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도 제모 때문에 고민인 여성들을 위한 이야기, 여성 제모의 역사

제모도 가부장제의 산물이라고?!

2022.06.07 | 조회 1.67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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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성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익명이었던 여성들 - 우리의 불만을 기록합니다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잊혀진 여성들 스물네 번째 뉴스레터는 여름이면 떠오르는 그것, 제모 입니다.

몇 년 전, 한 면도기 광고에서 제모하지 않은 여성의 모습이 나와서 큰 파장이 일었죠. 이 광고는 해당 면도기 회사가 100년 만에 처음으로 제모하지 않은 여성을 광고에 등장시킨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구와 함께요.

“누구나 털을 가지고 있다”

날이 점점 더워지는 요즘. 제모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을 위한 이야기, 지금 시작할게요.

Harper’s Bazaar, 1922
Harper’s Bazaar, 1922

여성 제모의 역사

제모에 대한 기록은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성별 상관없이 제모했다고 합니다. 이후 기록으로는 로마 시대의 상류층 여성,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여성 제모에 대한 내용이 남아있고요.

그러다 1871년 찰스 다윈이 ‘호모 사피엔스가 털이 없는 상대에게 더욱 성적으로 매력적으로 느껴 털이 없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자연 선택 이론을 내세우며 현대의 제모가 촉발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지금까지도 털이 있는 상태가 덜 진화 된 상태로 여겨지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여성의 체모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고, 제모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DERMATINO 제모 광고, Getty Images
DERMATINO 제모 광고, Getty Images

여성 제모에 대한 요구는 자본주의 상업화와 함께 더욱 커졌습니다. 몸 그 자체가 패션이 되기 시작한 1915년~1920년쯤입니다. 이는 브라와 메이크업 그리고 다이어트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여성해방 물결과 함께 여성 의복에 변화가 생기면서 짧고 간편한 옷들이 등장했고, 여성지 칼럼니스트들과 미용 산업에서 여성의 제모를 부추겼습니다. 하퍼스 바자에서는 4년간 여성의 겨드랑이털 제모 광고를 하며, ‘털 없는 몸이 아름답다’는 미적 기준을 강요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면도기 회사인 질레트가 여성 전용 면도기를 출시합니다. 이전의 면도기보다 폭이 다소 좁은 형태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가격은 높이 매겨 핑크택스를 빼놓지 않았죠. 다른 기업들도 여성 제모 산업에 너도나도 참여하게 되면서, 미용 산업에서 여성의 털을 터부시하고 금기시하는 문화를 공고히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제모는 여성성의 기준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미국 면도기 제조업체 빌리(Billie)의 여성용 면도기 광고 (유튜브 화면 캡쳐)
미국 면도기 제조업체 빌리(Billie)의 여성용 면도기 광고 (유튜브 화면 캡쳐)

누구나 털을 가지고 있다

이미 털 한오라기 없는 겨드랑이와 다리를 제모하는 여성 제모 광고와 달리 남성용 면도기는 털이 얼마나 잘 잘리는지 털의 단면까지 확대해서 성능을 보여줍니다. 같은 제모 광고임에도 여성 제모 광고는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데에만 신경 쓴듯 하죠. 이는 제모가 여성 스스로의 선택이나 기호라기보다는, 여성이 남성 선호의 대상이 되는 게 중요한 가부장제의 요구 때문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2018년, 면도기 회사 빌리에서는 여성의 체모를 그대로 드러낸 광고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겨드랑이뿐 아닌, 다리, 배, 발가락 등에 있는 체모를 제모하는 모습을 광고에 담은 것이었습니다.

 

빌리 광고 중 발가락 제모 장면 (유튜브 화면 캡쳐)
빌리 광고 중 발가락 제모 장면 (유튜브 화면 캡쳐)

빌리사는 홈페이지에 “지난 100년 동안 여성용 면도기 브랜드는 여성의 체모를 인정하지 않았다. (중략) 광고에선 여성들이 완벽하게 깨끗한 다리를 면도하는 장면만을 보여줬다”라며 해당 광고에 해당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여성의 몸이 털 없이 매끈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체모를 부끄럽게 느끼게 하고 수치심을 유발한다. (중략) 어떤 여성은 제모를 원하고, 또 어떤 이들은 털을 그대로 두길 원한다. 어떤 선택이든 자신의 선택에 사과할 필요는 없다.

조지아나 굴리(빌리 공동 창업주)

 

겨드랑이털 안 밀기 운동을 하는 Armpits4August
겨드랑이털 안 밀기 운동을 하는 Armpits4August

겨드랑이털 안 밀기 운동

2012년에는 영국에서 제모 반대 운동이 있었습니다. 몸에 난 털은 자연스럽고 당연함에도, 마치 여성은 제모하고 태어난 것처럼 항상 털이 없는 상태여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제모 반대 운동, 겨드랑이털 안 밀기 운동은 SNS를 통해 몇 년 간 지속되었습니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많은 여성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겨드랑이털 사진과 함께 해시태그를 올리곤 하죠.

최근 남성 미용 산업도 성장하며 제모를 하는 남성들도 늘어나고 있으나, ‘남자 제모’는 완전한 개인적 선택에 비롯하지만 여성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여성에게 제모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일 수 없다는 것이죠. 제모란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고, 억압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라는 안일한 시선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압니다. 여성의 제모는 개인적 선택이 아닌 사회적 선택으로 강요된다는 것을요.

여성의 털이 가부장제의 억압과 상업화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날까지, 여성들의 운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아직 그날이 오지 않아 많은 여성은 올여름도 고민하게 되겠죠.

“다리털이 너무 길진 않은가? 두껍지 않은가? 어제 샤워하면서 겨드랑이털을 밀었던가? 팔 털이 너무 원시인 같지 않나?”

 

“자본주의 체제는 우리에게 여성성은 우리가 구매해야 하는 것이라고, 남성과의 차이를 과장하는 방향으로 몸치장을 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성별화 될 수 없다고, 여성성이라는 임의적 개념에 맞춰 스스로를 부호화하지 않으면 여성적일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선택의 주체는 우리라고 세뇌시킨다. 나는 체모를 기르기 시작한 뒤에야 내게는 조금도 선택권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여자다운 게 어딨어 - 에머 오툴 [한국여성의전화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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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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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치그레잇

    0
    over 2 years 전

    여성을 인형처럼 매끈하고 무결한 제형으로 가공하고 변형하는 모든 수고가, 결국 미소지니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털, 그거 맨날 나는 거 대충 내버려두면 좋겠습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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