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시절 개학을 앞둔 주간은 늘 괴로웠다. 분명 방학식 날 헤아려본 숙제는 거뜬해 보였는데 개학일 앞에서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새것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는 일일 학습지 ‘아이템풀’은 보기만 해도 엄마의 잔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와 오싹해졌다. 그 후에도 발등에 떨어진 불을 황급히 끄고 뒤늦게 알아차린 구멍을 메우는 일이 허다했다. 무언가 이미 다 이룬 것처럼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된 적은 얼마나 많던가. 테니스를 배워보려고 수업을 등록했을 때는 아마추어 대회라도 나갈 기세였지만 두 달을 가지 못했다. 새해에는 하루 한 줄 일기를 써보겠다고 양장으로 된 다이어리를 마련했다. 예상대로 다섯 장을 채 넘기지 못한 새하얀 일기장은 고스란히 책꽂이에 꽂혀있다.
‘끈기가 있어야 성공한다’라거나 ‘무언가를 시작했으면 꾸준히 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실제로 끈기가 주는 보상은 제법 커 보인다. 입시는 물론이고 어떤 시험을 치를 때나 악기나 운동을 익힐 때도 꾸준히 하면 결과가 더 좋아진다. 꾸준히 운동했더니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는 이야기, 빼먹지 않고 식단 관리를 철저히 했더니 병을 고쳤다는 사례, 형편없었던 성적이 엉덩이 힘으로 몰라보게 올랐다는 성공담. 모두 꾸준하게 무언가를 했을 때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꾸준함은 기질적인 요인이 있다. 꾸준한 행동이 수월히 잘 되는 사람이 있고, 어려운 사람이 있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유전학자인 클로닌저(C.R. Cloninger) 교수는 눈앞에 뚜렷한 보상이 없는데도 ‘언젠가는 얻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태어날 때부터 ‘언젠가’의 보상에 쉽게 동기화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운동한다고 오늘 저녁에 근육량이 당장 1킬로 늘지 않더라도 ‘언젠가’의 근육을 위해 가뿐히 헬스장으로 향한다.
그런가 하면 무언가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애를 많이 써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클로닌저 교수가 개발한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기질 및 성격검사)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Persistence(인내력)’ 성향이 낮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나타날 보상’에 대한 기대가 적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늘 당장 근육이 만들어지는 일이 없다면 굳이 헬스장으로 걸음하지 않는다.
흔히 TCI 검사를 해석할 때, ‘Persistence(인내력)'가 높은 성향을 매일 끈기 있게 무언가를 준비하는 개미와 같은 사람으로, ‘Persistence(인내력)'가 낮은 성향을 사자와 같은 사람으로 묘사하곤 한다. 사자는 하루의 대부분을 그늘에서 늘어져 있다가 사냥이 필요할 때 먹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든다.
이들은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다가 시험 사흘 전에 갑자기 초인적인 집중력을 보이고, 마감 전날 밤을 새울 때 가장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고 작업 속도도 최고조에 이른다. 매일 정해진 양을 꼬박꼬박 해내는 것보다 집중이 잘 되는 날은 더 많이 해치우고 그렇지 않은 날은 느슨하게 보내는 편이 결과가 더 좋다. ‘조금만 더 하면’ 달성할 수 있을 듯 손에 잡히는 목표, 달성 후에 곧바로 주어지는 보상, 재미와 흥분 같은 것들이 이들을 움직이게 한다. 그러니 한 달이나 한 주짜리 계획보다는 하루나 시간 단위로 잘게 쪼개진 목표가 이들에게는 더 잘 맞다. 느슨함과 에너지 폭발 사이를 오가는 사자와 같은 사람에게 매일 개미처럼 바지런히 몸을 움직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타고난 본성을 거스르라는 주문과 같다. 단거리 선수에게 장거리를 빠른 속도로 뛰어보라고 채근하는 느낌이랄까.
이들은 매 순간 앞을 향해 전력 질주하라는 세상 속에서 쉼이 필요한 때를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저 멀리 있는 과제보다 지금 자기 몸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감각하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묻는다. 자기 한계에 솔직하고 유연한 사람들이다.
한편 꾸준함이 자기 옷인 듯 잘 맞는 사람들은 한 번 그 행동에 시작하면 무빙 벨트에 탑승한 듯 중간에 내려오기가 더 힘들다. 이미 시작한 일은 내일 또다시 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그만두는 게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몸에 부담이 가는데도 계속해서 무리하게 운동하거나 비효율적인 업무방식을 끝까지 고수하는 등 유연하지 못할 때 원치 않는 결과를 얻게 되기도 한다.
사실 꾸준함이 곧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성공적인 결과는 꾸준함 그 이상이 필요한 일이다. 문제해결력이나 이해력, 소통 능력과 같은 상황에 맞는 능력이 필요하고, 전략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운과 환경도 필요하다. 제아무리 꾸준한 사람도 다른 역량이 충분치 못하면 원하는 성과에 이르기 어렵고 꾸준하지 못한 사람도 다른 역량 덕분에 목표하던 결과를 얻어내기도 한다. 어쩌면 그나마 눈에 잘 드러나고 어찌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이 ‘꾸준함’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꾸준함에 매달리는 게 아닐까. 꾸준하지 못한 사람은 성공을 보장받을 자격이 없다고 나무라면서.
꾸준함이라는 것은 결과를 내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고, 그 방식이 더 잘 맞게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모두에게 같은 정도의 꾸준함을 요구할 수 없다. 일이 잘되게끔 하기 위해 꾸준함이라는 방식이 더 필요한 일을 만나면 열심을 내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끈기를 높이는 것에 너무 집착하거나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게으르다고 탓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질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다. 내 기질이 어떤 모양이든 호주머니에 단단히 잘 넣어두고, 이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볼 일이다.
꾸준함이 욕심난다면, 쉽게 신겨지지 않는 신발에 겨우 발을 끼워 넣으면서까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애를 많이 써야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시험에 합격하거나 어떠한 기능을 마스터하거나 건강을 되찾기 원하는 것이다. 어쩌다 계획한 만큼 해내는 날에는 애를 쓴 나를 격려해 주고, 그렇지 못한 날은 에너지 폭발을 위한 힘을 비축해 놓는 날로 삼으면 어떨까.
꾸준함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과평가된 말일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꾸준히’라는 머리띠를 두르고 성실히 권하지만, 모두가 백 프로의 꾸준함을 발휘하여 원하는 성과를 얻는 사회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조금 무서운 세상이 아닐까. 사실 그런 성과를 얻는 것과 행복을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다. 연구자들은 행복한 사람이 성과가 더 높을 순 있지만, 성과가 행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어쩌면 성과라는 결과보다 성취를 해내는 그 순간의 나에 대한 뿌듯함, 목표에 다가간다는 희망이 더 기쁨을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계획만큼 해 내지 못한 하루도, 성과 없이 어영부영 흘러간 하루도, 쓸모없는 날은 없다. 그저 나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한 하루일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최선’이나 ‘꾸준함’에 닿지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대신 그러한 시선 속에서도 꿋꿋하게 하루를 일궈낸 나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꾸준함을 경주하고 있는 나를 알아봐 주면 좋겠다.
* 글쓴이_이지안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로 출간하였고,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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