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남편의 박사과정을 위해 미국으로 떠날 때, 우리는 5년간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2년 차에 한 번, 3년 차에 또 한 번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학위를 마치고 직장을 잡은 뒤로는 매년 한 번씩 고국을 찾았다. 미국 생활 10년차, 매년 쌓인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프로 고국 방문러의 팁을 정리해본다.
휴가, 방학, 그리고 항공권
직장인 둘, 학생 하나.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가장 오래 머물 수 있는 시기는 연말이다. 다행히 아이의 학사 일정은 적어도 1년 전에 확정되기에 휴가와 방학, 그리고 항공권 가격을 조율하여 최적의 선택을 한다.
미국의 겨울방학은 약 2주. 방문 기간을 늘리기 위해 학교를 빠져야 한다면, 한 학년당 최대 결석 가능일수를 확인해야 한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8월 말쯤 담임선생님과 학교 학사 관리 팀에 여행 계획을 알리고, 결석 기간 중 단위 평가가 있는지, 빠진 수업 대신 대체 과제가 가능한지도 점검한다.
올해는 3주를 꽉 채우기 위해 아이가 방학식 전 1주일을 결석한다. 필요한 절차를 확인하고 서류를 제출하면 간단했던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과 달리, 중학교에서는 모든 과목 교사들의 개별 승인을 받아야 했다.
아이는 올해부터 한국어수업을 듣는다. 기말 프로젝트로 ‘겨울방학 계획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며 아이의 한국 방문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탕후루 먹기, 고양이 카페 가기, 탁구 치기 등 3분 남짓한 원고에는 누구와 무엇을 할지에 대한 아이의 기대감이 실려있었다. 늘 뒷전이었던 아이, 이번 방문에는 아이의 리스트를 최대한 실현시키는 것이 목표다.
무엇을 들고 가고, 무엇을 들고 올 것인가.
매년 고민이다. 국제기구 특성상 본국에 다녀오는 동료들이 많다. 대체 뭘 사야하는지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한다. 아울렛에도 가보고, 블프 세일을 노려보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쇼핑 리스트 1순위는 트레이더 조의 PB 상품이었다. 초콜릿과 향신료 중심에서 올해는 미니 에코백과 보냉백을 추가했다. 품절 대란이 있었던 품목이라 재입고 날짜를 기다려 몇 번의 오픈런 끝에 득템했다. 수트케이스 안에 귀국 선물이 쌓일 때마다 설레임도 커진다
선물들이 주인을 찾아가면 그 자리를 다른 물건으로 채운다. 수건, 책, 옷 등 매해 다른 주요 물품들이 있지만, 방앗간에서 직접 빻아온 고춧가루와 집에서 짠 들기름은 양가 어머님의 손길이 더해져 있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들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최대의 고민이다.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 한정된 시간, 빠듯한 예산, 그리고 체력이라는 복병까지. 모든걸 고려해서 매번, 아니 매일 최선의 선택을 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어디선가 들었던 대학 강의의 지혜를 떠올려본다. 병안에 자갈, 모래, 물을 모두 넣는 방법. 자갈을 먼저, 모래는 다음, 그리고 물을 붓는다. 한정된 캘린더를 채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입국일과 출국일, 건강검진과 가족과의 ‘필수’ 일정을 가장 먼저 정리한다. 부모님, 언니가 살고 있는 서울과 남편의 본가가 있는 청주를 오가는 날짜를 정한 후 나머지 일정을 조율한다. 병원에 방문하기 전엔 건강보험 미납금 정산을 완료한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기 위해 유지하고 있는 알뜰폰의 요금제도 데이터와 문자, 통화를 무리없이 할 수 있게 변경한다.
입국 일주일 차, 큰 숙제의 반 정도를 마쳤다.입국 다음 날 건강검진을 마쳤고, 1년째 방치했던 머리도 전문가의 손길을 거쳤다. 두 번의 생일 파티를 했다. 아직 방학을 하지 않은 조카와 함께 주말엔 글램핑도 다녀왔다. 거의 모든 시설이 완비된 캠핑장이었지만, 모두가 ‘캠핑은 처음이라’ 어떤 물건은 너무 많이 챙겼고, 빠뜨린 물건을 채우러 근처 마트에도 다녀와야 했다. 혹시나 하고 챙긴 그릴 덕에 비가 오는데도 무사히 저녁을 해 먹을 수 있었지만, 챙겨간 물건들이 너무 많아 밥솥을 캠핑장에 두고오는 일도 있었다.
모든 수고로움을 잊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었다. 거뭇해진 코 밑처럼 어둠의 기운을 뿜어내던 사춘기 두 녀석이 깔깔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친구들에게 사진을 전송하며 뿌듯해했다.
밤새 눈이 내렸다. 눈을 밟고 만지는 아이에게서 꼬맹이의 웃음이 새어나온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편리함을 내려놓고 나무로 불을 땐 우리들의 하룻밤. 토이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서둘러 서울에 돌아왔다. 남편을 서울역에 내려주고 목욕탕에 갔다. 모닥불 냄새를 지우고 옷을 갈아입었다. 처음으로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과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의 작가들을 만났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약 열흘, 아무리 노력해도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갈 수는 없다. 아이의 생일파티가 남았고, 아이의 리스트 중 서울에서만 해야 하는 일들이 아직 남아있다. 누군가에겐 ‘다음엔 꼭’ 이라는 말을 남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벌써 몇번인가 했다.
올해가 마지막 한국 방문은 아니지만, 어떤 날은 마지막인 것처럼, 애써보려 한다. 프로 고국방문러는 올해도 경험치를 쌓는다.
[사이에 서서] 황진영
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와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를 썼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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