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만날 때면 나는 항상 ‘청자’를 자처했다. 친구는 어젯밤 이불킥을 하게 만든 사건부터 오늘 아침 버스에서 본 카우보이모자를 쓴 아저씨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곁에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내가 있었다. ‘그래서 너는 요즘 고민이 뭐야?’라고 묻기 전까지는 내 이야기를 꺼내는 법이 없었다. 그나마 친구의 체력 상태와 남은 시간을 고려해서 최대한 짧게 답을 했다. “진로 문제랑 알바 때문에 고민이야.” 친구가 더 묻지 않는다면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 요즘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친구에게 내 고민까지 얹어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고, 타인의 소중한 시간을 갉아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민폐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인간이었다. 누군가의 시간도, 돈도, 마음도 그냥 쓰고 싶지 않았다. 상대의 돈에 있어서는 더 엄격했다. 밥을 얻어먹으면 기억했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다시 사주고, 선물을 받으면 더 큰 선물을 주는 식이었다.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을 받으면 굳이 사양하는데도 십 원단위의 거스름돈까지 맞춰 주었다. 굳이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야만 마음이 편했다. 누군가에게 빚진 기분이 싫었다.
부모님의 마음에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친구와 다툰 날에도 어머니에게 혹여나 어두운 표정을 들킬까 봐 방으로 숨어들어갔고,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쓰라고 쥐여 준 용돈도 다시 곱게 접어서 어머니 서랍에 넣어놓곤 했다. 열 살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부모님의 무거운 삶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들에게 마음을 기대는 것이 폐를 끼치는 것으로 느껴졌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람은 타인에게 그만큼의 관심이나 호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냉소적 믿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상대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그 바탕에 있다. 이는 결국 상대가 그어 놓은 경계를 넘어가면 나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친구의 호의를 받아도 되는지 머뭇거려질 때 나를 염치없거나 눈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봐, 친구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나를 지루하거나 버거운 사람으로 여길까 봐, 부모님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까 봐 하는 공포였다.
이 두려움은 ‘수용’의 욕구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이 욕구는 대부분의 성격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기본 욕구이다. 사회적인 인간인 우리는 누군가에게 수용될 때만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게는 유독 받아들여지고픈 욕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상대에게 적절하고 무결한 존재로 이해되고 싶은 만큼 거절의 두려움은 커진다. 모순되고 부적절해 보이는 이 모습을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데, 상대는 더욱더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어린 나의 부족함을 긍정해 주는 어른을 만나지 못해서였는지, 엄한 아버지와 무력한 어머니 사이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그 짐을 지운다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였는지 모르겠다. 우유부단한 성향 탓에 어떤 것에도 확신이 크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실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내가 상대에게 폐만 끼치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은, 역설적으로 적극적으로 폐를 끼치는 순간을 통해 점차 옅어져갔다.
D는 대학에서 처음으로 가까이 지내고 싶어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무심한 듯 예리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힘들어한다거나 지쳐하는 기색도, 감정의 미동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끝까지 잘 듣고 있다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관점을 얘기해 주기도 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까를 고민하면, 멍 때리는 시간의 소중함의 이야기해 주는 식이었다.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중간중간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되물어주고, 또 내 생각을 궁금해하는 그녀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우리 매주 수요일은 같이 점심 먹을까?” D에게 물었다. 나에게는 익숙지 않은 질문이었다. 상대의 시간을 이렇게 탐해도 될까라는 망설임이 있었지만, 이 관계에 욕심을 내보고 싶었다. 다행히도 그녀 역시 그 약속을 나만큼 소중히 여겨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쌓은 4년간의 시간은 말해 뭐 할까 싶다. 그녀를 통해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자꾸 듣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같이 고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민폐의 절정은 친하지도 않던 언니 P의 집에서 얹혀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하숙집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적당한 거처를 찾지 못하던 와중이었다. P와는 같은 동아리에 있었지만,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나눠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원룸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둘을 잘 아는 선배가 P에게 같이 살아보라고 권했다.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한 그녀에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다 그 일이 터져버렸다. P가 잠을 자고 있던 어느 밤, 천장에서 바퀴벌레가 정확히 그녀의 얼굴로 떨어졌던 것이다. 평소에는 씩씩한 그녀였지만 바퀴벌레에게만은 유독 취약했다. 이를 잡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절실했다. 마침 나는 바퀴벌레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거할 곳이 궁했던 나는 P에게 얼마나 부담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이유만으로 P의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바퀴벌레가 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
극 외향인 P와 극 내향인 나는 누가 봐도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의외로 잘 맞는 순간이 제법 많았다. 누구 하나 연애가 꼬이거나 지방에 있는 부모님과 갈등이 생겼다거나 친구와의 사소한 오해로 짜증이 나는 날에는 좁은 방바닥에 같이 쪼그리고 앉았다. 대놓고 못했던 욕을 실컷 하며 소리를 질러대다 서로의 고함 소리에 와르르 웃음이 터지곤 했다. 좀 더 격하게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날에는 집 근처에 있는 지하 노래방에서 보너스 시간까지 야무지게 챙겨 부르고 어두워진 골목길을 거슬러 돌아오기도 했다. 누가 감기라도 걸리면 하면 한껏 장을 봐와서 해보지 않았던 서툰 요리를 시도해 보기도 하고 더듬더듬 배숙을 끓여 내기도 했다. 비좁은 싱글 침대에 몸을 붙이고 누워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날들은 대학 졸업 후에도 이어져 8년이라는 긴 시절을 함께 보냈다.
그러고 보면 상대의 시간과 공간과 마음을 침입하듯 써버린 ‘민폐 같은 순간’ 덕분에 나는 여기까지 왔다. 지금껏 서로의 짐을 지우며 곁에 둘 수 있었던 관계들은 모두 스무 살 언저리 민폐로 맺어진 이들의 ‘받아줌’ 덕분이다. 민폐를 진다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의 무게를 상대에게 싣는 행위다. 어딘가가 부족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나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 내가 그다지 자립적인 인간이 못 된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는 일, 상대가 나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을 허용하는 일이다.
수용에 대한 갈망이 컸던 만큼 두려움 또한 많았던 나는 다행히도 누군가의 삶에 틈입할 기회를 얻어왔다. 조금씩 나의 취약함을 내보이고 상대에게 기대는 연습을 할수록 그 두려움에 균열이 생겼다. 용기 내어 타인의 삶에 한 발 들여놓았을 때, 다음번에는 좀 더 큰 보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때보다 각자의 삶의 영역이 중요한 시대이다. 서로의 삶의 경계에 분명한 선을 긋고 지키는 것은 센스 있고 쿨해 보이는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나로 인해 불편해지기로 자처해주었을 때 타인과 나에 대한 신뢰가 자라났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나 또한 내 삶에 들어와 내 시간과 공간을 요청하는 누군가를 그렇게 환영하고 싶다.
오늘도 독감에 걸려 온 가족이 꼼짝 없이 집에 묶인 와중에 멀리서 먹을거리를 챙겨온다는 일본인 친구의 호의를 덥석 물었다. “이왕이면 과일로 부탁해.“ 아주 글로벌하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 ‘그냥 한 번 한 말인데 귀찮게 됐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뻔뻔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여러 생각이 나를 망설이게 한다. 하지만 그 허들을 뚫고 ‘예스’라고 답하는 순간, 그들의 내 삶으로 틈입하고 내 삶에 온기가 더해진다. 문 앞에 과일이며, 과자, 주스까지 터질 것 같은 봉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네가 와줘서 얼마나 힘이 났는지 몰라.” 메시지를 쓰며 울컥하고 있는 나를 보니 내 마음이 조금 더 말랑해진 것 같다.
* 글쓴이_이지안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을 공저로 출간하였고,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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