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손을 내민다. 팔로워는 따뜻하게 그 손을 잡는다. 춤을 추기 위해 기술적으로 잡는 모양이라기보다 친한 친구의 손을 잡듯, 설레는 연인의 손을 잡듯 잡아야 한다고 아르헨티나 탱고 선생님들은 말한다. 기본 자세인 포옹(이하 아브라소 abrazo)도 마찬가지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반갑게 안으며 안부를 묻듯, 사랑하는 가족을 안듯 상대방을 안는다. 포옹은 상대에 대한 열린 마음, 경계의 허물어짐을 상징한다. 제스처로는 포옹을 하면서 마음으로는 상대를 밀쳐내는 건 진실된 포옹(스페인어: 아브라소)이 아니다.
주변에 탱고를 춘다고 하면 호기심에 반짝거리는 반응 절반,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눈빛 절반. 평범한 회사원인 남편은 어디 가서 아내와 함께 탱고를 춘다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껄끄럽고 배타적인 반응이 느껴져 당혹스럽다고 한다.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일하는 곳에 이 은밀한 취미 생활을 조금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고, 편견 어린 시선은 어쩐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 같기 때문이다.
흔히 "아, 그 껴안고 추는 그거?"라는 반문이 돌아오거나 "탱고는 스킨십이 심하잖아요."라는 반응, 혹은 입 밖에는 내지 않지만 내게 꽂히는 미심쩍은 눈빛이 탱고를 건전하고 즐겁게 추고 있는 나로서는 아쉽게만 느껴진다.
물론, 탱고는 상대를 안고 추는 춤이 맞다. 아브라소의 모양이 상대와 밀착되어 있을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옹’이라는 기본 형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탱고가 19세기 아르헨티나의 항구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유입된 수많은 유랑민들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추기 시작한 춤이라는 유래를 보면, 포옹을 통한 위로와 정서적인 연결, 끈끈한 유대는 탱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서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포옹’이 스킨십이라는 사실 때문에 공교롭게도 탱고를 추지 않는 사람들에게 쉽게 오해를 사는 것 같다.
세상에는 참 아름다운 스킨십이 많다. 남녀 간의 터치뿐 아니라 친구들 사이의 손장난이나 엄마의 팔베개, 키우는 반려동물과의 입맞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요즘처럼 생활이 팍팍해 집에만 들어오면 뻗어버리는 사람들도 고요한 집이 싫어 무심히 텔레비전을 틀어놓는다거나 반겨줄 반려동물을 기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어쩌면 사람들에게는 일상에서의 온기가 절실한 게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명동 시내 한복판에서 모르는 이들을 무료로 안아주는 ‘프리허그 캠페인’이 유행하기도 했고 말이다. 취미로 탱고를 추다 보면, 일주일 내내 받던 스트레스가 서서히 녹아내리면서 나의 모난 구석이 몽당연필처럼 둥글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다. 누군가의 온기가 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종종 상대를 껴안고 추면 바람이 날 수밖에 없다며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때도 있는데 어쩐지 억울하다. 물론 기본 자세인 아브라소(포옹)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유발하는 매개가 될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아브라소를 하면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달콤한 ’사랑의 충분 조건’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정말로 그렇다면 탱고판은 모든 사람들이 여럿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폴리 아모리(Polyamroy: 비독점 다자 연애)의 세계가 되지 않았을까. 조금 엉뚱한가? 하면서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아무튼 탱고판은 아직까진 한 명의 파트너와 다정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커플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건강한 취미 생활에 대한 오해가 깊은 것 같아 아쉬운 마음에 적기 시작한 글이다. 탱고를 시작한 뒤에는 매일같이 탱고 황금기의 음악을 듣고, 댄서들의 영상을 찾아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덕분에 벌써 몇 년째 주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도 주변에 가득 생겼고, 탱고를 잘 추고 싶은 마음에 생전 안 하던 운동을 시작해 몇 년째 지속하고 있다. 평소의 나 같았으면 작심 세 시간이었겠지만, 탱고 덕분에 가능한 변화이다. 탱고가 잘 안 춰져서 고달픈 마음이 들 때가 있기는 해도, 그 고달픈 마음은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주 모래알 같은 고민이다.
어쩐지 오늘 나는 세상의 편견과 싸우기 위해 탱고를 추러 가야 할 것만 같다. 이번에 가면 세상의 편견 따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이 사람들을 더 꼭 안아줘야지. 백 년 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겨줘야지. 그리고 탱고 음악에 좀 더 자유롭게 나를 내맡겨 봐야지 하고 다짐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편안하게 세상에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는 그날까지 나는 열심히 <탱고에 바나나>를 써야겠다.
* 글쓴이 - 보배
탱고 베이비에서 탱린이로 변신 중. 10년 정도 추면 튜토리얼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여,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Brunch: https://brunch.co.kr/@s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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