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독일에 왔을 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낯선 외국인이라 국적이나 출신이 어디일지 감조차도 못잡았고, 내 눈엔 그저 모두가 “독일인"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독일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특유의 발음이나 외모, 스타일을 보며 이민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외모와 무관하게 태어나면서부터 독일에서 쭉 살아온 사람들은 독일 국적자이기 때문에 사실 겉모습으로 독일인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서툰 독일어와 특유의 발음, 행동과 스타일을 통해 아 저 사람은 이민 온 사람이구나 라고 어렴풋이 느끼곤 한다.
도시마다 비중은 달라도 터키계 이민자들은 어딜 가나 보인다. 특히 독일의 김밥과도 같은 되너(케밥) 식당에 가면 대부분 터키계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미용실이나 세탁소를 가도 정말 많고, 병원 데스크, 키오스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실제 독일 이민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터키 출신이라고 한다.
4명 중 1명은 이민자, 독일의 모습은 어떨까
3년 이상 독일에 살면서 14개의 독일 도시를 남편과 여행하며 꽤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도대체 독일인은 어디서 만날 수 있는거야?” 대도시로 갈수록 여행하면서 만날 법한 식당, 호텔, 관광지의 직원들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심지어 베를린의 식당에서는 영어로만 주문을 받는 직원도 있었고, 거리에서도 영어와 프랑스어가 너무 많이 들려서 마치 독일이 아닌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미용실에 가면 터키인 사장과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직원을 만나고, 되너는 터키계, 피자는 그리스계 이민자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사먹는다. 대형 마트에 가도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견습 생활을 하고, 이웃들은 히잡을 쓴 중동 출신 사람들도 꽤 많다.
심지어는 독일어 학원 선생님들도 독일인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첫 수업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선생님은 독일어 실력이 좋지 않아 기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수습 기간 한 달만에 해고됐고, 이후 새로 부임한 훌륭한 선생님은 터키계 독일 이민자였다. 불가리아 출신 선생님과 독일어 발음이 엉망이었던 중동계 선생님까지,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독일인보다는 이민자 출신이 더 많았다. 언어 교환을 위해 만난 독일인 친구들도 알고 보면 부모님이 터키인이라거나, 폴란드인인 경우가 많아서 조부모님부터 쭉 독일에서 산 독일 토박이(?)를 만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았다.
서로 다른 출신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 때
처음 독일어를 배우고 겨우 몇 마디 할 줄 알게 되었을 때, 마트에서 계산을 하다가 사장님의 가벼운 질문에 답을 했더니 곧바로 칭찬 세례가 이어졌다.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독일어를 잘한다며 나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칭찬이었다. 이어서 한국은 김연아 선수의 아름다운 피겨 스케이팅 때문에 언젠간 가고 싶은 나라라는 답례(?) 인사도 돌아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장님은 불평도 쏟아냈다. 이 곳에 온 몇몇 터키 사람들은 독일에 산 지 10년이 넘어도 독일어도 영어도 할 줄 모르고 터키어만 한다며 그들에 비해 나는 아주 바람직하단 말을 덧붙였다.
어설픈 나의 독일어 몇 마디로 칭찬을 쏟아내는 사장님의 말에선 꽤 오랜 시간 쌓인 불만이 느껴졌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울 노력을 하지 않을 거면 왜 그 나라에서 사냐는 말은 그 후로도 정말 많은 독일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이 터키인인 친구도 엄마의 독일어 발음이 형편없다며 노력하지 않는 엄마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내가 독일어로 말을 하면 호의적으로 칭찬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만큼 독일에서 독일어를 쓰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 이민자 비중이 가장 높은 터키나 아랍계 사람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충분해서 모국어로도 일자리를 구하고 집을 구하고 생활을 누리는데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독일의 회사는 글로벌 기업이 많아서 이 곳에서 일하는 한국인들도 독일어를 아예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영어로 모든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에 독일어를 배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한 나라 안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때론 독일어로, 때론 영어로, 때론 터키어나 아랍어로 소통한다는 사실이 어딘가 묘했다.
그럼 독일인들은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대기업 본사 건물을 지날 때면 정장을 입고 사원증을 목에 건 젊은 독일인들로 가득하다. 은행이나 관청, 대학 수업을 가면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독일인들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다. 당연히도 이 직업들의 특성상 고학력자이면서 언어가 유창해야 한다는 진입장벽이 있다보니 독일어가 서툰 이민자들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민자가 많아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조건 없이 독일인이 되는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꼭 언어만이 아니라, 실제 외형이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대형 가맹점을 가진 스시 업체에서는 공식적으로 자격 요건으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실제 일하는 분들의 말에 따르면 아시아인을 선호한다고 한다. 통창 너머 주방에 아시아인이 스시를 만들고 있으면 그야말로 오리지널 스시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걸까. 국적은 따지지 않고 스시를 전혀 만들어본 적이 없어도 외모가 아시아인이면 좋아한다는 말에 꽤 놀랐다.
아무래도 이민자일수록 상대적으로 언어와 학위의 장벽이 없는 직업을 찾게 되고, 교육에 오래 투자하기보다는 당장 정착과 생존이 중요하다보니 곧장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공공연한 인종이나 국적의 차별이 존재해서만이 아니라, 환경적으로 독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이민자들의 직업이 자연스럽게 구분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거리의 풍경을 보다보면 마치 특정 직업은 특정 국적이나 인종의 사람들이 점유를 하고 있는 것 같단 느낌을 자주 받는다.
통합은 어떤 모습일까
문득 한국이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화두가 되는 요즘 이민자가 많아지는 것은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 실제 작년 말 한국에 방문해서 느낀 건 몇 년 전보다 외국인이 정말 많아졌다는 것이다. 단순히 관광객만이 아니라, 주택가 동네에서 출퇴근 버스에 지친 눈으로 타는 외국인들이 눈에 띄게 보여서 찾아보니 서울에도 벌써 40만명의 외국인이 거주를 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앞으로 더 많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 같다.
당연하게도 유창한 한국어를 자격 요건으로 내세우는 직업군에는 외국인의 비중이 낮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가 중요하지 않고, 몸을 쓰거나 기술을 쓰는 직업이라면 외국인이 많아질 것이다. 단기적인 현상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한국에 정착하는 외국인이 많아진다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만약 소득이 높은 직업일수록 고도의 한국어를 요구한다면 자연스레 한국인과 이민자 간 격차도 커질 것이다. 한국어가 유창하고 고학력자인 한국인들은 고소득 전문직에 집중되고 한국어가 서툰 이민자들은 저소득 직종에 몰리게 되면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나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양성이 높아졌다기보다는 국적에 따른 분업에 불과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시질 않았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언어가 눈 앞에 펼쳐져있지만 어쩐지 선입견이 더 생기는 듯한 느낌도 든다. 서로가 섞이는 듯 섞이지 않는 묘한 이 상황을 보며 사회 내 통합이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글쓴이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프리랜서로 일하며, 독일어를 배우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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