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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이 행복한 여름_오늘도 새록새록_진솔

2024.06.26 | 조회 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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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서 보낸 하루』 삽화
『강에서 보낸 하루』 삽화

누구에게나 여름날 시원한 개울가 또는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에서 물놀이를 한 기억이 있지 않을까 싶다. 선크림은커녕 따가운 햇빛에 아무런 대비 없이, 마구 물에 뛰어들고 사촌동생들과 물장구치던 여름 방학. 그렇게 놀고 나면 피부 껍질이 벗겨져 코끝이나 팔의 살갗이 부분부분 색이 달랐고 그것 때문에 개학할 때 은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 얘기다.

『강에서 보낸 하루』 표지
『강에서 보낸 하루』 표지

얼마 전 아홉 살 아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강에서 보낸 하루』라는 그림책을 빌려 왔다. 자기 전에 침대에서 읽어 달라길래 핸드폰이나 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밀쳐내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동네 친구인 세 아이들은 하루 종일 강가에서 시간을 보낸다. 오래된 나무에 올라타고 강물이 뭍에 밀어놓은 뱀 허물을 찾아내기도 하고 질척거리는 늪지에서 진흙을 던지며 놀기도 한다. 진흙 싸움을 하고 나서 강물에 뛰어들면 바로 온몸에 묻은 진흙을 씻어낼 수 있다.

『강에서 보낸 하루』 삽화
『강에서 보낸 하루』 삽화

셋이 튜브 하나를 같이 타고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떠내려가기도 한다. 세 친구에게는 나무로 만든 비밀 장소가 있었다. 그 비밀 장소에 당도했는데 놀랍게도 누군가가 자신들의 비밀 장소에서 나온다. 한 여자아이다. 약간의 어색한 탐색전을 거쳐 세 친구와 여자아이는 곧 같이 모닥불을 피우고 빵과 소시지를 구워 먹는다. 책에서 “너무나 즐거워, 아무도 해가 지는 걸 몰랐답니다.”라고 했다. 강에서 보낸 하루는 끝이 나고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강에서 보낸 하루』 삽화
『강에서 보낸 하루』 삽화

이걸 하면 어떤 의미가 있으니까, 어떤 유익함이 있으니까, 이익이 있으니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그런 일들을 하던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책이었다. 그저 친구들과 강가에서 이러저러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 것뿐인데 바꾸고 싶은 부분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하루인 것이다. 책은 아이들이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줄 뿐 그 일의 의미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하루를 지켜보며 행복감이 차올랐다.

이 책에 나온 행복을 소장하고 싶어서 아이가 잠든 다음 바로 책을 주문했다. 아무런 의미 없이, 그 자체로 행복한 일들을 많이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의미 없이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옆에서 잠든 나의 아이도 의미 없이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여름날 하굣길에 아이는 나무에 붙어있는 매미 허물 찾기에 열중한다. 아이는 매미 허물을 서슴없이 만지고, 물론 나는 거절하지만 땀 흘리며 두 손 가득 모은 매미 허물들을 신줏단지 모시듯 집에 가져가겠다고 한다.

아이는 땅 파는 것을 좋아한다. 숲이나 공원에 가면 “엄마, 땅 파도 돼?”라고 묻고 나뭇가지를 주워 와 뭐가 나오지도 않는 땅을 계속 판다. 왜 파냐고 물으니 땅속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판단다.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나올 수도 있고 개미집이 나올 수도 있고 신기한 광석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이는 갯벌에 가면 밀물이 들어찰 때까지 삽으로 진흙을 헤집으며 게나 조개를 찾는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허공에 오를 때도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까랑까랑한 웃음소리를 낸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그런 행복을 잊었다. 머릿속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하고 실행해야 할 계획과 내가 바라는 모습에 항상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보니 의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걸 하는 게 중요한가? 가치가 있는 일인가? 내가 의미 있게 살고 있나? 자문하며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단 수단인 일들을 많이 해왔다.

올여름은 가래떡을 뚝뚝 잘라내듯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일상에서 며칠씩을 뚝뚝 떼어내려고 한다. 그 며칠만큼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려고 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숲을 산책하며 새 소리를 듣고 바닷물에 몸을 담가야겠다. 아무 의미 없이 그저 행복하게. 무엇보다 무더위와 장대비에 잠시 멈출 수밖에 없는 또한 여름이니까.

 

 

 


*글쓴이 - 진솔

어린이들과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독서교실 선생님입니다. 초등 아이 키우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오늘도 새록새록'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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