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휴재 기간 동안 잘 지내셨나요? 시작하기에 앞서 기다려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잊혀진 여성들 시즌 2의 첫 번째 뉴스레터이자 쉰세 번째 뉴스레터는 여성 수형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가해자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아주 드물게 나타납니다. 그들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사상 최악의 범죄자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합니다. 범죄까지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소수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은 도대체 어떤 범죄를 저질렀으며 왜 감옥에 가게 되었을까요?
여성 수형자들이 수감되는 청주여자교도소는 1989년 10월 16일에 설립된 국내 유일 여자교도소입니다. 약 30년이 지난 지금도 청주여자교도소는 한국 유일의 여성 전용 교도소이죠. 이곳에 모든 여성 수감자가 다 수감되는 것은 아니며 대부분 장기수가 수감되어 여성 재소자의 4분의 1이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나머지 재소자들은 전국 47개의 교정시설에 분산 수용되어 여성 수형자를 위한 별도 구역에서 지내게 되는데요. 1년 남짓의 단기수, 사형수와 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는 여성 피고인들이 사용하게 됩니다.
청주여자교도소에서는 한식 조리, 제과제빵, 미용, 화훼장식 등 여성들에게 맞춰진 교육, 교화 프로그램이 실시됩니다. 그러나 일반 교도소의 경우 여성 재소자의 비율이 10%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교도소 차원에서 여성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어려워 다양한 전문 교화프로그램에서 소외됩니다. 이런 실정은 사회 복귀의 실패로 이어져 재범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정학 전문가들은 여성 재소자를 '남성 교도소의 잊혀진 범죄자'로 부릅니다. 남성 재소자를 관리하기 위해 다듬어진 제도와 시설, 군사 문화 안에서 여성 재소자는 차별받고 소외되어 있다는 뜻으로요. 국가인권회가 여성 재소자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003년 12월 발표한 '구금시설 내 여성 수용자 인권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수용 생활 중 난점으로 수용자와의 관계, 가족 생각, 비좁은 거실, 의료 건강, 교도관의 비인격적 태도, 목욕, 종일 앉아서 생활하기 등이 꼽혔다고 합니다. 조사를 맡았던 한림대 심리학과 조은경 교수는 남자 재소자들은 여성들보다 더 넓은 공간을 쓰며, 여가 및 작업 공간도 훨씬 크고, 전용 식사 공간이 있는 곳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여성 재소자의 특성을 배려하는 원칙이나 법 조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성'보다 '모성'을 보호하는 조항이 대부분이며, 광범위한 것들은 개별 교도소의 시설과 관례, 또는 교도관의 의식에 달려있어 여성 재소자의 기본적인 인권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교도소의 의식이나 제도 모두 군대식의 남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어 여성성을 이해하며 접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 수형자는 대부분 수동적이며 순응적이고 여성 범죄자의 80%는 빈민층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도소 규칙에 대한 준법정신은 남성보다 높으면서도, 인권 침해를 당해도 부당성을 제기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차별과 소외의 굴레가 사회에서도, 교도소에서도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잊혀진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요.
청주여자교도소 수형자들의 가장 흔한 죄명은 '살인' 입니다. 10명 중 4.6명이 살인범이며 그중에서도 남편을 살해한 경우가 많습니다. 2004년 1월 기준으로 전체 수형자 431명 중 133명이 남편을 살해했습니다. 왜 여자들은 남편을 죽였을까요?
살인은 끔찍한 범죄입니다. 그러나 남편을 살해한 여성들에게서는 동정여론이 형성됩니다. 그 이유는 여성에 의한 남편 살인의 경우, 범죄의 원인이 다른 범죄들과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범죄의 경우, 범죄자의 개인적 성격 특성, 자라온 환경, 가족 특성, 또는 개인이 가진 범죄적 경향이 주로 범죄의 주원인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남편 살해 여성의 경우에는 남편의 학대에 대한 자기방어 때문에 남편을 살해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남편을 살해한 대부분의 여성이 살해를 저지르기 전, 오랜 기간 남편으로부터 심한 학대와 폭력에 시달려 온 학대받은 여성들이라는 것에 일치된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아내만 남편을 죽이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의 아내 살해는 훨씬 많습니다. 아내 살해는 남편 살해 건수의 열 배나 되니까요. 남편 살해는 주로 가정폭력 피해자의 반격인 반면, 아내 살해는 가정폭력 가해자가 행한 폭력의 극단적인 결과입니다. 남편과의 관계를 끝내고 싶어도 남겨진 자녀들과 남편의 위협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고, 그런 환경 속에서 여성들은 결혼 생활을 지속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이러한 학대에서 본인과 아이들을 방어하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게 되는 것이죠.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김영희 교수의 연구팀은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110여명의 여성 살인범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벌인 결과, 여성 살인범들의 범행에 대해 ‘남편의 학대가 살인의 매우 강력한 동기’라는 결론을 도출하며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학대가 주는 고통에 대한 사회적 몰이해로 인해 여성 살인범들이 지나치게 과중한 형량을 언도받는다고 지적했습니다. 1993년부터 여성 살인범들을 위한 변론 활동을 펼쳐온 서울여성의전화 정춘숙 회장은 "남편이 아내를 마구 폭행해 숨지게 하면 폭행치사로 집행유예가 선고되지만, 아내는 더는 탈출구를 찾을 수 없어 저지르는 범행은 살인죄로 무겁게 다뤄지고 있다. 법의 형평에 맞지 않을뿐더러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사건에서 정당방위 판결이 나오고 있습니다. '*피학대여성 증후군'이라는 심리적 이상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남편이 무기를 들고 접근했을 경우 배심원 판결에서 76%가 무죄를 선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 재판에서는 남편이나 연인을 살해한 여성이 장기간의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어도 '정당방위'가 인정된 판례는 아직 없습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방어 행위가 '쌍방폭력'으로 처리돼 실제로 피해자가 처벌받고 있기까지 합니다.
*피학대여성 증후군 : 항상 긴박한 위험 상태에 놓여 있다고 느끼며, 다른 상황을 생각할 능력이 없는 상태.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성별에 따라 형량에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2017년부터 시작된 '웰컴투비디오'는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 및 성폭력 영상 불법 유통 사이트로 검거된 310명 중 223명의 한국인 이용자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운영자 손 씨는 '나이가 어리고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으며 회원들이 올린 음란물이 많다'는 이유로 1년 6개월 징역형이 선고되었습니다. 반면 2018년 누드화 수업 과정에서 남성 모델의 사진을 유포한 여성 피의자는 징역 10개월, 2,500만 원의 배상 판결이 났습니다. 이 사건의 피의자도 초범이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피의자의 반성만으로 책임을 다할 수 없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들은 불법 촬영과 편파 수사에 항의하는 규탄 집회를 열고 동일 범죄, 동일 수사, 동일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일상이 된 젠더 폭력과 이에 대한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맞선 일이었습니다. 한국의 사법 체계는 남성에게 관대하고 여성에게 가혹하다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성 피의자를 유례없이 포토라인에 세운 것만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죠.
살인죄 또한 남성보다 여성이 더 무거운 형량을 받는 일이 많습니다. 남성 살인자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법정에서 끊임없이 읍소를 하고 항소하다 보면 계속 형량이 줄어들게 되는데요. 반면 여성 살인자는 변호사가 아무리 설득해도 항소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경우 똑같은 살인임에도 재판장에 섰을 때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계획적으로 접근하여 죽이기 때문에 죄질이 더 무거워진다고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힘에서 밀리기 때문에 여성 살인자의 경우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죠.
여성은 심리적 탈진, 그리고 죄책감으로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에 응하기 때문에 경찰, 검사, 판사의 질문에 모두 ‘예’라고만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덤비는 남편에 대항하다 실수로 흉기로 찔렀는데도 조사 과정에서 ‘직접 찔렀다’며 사실과 다르게 응답한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죗값은 치러야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범행동기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법원에서도 성별 차이를 받아들인다면 죄질을 더 공평하게 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교도소나 구치소 등에 수용된 여성 재소자 대부분은 자비로 정혈대를 구입하고, 여성 재소자 중 44%의 인원이 구금 생활 중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등 구금 시설 내 여성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전국 교도소의 여성 수용자 수용률이 최대 273%에 이르는 교도소도 있을 만큼 과밀 수용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여성 재소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낮습니다. 사회적으로 외면받기 쉬운 재소자 신분으로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여성 재소자들도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해보면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앞으로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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