둘이 떨어져 있는 것을 떠올려 보죠. 바구니는 언제까지나 중력을 이기지 못한 채, 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풍선은 외롭게 홀로 허공을 떠다니겠죠. 그 둘은 함께하기에 날아오를 수 있었으며, 함께하기에 더 멀리 볼 수 있었습니다. 방향을 놓친다거나, 다시 아래로 하강하는 것은 '상승'이라는 성과가 있었기에 따라오는. 말하자면 부차적이며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그런 것이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해경이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야아, 그래도 떨어지는 건 무섭단 말이야. 그럴 땐 어떻게 해?"

 그럼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전할 것입니다,


추락이 과했던 나머지. 지하 깊은 곳까지 추락한 이가 있다. 에우리디케라는 이름의 그에게는 사랑하는 연인 오르페우스가 있다. 리라 연주를 기가 막히게 할 줄 알던 그였지만 아무리 리라를 켜도 에우리디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지하에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르페우스는 지하의 문을 직접 연다. 그리고 그곳의 주인을 만나 말한다.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돌려주세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남들은 평생을 피하려 하는 지하에 직접 문을 두드린 오르페우스. 지하의 주인 하데스는 그런 그가 놀라웠고, 그래서 더 장난을 치고 싶었다.

"좋아, 너의 지극한 사랑을 봐서, 에우리디케를 돌려주도록 하지. 다만,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의 끝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아선 안 된다. 만약 뒤를 돌아본다면 에우리디케는 더 깊은 지하로 영영 추락하게 될 거야."

거부할 수 없는 제안. 오르페우스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에우리디케의 손을 잡은 채, 지상으로, 지상으로, 달린다. 위기는 몇 번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은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곱절로 커졌다. 그럴 때마다 오르페우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버텼다. 하지만...

"아악..."

그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에우리디케의 외마디 비명. 그것만은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에우리디케는...


 

 "... 그러자 에우리디케는 깊은 지하로 추락했습니다."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 두 사람은 서로 함께하지 않았으면 겪지 않을 고통을 겪습니다. 두 사람이 그것을 몰랐을까요? 지금 두 손 꼭 맞잡은 우리 앞의 두 사람도 그것을 모를까요?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알고도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 증표로 지금 서로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는 것은. 지금 가빠오는 숨이 상승에 의한 설렘과 기쁨인지, 미지의 하강을 두려워함에 그런 것인지... 두 사람은 아마 그것을 걱정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많은 분도 그렇겠죠. 예상하여 보지만 오늘 이곳에서. 그런 두려움이 없는 것은 제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건 제가 능력 좋은 예언가여서 두 사람의 운명을 바라봤기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저는 알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해경이가. 얼마나 이인삼각을 잘하는 아이인지. 얼마나 함께 뛸 파트너를 잘 고르는 아이인지.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해경을 위해 성혼의 청을 전합니다. 


“이제껏 함께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을 함께하게 해보라. 그들은 각각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대하다. 함께할 때 그들은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본다.”

소설가 줄리언 반스는 부인 팻 카바니와의 결혼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전혀 다른 자신과 아내의 만남이 두 사람을 더 높이,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 말을 굳게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옮기려 낡은 타자기를 꺼냈습니다.

타자기는 그의 말을 옮기기에, 두 사람의 모험을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물건이었습니다.

타자기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서 조금의 망설임과 단호한 확신의 순간을 그대로 종이에 그려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울 방도는 도무지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신의 영역이라도 되는 듯 말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타자기를 선택했습니다.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청을 나눌 때 이것을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함께 할 긴 시간을 두려움 없이 허락한 이들에게 ‘삭제’라는 치사한 기능은 없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이것으로 청합니다.

오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식으로 아름다움을 청합니다.

시간의 햇볕에 조금씩 바래고, 시간의 바람에 조금씩 무뎌질 때까지 우리는 우리를 아름답게 해줄 것을 청합니다.

오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식으로 모험을 청합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며, 떨림의 확신을 한 자씩 남기길 청합니다.

오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식으로 결혼을 청합니다.

두 사람은 결단코 추해지지도, 모험을 포기하지도, 모험으로 인해 서로가 망가지지도 않게 하겠습니다.

뒤돌아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신중히, 덜 묻어난 리본 때문에 발걸음이 흐려지지 않도록 소신 있게. 그렇게 함께할 삶을 써내려 가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오랜 시간을 견뎠음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모습과 망설임마저 기록하는 이것으로 맹세합니다.

우리는 더 높이,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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