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카드의 9번은 ‘은둔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어요. 은둔자 이미지는 어떤 느낌이 드나요? 고립된 곳에서 외롭게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비범한 느낌도 듭니다. 세상에 등불을 밝히는 현자라는 뜻도 가지고 있으며 깨달음을 얻는 과정의 고난 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같은 이미지랄까요. 보통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기운도 느껴집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세계에 있는 듯해요.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살아갈 것 같은 특별한 인물 같아요. 은둔자를 예언자라고 표기한 책도 있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재난과 환란을 경고하는 사람이며 신의 비밀을 전달하는 일을 합니다. 차가운 절벽에서 나 홀로 등불을 밝히고 있는 은둔자를 보면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한 사람들이 떠오르네요. 늙고 외롭고 힘들어 보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통달하거나 지혜를 통합한 사람이 아닐까요. 숫자 9와 함께 은둔자 이미지를 담아낸 그림책 한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일본 그림책 작가 ‘야시마 타로’가 쓴 책인데 193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학교의 왕따 문제를 그리고 있는 『까마귀 소년』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산골짜기에서 몇 시간씩 걸어 내려와 도시의 학교에 다니는 아이입니다. 친구들에게 소외당하고, 글씨도 모르고, 6년 동안 학교에서 존재하지 않는 아이 취급을 당합니다. 이름이 아닌 ‘땅꼬마’라고 불려지면서도 꿋꿋하게 학교를 다닙니다.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부는 날에도 몸에 도롱이를 두르고 학교에 나타납니다. 6학년 때 새로 무임한 이소베 선생님은 땅꼬마의 재능에 관심을 보였고 투박한 그림이나 붓글씨를 칭찬했습니다. 학예회 발표 날에는 땅꼬마가 무대에 올라 까마귀 소리 흉내를 냈습니다.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 까마귀 소리, 아빠 까마귀 소리, 아침에 우는 까마귀 소리, 즐겁고 행복할 때 까마귀가 우는 소리,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우는 소리, 고목나무에 앉아 우는 까마귀 소리...
땅꼬마는 채소잎으로 싼 주먹밥을 점심으로 들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캄캄한 새벽길을 걸어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한결같이 타박타박 걸어 등교를 했던 거에요. 6학년 개근을 했던 아이는 바로 땅꼬마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외톨이 땅꼬마의 이야기에 모든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고 박수를 쳤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땅꼬마는 식구들이 구운 숯을 팔러 가끔 마을로 내려왔고 아이들은 ‘까마둥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까마귀 울음소리를 내며 다시금 산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그림책의 마지막 장이 끝납니다.
『까마귀 소년』의 작가 ‘야시마 타로’는 1908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태어난 화가인데 전쟁을 반대하다 1939년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해요. 타로카드와 관련은 없겠지만 야시마 타로의 이름에 ‘타로’가 들어가 있네요. 일본어로 ‘타로(太郎)’는 남자를 뜻하기 때문에 타로카드와 별 상관은 없습니다. 그는 1994년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국에서 활동했어요.
땅꼬마라고 불린 까마귀 소년이 입고 다녔던 ‘도롱이’는 왠지 타로카드 9번의 은둔자가 몸에 걸친 수도승 같은 옷 같습니다. 은둔자는 자신이 선택한 대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남의 시선과 이목을 따르지 않고 모든 관심사는 내면을 향합니다. 영적인 지혜를 탐구하는 사람이기도 하며,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 인생의 진리와 삶의 근원을 탐구합니다. 또한 『까마귀 소년』의 땅꼬마는 야생의 소리를 매일 들었습니다. 온 세상의 소리를 들으면서 인간의 소통 너머의 연결 방식을 온 몸으로 체화했을 거에요.
개가 짖는 소리, 아기 고양이가 갸르릉거리는 소리, 암소가 음매하고 우는 소리, 박쥐와 까마귀 온갖 새들이 우는 소리, 다름쥐가 재잘거리고, 말이 히이잉거리고, 병아리는 삐약거리고, 닭이 꼬끼오 소리내는 것까지. 거기다가 비내리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나뭇잎 흔들거리는 소리, 천둥번개 치는 소리, 태풍으로 세상이 쓸려 내려가는 소리, 숯이 가마에서 만들어지는 소리, 새싹이 돋는 소리 등. 신성한 자연의 소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감각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자연 속에 머물 때 인간의 직관력 그리고 영적인 힘이 향상됩니다. 그렇기에 모든 구도자, 은둔자,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은 깊은 산 속에서 홀로 지내는가 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온전히 머무를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그러하겠죠. 대도시에서 살아온 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 중 하나를 강원도 산 속의 황토집에서 5일간 단식 체험을 한 것을 손꼽고 싶습니다. 단식은 음식을 끊는 일이기 때문에 큰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보통 병을 고치기 위해서 종교적인 수양을 위해서 다이어트의 목적 등을 위해 단식을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단식을 꾸준히 하고 계시는 분의 경험담을 듣고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서 단식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물과 죽염만으로 음식물 섭취를 제한하고 황토방에서 지냈습니다. 매우 배가 고팠던 첫날과 이튿날을 지나고 나니 셋째날부터는 오히려 속이 편안해지고 마음도 고요해졌습니다. 어느 누구도 없는 곳에서 고립된 것처럼 지냈지만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도 좋았습니다. 가까운 곳을 천천히 산책하고, 일찍 일어나 요가를 하고, 느릿느릿 책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때만큼 내 몸과 정신의 감각을 또렷이 느꼈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비움의 시간, 단절의 시간이 삶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림책 『까마귀 소년』에서 땅꼬마는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고독과 외로운 시간을 견뎠을 거에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겠죠.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에게 맞는 소통 방식을 알게 되고, 사람들 속에 있지만 완전히 홀로 지낼 수 있는 법을 터득하게 된 거죠. 은둔자는 우리들에게 홀로있음의 완벽한 시간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요. 9번 은둔자는 궁핍함이 아닌 온전한 상태로, 고갈되지 않은 충만한 에너지를 키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카드입니다.
9번 은둔자 카드는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할까요?
숫자 9는 기다림의 시간, 내면을 바라보는 인내의 시간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공격적인 상태가 아니라 비움과 멈춤의 때입니다. 온전히 홀로 견뎌내어야 할 외로움일 수 있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진리를 찾아 떠나는 은둔자는 자아실현을 위해 성숙의 시간을 보내어야 합니다. 강압적으로 혹은 공격적으로 일을 벌리는 때가 아닙니다. 묵묵히 기도하고, 침잠하는 때이죠. 김치는 어느 정도 담근 후 시간이 지나야 적절하게 익어서 맛이 듭니다. 된장이나 간장 등은 발효의 시간이 필요하죠.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도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9번 은둔자 카드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성찰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메시지 입니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수원에서 작은 책방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타로카드 럭키박스>는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입니다.
*기존에 연재된 ‘타로카드 럭키박스’ 이야기는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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