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새해 맞이 잘 하고 계신가요?
어느덧 2024년 1월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해 한 해가 지날때마다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방향인지, 지금의 선택과 행동들을 나중에 후회는 하지 않을지, 그리고 지금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고 시작하기에 이미 늦은 건 아닌지 하는 생각들이 불쑥 찾아들곤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50이 넘어 개발을 시작해서 미국 유명 IT기업에 입사했다는 분, 영어 선생님을 하다가 작가로 등단하여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판타지 소설을 쓴 분, 회사원으로 지내다가 뒤늦게 연기자로 데뷔해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신 분 등 분야나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도전을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박완서라는 작가를 아시나요? 너무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 한국 문학계의 거장이자 큰 나무로 불리는 분이죠. 2011년 타계 후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의 작품을 찾는 이들이 많아 영원한 현역이라고 불린다고 하죠. 박완서 작가의 삶과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세지가 많아 2024년 첫 이야기로 들려드리려합니다.
그러면 잊혀진 여성들 78번째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해보겠습니다.
40세, 첫 장편, 등단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인 박완서는 그의 40살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이 다섯을 기르는 전업 주부였죠. 그가 여성동아에 장편소설 공모작으로 ‘나목’이라는 첫 장편 소설을 냈고, 바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등단했을 때, 40세이면서 다섯 아이를 기르는 주부라는 사실에 기자들이 본인이 쓴 것이 맞냐고 묻기도 했다고 하죠. 박완서는 그의 나이 80에 이르기까지 40여년 간 수많은 작품을 써내려갔습니다. 장편 소설 15편, 단편 소설 1백여편, 그리고 산문 660편을 쓴 그를 두고, 마르지 않는 샘을 가진 것처럼 쉼 없이 집필을 했다는 평가가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대표작만 해도 첫 장편이자 데뷔작인 <나목>을 비롯하여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서 있는 여자>, <친절한 복희씨>, <자전거 도둑>,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등이 있습니다. 작가 등단 초기에 그는 주로 6.25 전쟁과 분단 체험을 다룬 작품들로 이름을 알렸는데, 전쟁을 겪지 않은 후세대의 한국인들이 보지 못한 일제 치하 한국인의 삶과 전쟁 상황 속 인간의 굴정상 그리고 해방 후의 극심한 사상 갈등 등을 그려내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작가의 시선으로 후세대의 우리가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것을 보게 하는 작품들입니다.
지금은 40살이 넘어 등단하는 작가들도 많아지고 있고, 대표적으로 정유정 작가(대표작 <7년의 밤>, <28>, <종의 기원>)가 40세에 등단한 작가이자 현역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에 박완서가 등단과 동시에 중년 작가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지금은 평균수명 80세까지 길어진 수명으로 더 많은 ‘불혹’ 등단 작가가 생겨나고 있죠. 당시 늦깎이 신인 작가로 불렸던 박완서는 자신의 등단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쓰지 않고 ‘그냥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나는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때는 고통이었지만 지금은 그 체험들이 나의 밑천이니까.”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19쪽)
“작가 아닌 채로 살았던 세월이 길었던 게 좋았다. 밑천이 많다. 작가 하면서 쓸거리를 고민한 적이 없다.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74쪽)
앞서 말한 정유정 작가의 경우 간호사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일을 하면서 문학과 관련 없는 삶을 살다가 등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0세 이후에 등단한 다른 작가들 중에서도 무역업에 종사하고, 수학 교재를 만들고, 전업 주부로 가정을 돌보고, 굴착기 제작 회사에 다니는 등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다가 작가로 등단하기도 했죠. 오히려 그들의 접근 방식이나 작법이 문단에서 통용되는 것과 달라 눈길을 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늦깎이 작가들과 박완서의 삶을 통해, 다른 길을 걸었던 시간과 나이가 오히려 내면에 깊이를 더해 새로운 선택을 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여성의 삶에 언어를 입히다
‘박완서 선생님이 살았던 남녀 차별이 있었던 시대에는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죠. 지금 인터넷 페미들이 말하는 뷔페미니즘이랑 다르죠.’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박완서 작가의 팬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그의 작품을 페미니즘과 연결하는 데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며 쓴 댓글을 일부 각색했습니다. 우선 한국 (특히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사회악으로 매도하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작가가 ‘사회악’인 페미니즘과 함께 언급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는 것이겠죠.
박완서 작가가 90년대에 한 인터뷰로 그를 ‘페미니스트는 아니다’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인터뷰 내용은 어땠을까요?
더불어 그가 집필한 다른 여러 작품에서 여성 문제를 다룬 것에 한 인터뷰는 이런 내용이었죠.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그가 체험하고 인식한 여성의 삶을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그리고 통렬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중요하게 다뤄지기는 커녕 그 전까지 비문학적인 것으로 폄하됐던 여성들의 삶을 문학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였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한국 문학사 최초로 대중 여성의 생활 및 생활의 감정을 표현하여 여기에 존엄서을 부여했다며 <절반의 실패>로 알려진 이경자 작가는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박완서의 작품 활동 초기, 문단의 일부 문학주의자들은 ‘문학에서 커피 냄새가 나야 하는데 된장 냄새가 난다’며 비웃기도 했다고 하죠. 하지만 평론가들은 이 ‘된장 냄새’를 거부하기가 힘들었고, 결국 후대 여성 작가들이 문학계에 진출하는 물꼬를 트게 되었습니다. 그의 소설은 한국의 여성 문학과 페미니즘 연구를 활성화한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가 여성문제에 대해 다룬 것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1980년 출간한 <살아있는 날의 시작>을 비롯하여,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이 있습니다. 특히 가부장제 속 소외던 여성의 삶에 주목한 작품이 많고, 주인공이 가부장적 억압 구조에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 중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1989년부터 여성신문에 연재한 작품으로, 싱글맘인 주인공의 양육권 투쟁과 자아 찾기로 가부장제의 유치하면서 비열하고 잔혹한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이후 배우 배종옥을 주연으로 한 TV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죠. 작가는 가부장제에 대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본의 힘이란 곧 가부장의 힘이라는 사실을 고발하고 싶었습니다.’(<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78쪽)
‘우리가 이렇게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경제발전을 이루기까지 그 여자들의 싼 노동력에 빚진 게 많습니다. 그런 얘기를 나는 자꾸 하고 싶어요.’(<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96쪽)
- MC) 남자들의 모습은 약간 게으르고 무책임한 모습이 보이거든요. 어떤 의도가 있으신건가요 이런 묘사에서?
- 박완서) 의도가 아니라, 그건 그냥. 리얼리즘이죠.
박완서 작가의 대담 자리에서 한 방청객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좋은 소설은 자신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했든 페미니즘 소설이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왜 하필 페미니즘 소설이면 좋았겠다고 하셨는지, 그리고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페미니즘은 무엇인지요?‘ 이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시인 신현림은 아이들을 다 키우고 글쓰기에 도전했다는 자체가 위대해보였다며, 자신도 한때 박완서처럼 나이 마흔에 데뷔하리라 다짐했다고 합니다. 박완서는 작품을 통해서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만, 자신의 삶 자체를 통해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가 준 가장 큰 위로는 ”늦는다는 것은 없다. 언제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라는 메세지죠.
해가 지날 때마다 몸이 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지금에서야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맞을까 의문이 들곤 합니다. 박완서 작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에디터도 항상 스스로에게 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문학계의 거목인 박완서 작가가 보여준 것처럼, 삶의 어떠한 궤적도 자신에게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나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더 잘 하기 위해 노력할 때나 말이죠.
사람이 80살까지 산다고 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4천주(week / 정확히는 4171.43주)정도가 됩니다. 주로 환산해보면 평생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2천 번의 주를 내가 원하지 않는 시간으로 살아왔다면, 다음 2천 번의 주는 내가 원하는 시간으로 채워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2024년엔 지금껏 도전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을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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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
좋은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이어야 한다는 말이 참 인상깊습니다. 대상화되지 않은 여자, 사람 취급 받는 여자가 등장하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답변이 멋집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 문학에 사람인 여자가 지워지면 안되죠. 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엄마의 말뚝> 등 아주 재밌게 읽었었는데 본문에 인용된 책들도 꼭 읽어보고싶어요. 된장 냄새난다고 무시당하던 그 시절과 달리 요즘 문학계에서는 여성작가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활발히 활동 중이라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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