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명의 여성이 사라진 아일랜드의 비밀

침묵의 다리미, 여성을 지운 세탁소

2025.04.08 | 조회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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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꽃들이 하나 둘 피어나고 있는 완연한 봄입니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순간은 언제나 설렙니다. 따스한 봄 바람에 마음도 괜히 움직여서, 책 한권 들고 소풍을 가고 싶어지고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에디터 N은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나가고 있는데요. 한 소설을 읽고 이번 주 레터에서 이야기하면 좋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까 우려되어 소설 이름은 하단에서 밝힐게요.)

여성에 대한 낙인과 벌, 그리고 사회의 외면을 다룬 이 소설은 실제 역사 속에 있었던 한 장소를 배경으로 합니다. 바로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이죠. 여성의 몸과 행동을 통제하려 했던 이 어두운 역사는, 놀랍게도 불과 30년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마치 블라인드 북 같은 오늘의 레터, 시작해볼까요?


 

20세기 초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기관의 모습 (출처. Wikimedia)
20세기 초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기관의 모습 (출처. Wikimedia)

성녀와 창녀

 

구독자님은 억울하게 오해 받은 일이 있으신가요? 또는 어떤 작은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는데, 다른 사람에 비해 큰 불이익을 받은 적은요?

여성은 같은 행동을 해도 남성과 다른 평가를 받기도 하고, 같은 잘못을 해도 더욱 무거운 형벌을 받곤 합니다. 여성의 작은 흠은 확대되고 큰 장점은 축소되는 것은 오랫동안 이 사회가 움직여온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18~20세기의 여성들은 지금보다도 더한 혐오와 선입견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그 시절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억압과 공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막달레나 또는 막달렌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관(세탁소, 정신병원)들은 도덕적 일탈을 했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을 '교화'한다는 명분으로 유지되었던 곳들입니다. 아일랜드 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와 북미, 호주 등지에 존재했습니다. 이 기관들은 종종 종교 단체에서 운영되거나 감독을 받았습니다.

막달레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기관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를 따르던 여성 중 한 명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지켜 본 증인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에 대한 창녀와 성녀라는 이분법적 관점을 모두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몇몇 문헌에서는 그를 매춘부로 묘사하며 예수를 만난 후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고 말해 '참회의 성녀'로 불립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서는 막달레나가 예수의 뛰어난 수제자였기에 남성이 중심인 교회에서 질투의 대상이었고, 그로 인해 남성으로 이루어진 성직자 조직이 그를 창녀로 전락시켰다고 말합니다. 참회의 성녀라는 이미지로 인해, 막달레나 세탁소와 같은 기관들이 '타락한 여성의 교화'라는 사명에 막달레나라는 이름을 단 것이죠.

 

1940년대 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의 모습 (출처. theguardian)
1940년대 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의 모습 (출처. theguardian)

수 만 명의 막달레나들

 

막달레나 기관들에서는 일반적으로 매춘부로 일하던 여성들을 수용했습니다. 또는 빈곤한 삶으로 인해 매춘으로 빠지기 쉽다고 판단 된 여성들도 수용했고요. 막달레나 세탁소로 분류될 수 있는 첫 번째 기관은 1758년 설립 된 런던의 막달레나 병원이었습니다. 회개하는 매춘부를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30세 미만의 여성을 수용하고자 했는데, 놀랍게도 처음 수용 된 그룹은 9세에서 14세 사이의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제들로부터 도덕교육과 자수 등의 기술 교육을 받았죠. 그리고 19세기 말 영국에는 300개가 넘는 막달레나 세탁소가 존재했습니다. 이외에도 뉴질랜드, 미국, 스웨덴, 캐나다, 그리고 호주에도 이와 비슷한 기관들이 설립되었죠.

이 기관들은 빈곤지역과 매춘이 많은 지역에서 여성들을 모집했는데, 많은 여성들이 경찰이나 가족에 의해 끌려 왔습니다. 아동 복지 기관과 법원에서 감옥 대신으로 오기도 했고요. 끌려 온 여성들은 며칠에서부터 몇 주, 또는 몇 년을 기관에서 체류하였습니다. 바깥 사람들은 막달레나 기관에 있는 여성들을 '막달레나'(또는 매기)라고 불렀는데, 이는 경멸적인 뉘앙스를 담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일부 기관들은 창문을 막고 넘을 수 없는 벽을 두어, 여성들을 사회와 완전히 분리하기도 했죠. 이름만 세탁소 또는 정신병원일 뿐, 감옥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막달레나 세탁소의 여성들 (출처. RTE, 이미지 소유. IFI)
막달레나 세탁소의 여성들 (출처. RTE, 이미지 소유. IFI)

18세기에 생겨나기 시작한 이 기관들은 1960~70년대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없어지거나 다른 사명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일랜드만은 예외였죠. 아일랜드의 일부 막달레나 세탁소는 1990년대까지 존재했습니다. 동시에 열악한 환경으로 악명을 떨쳤고요. 아일랜드 지역에서 19~20세기에 걸쳐 막달레나 기관에 수감 된 여성들은 약 3만 명 가까이로 추산되는데, 그 중 약 1만 명이 1922년 아일랜드 독립 후 입소하였습니다.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강력한 유대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헌법에서 특별한 지위를 보장 받았고, 여성의 역할과 자리를 '어머니'와 '가정'에 제한하였죠. 이에 사회적으로 '타락했다'라고 여겨지는 여성의 범위가 더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강간이나 근친상간 피해자를 포함해 고아, 학대 당한 여성, 가족에게 버림받은 여성 등 당시의 아일랜드의 전통적 도덕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이들은 모두 타락했다는 낙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유혹적이다'라고 여겨지는 여성이나 장애가 있는 여성들도 막달레나 세탁소의 '교화' 대상이 되었고요.

아일랜드의 세탁소를 운영한 곳들은 네 곳의 수도회였는데, 이들은 자선단체임에도 호텔, 병원, 학교, 정부 기관의 세탁을 담당하는 영리사업으로 세탁소를 운영했습니다. 막달레나 기관들의 '타락한 여성'들을 교화한다는 사명은 겉치레일 뿐이었던 것이죠.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정신병원을 연구한 책을 펴낸 피네건은 이 막달레나 세탁소/정신병원이 거리의 매춘부를 줄이는 데에 매춘부들의 죽음보다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에 관해 폭로하는 책을 써 낸 메리 라프터리는 여성들을 사회에서 낙인을 찍고 그들을 세탁 사업의 무료 노동 공급원으로 이용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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