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기 전, 이 플리를 재생시킨 뒤 읽어보시길..!
2주전, 서로의 대화가 막바지로 흘러가던 장소인 수제맥주집에서의 대화였다. 둘 다 꽤나 취한상태였는데, 기준이 문득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기준: 은서야, 너 유서 써본 적 있어..?
은서: 갑자기 웬 유서?
기준: 요즘 유튜브에서 그런 영상을 본 적이 있었어. 흔들리는 삶을 마주할 때나 마음이 어려울 때, 유서를 써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꽤나 큰 도움이 된대..!
은서: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기도하네. 유서를 쓰다보면, 삶의 끝인 죽음을 사유하다보면, 자신이 마주한 삶의 모습들이 조금은 더 명확해질수도 있으니말이야. 죽음을 전제조건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면, 자신이 어떤 삶을 추구하고 원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분명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해. 물론, 유서를 쓰는동안은 굉장히 슬플 것 같기도하지만.
기준: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그래서 얼마전에 한 번 써봤다, 유서..!
은서: 진짜로? 어떤 느낌이었어?
기준: 은서 너 말처럼 편지지에 유서를 써나갈 때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슬프더라구. 내가 곧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샘이 고장난 사람처럼 눈물이 쏟아지기도하고, 무언가 후회되는 마음이 일렁이기도하고, 또 문득문득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스쳐지나가기도하더라. 이루지 못한 꿈이 생각나기도하고, 동시에 내 죽음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다가갈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한 번 터진 눈물이 쉽게 멈추질 않더라. 죽음을 생각하니 지금의 삶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해지는 느낌이었어. 비록 힘든 삶이라할지라도, 써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
사실, 은서와 기준은 같은 해 각각 공무원시험과 공기업 시험에 최종합격했다. 은서는 9급 공무원에, 기준은 메이저공기업에.
둘의 전공은 모두 행정학이었는데, 기준의 경우는 전공과 대체적으로 잘 맞는 편이었고 은서는 이와 반대로 맞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대학시절 은서는 자신의 전공 필수학점만 겨우 채워두고 언제나 타 단대에서 다른 학과를 기웃거리며 그들의 수업을 듣곤했다.
인류학이나 고고학,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은서는 3-4학년 2년동안 자신의 단대가 아닌 타 단대에 주로 머물며 자신이 좋아하는 수업을 찾아듣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따금씩은 완전히 결이 다른 전공인 천문학과 수업을 신청해 듣기도했었다. 그런 은서를 바라보며 기준은 언제나 그런 말을 했다.
“ 은서 넌 아무래도 전공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지. 사실 내가 원하는 전공은 따로 있었는데, 결국 난 어떤 이유에서든 그걸 선택해내지 못한거잖아. 그래서 그것에 대한 후회 때문에 이러는 거일지도 몰라 아마도..”
…
은서와 기준은 대학전공으로 행정학을 택했다. 기준의 선택은 지극히 자의였고, 은서의 선택은 순수한 자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기준은 입학한 그 무렵부터 자신의 목표를 공기업으로 정해두고 찬찬히 그 시험들을 위한 기본바탕을 갖추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반면, 주변인들의 직업적 영향에서 비롯된 선택을 해낸 은서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흔하게 접한 직업의 모습이라 가장 흥미가 생기지 않는 그 직업을 가장 많은 진로로 택하는 전공을 스스로 선택하다니.. 선택을 해낸 그 순간까지도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자신이었다. 그 당시 조금만 자신의 마음을 더 진실되게 들여다봤더라면, 은서의 삶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러한 이유에서였을까. 은서에겐 뚜렷한 목표도 꿈도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과를 스스로 선택하고자하는 용기를 더 크게 발휘해내지 못했던 그 순간부터 자신이 오랜시간 마음 속에 품어낸 목표가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대학 2학년 시절 무렵부터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고시나 공기업,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은서는 그런 상황들이 끝없이 답답해지고말았다. 다만, 은서는 이미 과거에도 알고있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될 자신이라는 것을.
…
은서는 수업이 없는 공강시간에는 언제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거나 학교 내에 자리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를 마주하곤했다. 종종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인적드문 조용한 카페에 들러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며 잔잔한 행복을 누리는 은서이기도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정신을 집중한 채로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회피하며 그렇게 살았는지도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해야만 버틸 수 있기도했다.
다른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분주하게 수험공부를 하곤했지만, 그 시기 도서관에서 철학책과 과학서적을 읽어내는 기묘한 장면을 자아내는 은서였다. 누군가에게는 도통 쓸모없게 여겨지는 그런 시간이 은서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었고, 문득문득 삶의 살아내는 힘을 부여해주었다. 은서에게만큼은 가장 소중한 것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소모적이고도 불필요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슬펐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생각해보면 현실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반면 기준은 달랐다.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하루빨리 그럴듯한 직장에 속해 많은 돈을 벌고싶었다. 은서와는 마주한 상황이 달라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기도했다. 은서는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한다할지라도 그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배경을 지닌채 살아가는 아이였고, 기준은 애초에 그런 환경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다.
실패하면 많은 것들이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실패하는 과정에서 투입되는 시간과 돈을 책임져낼 수 없었기에 무조건 성공하는 선택만 해내야했다.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는 노력한만큼 성적이 나와주는 덕분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어 마음을 잠시 놓을 수 있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잔인한 일이기도했다.
그러니 연봉이 높은 메이저공기업에 일찍이 들어가 직장생활을 해야만했다. 우물쭈물 낭만을 부리며 살아갈 여유가 기준에겐 애초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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