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안녕~ 씨니야. 오늘은 3월을 딱 하루 앞둔 2월의 마지막 날이야. 2025년이라는 게 아직도 어색한데… 시간 참 빠르다 싶어. 이번 특집호에선 어떤 콘텐츠를 소개할지 고민하다가, 이 시점에 다루면 좋을 것 같은 영화 하나가 떠오르더라고. 그럼 긴말 없이 오늘의 아무콘텐츠 영화 <하얼빈>을 소개할게!
소개에 앞서, 내가 이번 특집호로 <하얼빈>을 선택하게 된 이유부터 간단히 얘기하고 싶었어. 2025년은 육십갑자로 따지면 ‘을사년’이야. 혹시 ‘을사’하면 역사적 사건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905년 을사년, 대한제국은 일본과 강제로 ‘을사늑약’을 맺었어. 고종은 거부했지만, 일본은 대신 회의를 소집해 대한제국의 대신 한 명 한 명에게 조약체결 찬반을 물었지. 이때 대신 중 을사늑약 체결에 찬성한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다섯 명을 통틀어 ‘을사오적’이라고 불러. 을사늑약 체결로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이는 일본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하게 된 시발점이 됐지.
내일은 삼일절이지? 1919년 3월 1일 일어난 민족독립운동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어. 그래서 삼일절의 정신은 헌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 헌법이 명시한 것처럼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으니 말이야!
*법통 : 법의 계통이나 전통
을사년인 올해, 삼일절을 앞둔 오늘, 지금이 영화 <하얼빈>을 소개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같았어. 그러니 구독자 이번 회차를 쓰게 된 배경을 잘 기억하면서 따라와 줘!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야. 그 과정에서 안중근은 동료들이 죽어가고, 누굴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의무를 맞닥뜨리지. 영화는 안중근을 독립운동의 영웅으로만 다루는 게 아닌, 시대의 흐름 속 고뇌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모습을 함께 보여줘.
참고로 <하얼빈>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지만, 일부 허구가 섞여 있어. 주요 독립군으로 나오는 이창섭(이동욱), 공부인(전여빈), 김상현(조우진)과 일본군 소좌로 나오는 모리 다쓰오(박훈)은 가상 인물이야.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 허구를 어색하지 않게 섞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하얼빈>은 가상 인물을 적절하게 작품 안에 배치하며 캐릭터를 통해 독립운동의 무게감을 강조하지. 개인적으로 영화 속 가상 독립군 캐릭터들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독립군들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어.
영화는 강렬한 ‘신아산 전투’로 시작해. 산에서 일본군을 급습한 독립군들은 일본군과 난투를 벌이지. 실제 신아산 전투는 7월이었다고 하는데, 영화에선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푸른 빛을 띠는 공기와 하얗게 쌓인 눈은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대조적으로 독립군과 일본군은 진흙과 피범벅이 된 채 구르고 있지. 고요한 풍경 아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이질감 때문에 인상적이었어.
독립군은 신아산 전투에서 승리하고 일본군 포로를 붙잡는 데 성공해. 그런데 안중근이 만국공법에 따라 포로들을 풀어주자고 한 거야. 독립군 사이에서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은 포로를 풀어주게 돼.
안중근의 판단은 실책으로 돌아왔어. 풀어준 포로들 때문에 독립군 위치가 탄로 났거든. 독립군은 일본군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안중근은 많은 동료를 잃어. (이 이야기는 실화야.) 영화에서 안중근은 자신의 믿음으로 동지들이 희생됐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이 사건을 계기로 안중근은 반드시 이토 히로부미를 없애겠다는, 숙명 같은 다짐을 하지.
죽을지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독립운동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독립운동에 대해 배우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질문일 거라 생각해. 언제 독립 할 수 있는지, 독립을 할 수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념 하나로 모든 걸 내던진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쉽지 않아.
<하얼빈>은 이와 같은 질문에 ‘목숨의 무게’를 들어 답변해. 안중근과 동료들은 폭약을 수급하기 위해 과거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박점출이란 인물을 찾아가. 그런데 다시 만난 박점출은 그들이 알던 예전의 박점출이 아니었지. 투쟁 중 자신의 눈과 동생을 잃은 박점출은 아주 오래 실의에 빠져 있었어. 이들 일행에게 박점출은 얼마나 더 죽어야 독립이 되겠느냐고 물어.
우리가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영화 <하얼빈> 中
살아남은 고통으로 모든 걸 등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통을 그대로 짊어진 채 나아가는 사람도 있어. 극중에서 안중근과 박점출은 모두 ‘길을 잃었다’고 말해. 안중근은 길을 잃었을 때 동료의 목숨을 떠올리며 이토 히로부미 사살이라는 길을 찾아냈어. 박점출은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후 길을 잃은 채 머물러 있지. 둘 중 누가 더 낫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 아니야. 다만 불안과 공포, 죄책감, 분노 같은 감정을 모두 맛보고도 계속 독립운동을 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은 동료들이 흘린 피를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고통을 외면하는 고통이 더 커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건 아닐까 싶더라고.
<하얼빈> 속 안중근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포용’이라고 생각했어. 좀 의외지? 안중근은 일본군 포로를 인도적 차원에서 석방하고,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고, 동료의 허물마저 감싸. 텍스트만 봤을 땐 내가 사용한 ‘포용’이란 표현은 마음이 무르다, 혹은 약하다는 의미처럼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뜻과는 전혀 달라. 오히려 안중근이 보여주는 포용은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인정하는 것,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즉, ‘단단함’을 의미해. 안중근의 강인함은 이미 주어진 고통과, 앞으로 주어질 고통까지 안중근 스스로 모두 포용하게 만들었어.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 된다.
영화 <하얼빈> 中
개인적으로 엔딩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어. 꽁꽁 언 강 위를 비틀대며 걷는 안중근의 모습과, 담담하지만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독백을 보며 압도됐지.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는 안중근의 눈이 꼭 화면 너머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 같았어.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고 묻던 한강 작가의 질문도 떠올랐어. 안중근의 마지막 독백이, 시대를 넘어 영화의 형태로 우리에게 도달한 답변처럼 느껴지더라고.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현빈의 인터뷰 답변을 놓고 갈게. 올해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한국으로 모셔 올 수 있게 되길 바라. 그럼 오늘의 아무콘텐츠는 여기서 마무리 할게.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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