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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어떤 해적보다도 많은 남성과 선단을 지휘한 여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구역을 지나가는 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상선과 군함들을 닥치는 대로 공격해 침몰시킨 공포의 군단이라고 불렸고, 해적단의 규모는 대략 해적 8만 명, 해적선만 1,800척으로 남중국해의 전역을 지배하였습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성공했고, 완벽한 무패의 기록으로 은퇴한 이 전설적인 해적은 흔히 '치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세계 해적 역사상 유일무이한 인물로 자리할 수 있었을까요?
잊혀진 여성들 65번째 뉴스레터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해적인 치카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바로 시작해 볼게요.
치카이는 정일수(鄭一嫂) 또는 정씨(鄭氏)라고 불렸습니다. 남편이었던 정을(鄭乙) 또는 정일(鄭一)의 부인(嫂)이라는 뜻으로 영문 표기로는 청시(Ching Shih)이며, 서양에선 '마담 칭(Madame Ching)'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치카이'라고 가장 많이 불렸고 지금까지 내려오는 전설의 이름이 되었죠.
정을은 당시 남중국해를 주름잡던 해적이었습니다. 치카이는 정략결혼의 대가로 정을의 재산 절반을 주면 결혼한다는 조건을 걸었고, 1801년 결혼과 동시에 정을의 재산 절반을 얻게 되었습니다. 1807년 정을이 사망하자 치카이는 부하들과 조직을 장악했고, 몇 주 만에 남편의 부하이자 의붓아들과 재혼해 권력까지 쥐게 됩니다. 그는 여성이었고, 여성 해적은 매우 드문 현상이었기에 남다른 전략을 사용한 것이죠. 권모술수로 해적단의 수장으로 등극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실력과 능력은 남달랐습니다. 치카이가 이끌었던 선단은 남중국해 전역을 지배했으며 중국 청나라는 물론 영국,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상선 및 전선보다도 막강했습니다.
치카이는 전투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말 그대로 전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부하들뿐 아니라 모든 해적단이 그를 진심으로 따르게 되었습니다. 남중국해를 지나가는 서양의 배들을 무차별 공격해 침몰시켰고, 서양인들에게 치카이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 치카이의 해적 선단은 강대국의 어떤 해군보다 규모가 컸고 자신을 방해하는 배나 마을, 모든 국가의 해군들을 격퇴했습니다.
치카이는 남성의 반항을 막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치카이의 배에는 행동 강령이 있었습니다. 불복종, 절도, 탈영, 직무 유기 등의 죄는 모두 참수형으로 처벌했고, 그중에서도 여성 포로에 대해서는 특례 규정이 있었습니다. 여성 포로는 석방하고, 여성 포로를 강간하는 해적은 사형시켰습니다. 다만 여성 포로를 사랑하게 된 선원은 비용을 지불하고 그 여성과 결혼해야 하며 진정으로 여성에게 아내로서 대우를 다 하지 못하면 목을 베어 바다에 던졌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규율은 예외 없이 엄격하게 지켜졌으며 이를 어기게 되면 목을 베어 바다에 던져지는 형벌이 뒤따랐습니다.
17세기 해적 세계에서는 동성애가 표준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선장은 선원들의 유대감을 증가시키고, 긴장을 줄여줬기 때문에 동성애 관계가 유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 해적들에게도 마찬가지였기에 동성 간의 연애와 바지를 입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있던 서양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치카이의 해적 집단의 절대다수가 레즈비언이거나 게이였다고 합니다. 치카이 또한 정을이 사망할 당시 정을의 첩이었던 여성들을 자신의 애인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기에 레즈비언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치카이 덕분에 여자들은 해적선에 승선하여 합류할 수 있었고, 강간의 위험도 배가 아닌 땅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오히려 여성이 아닌 포로가 된 배의 선장이나 항해사 등의 남성들은 모두 다 본보기로 치카이의 해적들에게 강간당했다고 하니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할 만하죠?
치카이는 청나라 수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고 항상 승리했기 때문에 청나라에서는 이를 문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영국, 포르투갈과 연합함대를 구성하여 치카이를 소탕하려 했지만 무려 2년에 걸쳐 실패했습니다.
치카이가 전권을 잡은 지 3년 만인 1810년, 결국 청나라는 목숨과 재산은 남겨둘 테니 해산하라고 요구합니다. 당연히 치카이는 처음에 이 제안을 거절했지만, 조정과 협상 끝에 지금까지 약탈한 재물을 몰수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입니다. 치카이는 심복 7,000여 명을 해산시키고 배와 무기를 불태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치카이 수하의 해적들은 정식으로 청나라 수군에 들어가거나 공식적으로 석방이 되었습니다.
치카이는 약탈한 보물들에 대한 정식 소유권을 받은 후 해적에서 은퇴하여 청나라 황제로부터 명예직 관리에 임명받았습니다. 그리고 해적 시절에 번 돈으로 마카오와 광둥성 일대에 도박장과 호텔을 개업해 경영하면서 사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현재 마카오 도박장도 치카이가 활성화시킨 셈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 치카이는 30년 이상 부유하게 살면서 해적으로서 가장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완벽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은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게임으로 제작되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치카이를 오늘 처음 접한 것처럼 느껴진다면, 이번 기회에 한번 찾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미처 살펴보지 못한 곳곳에 보물 같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 이야기가 인생을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치카이의 해적 군단을 해산시켜도 보물만은 영원히 남은 것처럼 우리가 뿔뿔이 흩어져도 여성의 서사와 이야기는 영원히 남아 더 많은 여성의 세계가 넓혀지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 또 만나요!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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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
허억 이런 분을 처음 알았다니.. 굉장히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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