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문학으로 읽는 영국

함께 읽는 영국 추리소설, 『사일런트 페이션트』② 고대 그리스 비극의 현대적 부활

신화는 죽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꿔 돌아올 뿐이다.

2026.01.11 | 조회 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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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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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38년 봄, 아테네에 디오니소스 대축제가 펼쳐졌다. 포도주의 신, 황홀경의 신, 연극의 신을 기리는 축제였다. 비극 작가들이 무대에 올랐다. 소포클레스부터 에우리피데스까지. 이름만으로도 영원이 되어버린 이들이었다.

그해 에우리피데스는 네 편의 극을 선보였다. 그중 하나가 알케스티스Alcestis였다.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는 극이었다. 비극이라 했지만 결말은 행복해 보였다. 죽었던 여자가 살아 돌아오고, 가족이 재회했으니까.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단순하다. 테살리아의 왕 아드메토스. 신들에게 경건했고, 손님을 후하게 대접했으며, 아폴론이 제우스에게 벌받아 지상으로 추방되었을 때 그를 목동으로 받아주었던 선한 왕이었다. 아폴론은 그 은혜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운명의 세 여신이 갑작스레 아드메토스의 생명의 실을 자르겠다 선언한다. 그에게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이에 아폴론이 운명의 여신들과 담판을 지었다. 그리고 기적을 만들어냈다. 누군가 아드메토스를 대신해 죽는다면, 그는 살 수 있다.”

이에 아드메토스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누가 나를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있겠소?”

먼저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 아버지는 이미 오래 사셨지 않습니까. 삶의 대부분을 누리셨습니다. 제 대신 죽어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늙은 왕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햇살은 따뜻하고, 포도주는 달콤하구나.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어머니에게도 같은 부탁을 했다. 같은 거절을 들었다. 친구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위해 대신 죽어주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때 그의 아내 알케스티스가 말했다.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제가 죽겠어요. 당신을 위해.”

아드메토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거절도 없이.

평소 사랑을 노래하던 남자가, 아내가 죽겠다고 나서자 그것을 덥썩 받아들인 것이다. 그의 입에서 “안 돼, 당신이 죽느니 차라리 내가 죽겠소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알케스티스는 남편을 위해 목숨을 잃었다. 천천히 그리고 슬프게. 덕분에 아드메토스는 목숨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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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알케스티스」– 장프랑수아 피에르 페이롱 작품 (1785년) 출처: Jean-François Pierre Peyron - Web Gallery of Art: Image  Info about artwork, Public Domain

그때 헤라클레스가 아드메토스를 찾아왔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한 그 남자를 아드메토스는 두 팔 벌려 환대했다.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은 감춘 채,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이때 하인 중 한 명이 헤라클레스에게 진실을 귀띔했다. 이 집 주인의 아내가 죽었다고. 지금 이렇게 헤라클레스가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이 순간에도 무덤 속에 누워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헤라클레스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친구의 집에서, 친구의 상중에, 이렇게 흥청망청 즐기고 있었다니. 그는 즉시 결심했다. 알케스티스를 되찾아오겠다고. 그것이 진정한 친구가 할 일이라고.

그는 주저 없이 저승으로 내려갔다. 어둠의 세계로.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찾아가 그를 무찌르고 알케스티스를 데리고 돌아왔다.

극의 마지막 장면. 아드메토스는 환희에 차서 돌아온 아내를 껴안았다. “당신이 돌아왔구려! 신들께 감사를!”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알케스티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인형처럼. 그림자처럼.

당황한 아드메토스가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요?”

이에 헤라클레스가 설명했다. “그녀는 사흘간 침묵해야 합니다. 저승의 신들에 대한 빚이 청산될 때까지요. 그러면 정화되어 다시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극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환한 빛 속에서, 가족들의 행복한 재회를 보여주며.

하지만 극을 본 관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알케스티스가 침묵한 진짜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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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스티스의 시신을 두고 죽음과 씨름하는 헤라클레스」– 프레더릭 로드 레이턴 작품, 영국 (약 1869~1871년) 출처: By Daderot - Own work, Public Domain

 

침묵 속에 숨은 분노

 

지난 2,500년간, 사람들은 알케스티스 침묵의 진정한 의미를 해석하고자 고군분투해왔다. 어떤 이들은 헤라클레스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그녀는 저승의 법칙을 따른 것뿐이라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알케스티스의 침묵을 분노라 읽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가 닿지 않는 배신의 고통이라고. 생각해보라. 알케스티스는 사랑하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그 남편은 어떻게 했는가? “안 돼라고 말하지 않았고, “내가 차라리 죽겠소라고 외치지 않았다.

그녀가 부활 후 돌아온 곳이 바로 그 남편의 품이다. 자신을 기꺼이 죽음에 내준 남편 말이다. 그녀는 그런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사일런트 페이션트에는 범죄 심리치료사 테오가 이 고대 극본을 읽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역시 처음에는 알케스티스의 침묵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껏 살아 돌아와 놓고, ?

더 그로브의 임상 책임자이자 그의 동료인 디오메데스가 그에게 조용히 묻는다. “테오, 당신은 배신당해본 적이 있나요? 만약 있다면 당신도 알케스티스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침묵은 분노입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쩌면 그녀는 남편을 죽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죠. 시대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침묵으로 그를 벌주는 겁니다. 평생.”

그 순간, 한 가지 질문이 테오의 머릿속을 강타한다. ‘침묵하는 환자알리시아 베렌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녀도 배신당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누가 그녀의 아드메토스인가? 남편 가브리엘인가?

잠깐, 그렇다면 남편 가브리엘을 죽인 건 알리시아가 아니란 말인가?

 

신화로 짜인 소설

 

사일런트 페이션트는 그리스 신화로 뼈대를 세운 집과 같다. 알케스티스만이 아니다. 마이클리디스의 천재성은 신화를 장식품이 아니라 건축 자재로 사용한다는 데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 그들의 이름조차 신화에서 빌려왔다.

디오메데스Diomedes. 트로이 전쟁의 영웅. 용감하고 교활했던 전사. 그는 오디세우스와 함께 밤의 어둠을 틈타 적진에 침투해 잠든 트라키아 병사들을 죽였다. 명예롭지 못한 방식으로.

소설 속 디오메데스는 더 그로브의 임상 책임자다. 똑똑하고 통찰력 있어 보인다. 환자들을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어두운 비밀을 품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신화 속 그의 이름값을 할 것과 같이.

알리시아Alicia. 이 이름 자체가 알케스티스Alcestis의 변형이다. 음운이 닮았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자화상에 알케스티스라는 제목을 붙인다. 그것은 정체성의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설 곳곳에 다른 신화적 은유들이 숨어 있다. 테오는 알리시아를 침묵하는 사이렌이라 부른다. 사이렌Siren. 바위 위에 앉아 노래하는 반인반조의 존재들. 그녀들의 노래는 너무 아름다워서 지나가는 선원들이 유혹당해 배를 바위에 부딪치고 죽는다. 하지만 알리시아는 노래하지 않는다. 그녀는 침묵한다. 그런데도 테오는 유혹당한다. 침묵하는 사이렌.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그녀의 유혹은 더 강력했던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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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가 죽음의 신 타나토스에게서 알케스티스를 빼앗아 아드메토스에게 데려오다」 요한 하인리히 티슈바인 작품 (약 1780년) 출처: Johann Heinrich Tischbein - http://www.bassenge.com, Public Domain

 

두 문화가 만나는 지점

 

마이클리디스가 그리스 신화에 천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키프로스의 그리스계 아버지의 집에서 자랐다. 그리스 신화는 그에게 잠들기 전 자연스럽게 접하는 이야기였고, 교훈이었고,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영국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의 열정과 영국의 절제. 그리스의 운명론과 영국의 실용주의, 그리스의 비극과 영국의 추리 소설 등 두 세계 사이에서, 두 언어 사이에서, 두 감수성 사이에서 자랐다.

영국 문학에는 찬란한 탐정 소설의 전통이 녹아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스, P. D. 제임스까지. 그들은 소설 속에서 정교한 논리의 퍼즐을 만드는 데 능숙했다. 독자는 단서를 하나둘 따라가고, 그 단서 끝에는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매우 이성적인 세계다.

반면 그리스 비극은 전혀 다른 세계다. 거기에는 운명이 있다. 인간은 그저 신들의 체스판 위 말에 불과하다. 아무리 똑똑하고 강해도,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마이클리디스는 이 두 전통을 하나로 녹여낸다. 사일런트 페이션트는 표면적으로 탐정 소설이다. 탐정 역할을 하는 인물은 테오다. 그는 단서를 모으며 알리시아의 과거를 샅샅이 조사한다. 친구들을 인터뷰하고, 그림들을 분석하고, 그녀의 일기를 뒤지며 진실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그리스 비극이다.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테오는 결국 진실에 도달하지만, 그 진실은 그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테오가 찾던 진실은 그를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파괴한다. 마치 처음부터 그에게는 그런 운명이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무기

 

알케스티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에우리피데스는 이 작품에서 정말로 행복한 결말을 의도했을까? 표면만 보면 그렇다. 알케스티스는 살아 돌아왔고 덕분에 가족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 정말? 그렇다면 대체 왜 알케스티스는 기뻐하는 대신 침묵하는 길을 택했단 말인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낮았다. 여성은 침묵해야 했다. 특히 공적인 장소에서의 제약은 더 심각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남성들만의 민주주의였고, 여성의 미덕은 조용함이었다. 소포클레스의 또 다른 비극 아이아스Ajax에서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단언하기도 했다. “여자에게 침묵이 장식이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는 다른 비극 작가들과 달랐다. 그는 여성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주었다. 복잡하고 강렬한 목소리를. 메데이아Medea는 남편의 배신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복수한다. 파이드라Phaedra는 금지된 사랑의 고통을 절절하게 토로한다. 그리고 알케스티스는 침묵이라는 무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마이클리디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성들이 침묵하는 이유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어떤 침묵은 억압에서 옵니다. 강요된 침묵. 하지만 어떤 침묵은 선택입니다. 말하기를 거부하는 것. 그것은 권력의 행사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설명하지 않겠다. 나는 당신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의 용서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침묵입니다.”

알리시아 베렌슨의 침묵도 그렇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알리시아는 누군가 자신을 스토킹하고 있다고 주변에 호소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남편 가브리엘은 스트레스 때문이라 치부했고, 그녀의 상담사 크리스천은 불안 장애의 증상이라며 약만 처방했다. 그녀의 친구들조차 그녀가 너무 예민한 것일 뿐이라며 그녀의 말을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 목소리를 내야 하는 순간에 그녀는 침묵을 택한다. 그리고 그 침묵은 추후 남편의 얼굴에 박힌 다섯 발의 총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퍼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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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메토스가 알케스티스를 애도하다」 — 요한 하인리히 티슈바인 작품 (약 1780년) 출처: By Johann Heinrich Tischbein - http://www.bassenge.com, Public Domain

 

선택과 운명 사이의 경계

 

그리스 비극의 핵심 질문은 언제나 하나였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운명이라는 실에 묶여 있는가?’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피하려 했다. 그래서 집을 떠났다. 하지만 바로 그 도피가 운명을 완성시켰다. 길에서 만난 무례한 노인을 죽였는데, 그것이 친아버지였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이 되어 과부 왕비와 결혼했는데, 그것이 친어머니였다.

아드메토스의 선택 역시 스스로 살고자 내린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는 알케스티스의 침묵, 아마도 평생의 죄책감, 결코 온전히 행복할 수 없는 삶이었다.

사일런트 페이션트에서도 마찬가지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한다. 테오가 더 그로브에 취직해 알리시아를 치료하기로 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테오의 의지에 따른 정말로 자유로운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는 보이지 않는 운명이라는 실에 이끌린 것일까?

알리시아는 침묵하기로 선택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정말로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일까? 아니면 그녀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외적인 요인이 있었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경험한 후에는? 언어가 닿지 않는 지옥을 본 후에는?

마이클리디스는 이 소설을 통해 이 두 요소를 모두 암시한다. 우리는 본인의 의지에 의해 선택하며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알고 보면 많은 경우 그 선택은 과거의 상처에 의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의해, 타인의 선택에 의해 형성되곤 한다. 우리는 자유롭다. 하지만 동시에 묶여 있다. 실로. 보이지 않지만 절대 끊을 수 없는 실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극을 썼다. 비극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조심하라.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당신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크고, 훨씬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라고.

 

메아리치는 질문

 

그렇다면 왜 고대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 것이 아직도 중요한 걸까? 왜 우리는 2,500년 전 아테네의 야외 극장에서 공연된 극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그때와 비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민주주의 안에 산다(비록 그리스인들도 민주주의를 발명했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우리는 더 이상 제우스나 아폴론을 섬기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과학이 있고, 심리학이 있고, MRI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랑과 배신. 희생과 이기심.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우리가 타인을 정말로 알 수 있는가. 용서는 가능한가. 과거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는가.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우리피데스는 이런 질문들을 무대 위에 올렸다. 2,500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 마이클리디스는 같은 질문들을 소설로 쓴다. 단지 배경이 런던이고, 등장인물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고, 극장 대신 정신병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여전히 우리를 답을 기다리고 있다.


1. 이번 주 생각해볼 질문들

  •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그것은 사랑인가, 아니면 자기파괴인가?
  • 고대 그리스인들은 운명을 믿었다. 당신은 운명론자인가, 아니면 자유의지를 믿는가?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가?
  • 현대 사회에서 “알케스티스”처럼 자신을 희생하도록 강요받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2. 읽으면서 들으면 좋은 음악

  •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의 오페라 알체스테Alceste(1767) – 알케스티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 특히 2막의 “Divinités du Styx”는 알케스티스가 죽음을 받아들이며 부르는 아리아로 비장하고 아름답다. 그녀가 침묵하기 이전의 마지막 노래.


3.
다음 주 예고

  • 함께 읽는 영국 추리소설, 『사일런트 페이션트』3화에서 우리는 알리시아의 그림들을 더 깊이 탐구할 것이다. 예술은 어떻게 치료가 되는가? 말할 수 없을 때 그림은 어떻게 언어가 되는가? 그리고 영국의 예술 치료 전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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