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에서 귀가하는 길이었어요. 보통은 힘 빠진 다리를 절뚝이며 서둘러 걷기 바쁜데, 그날은 유독 길모퉁이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가 귀를 사로잡았어요. 잠시라도 멈추어 봐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지난 십 년 가까이 음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어요. 음악 분야의 일을 했으며 음악과 관련된 사람들을 사귀었지요. 음악가가 아닌 남자와 연애를 해 본 적도 없었어요. 내 이메일 보관함에는 온통 음악에 관한 편지나 소식뿐이었고요. SNS에서도 온통 음악 관련 계정들과 관계 맺고 있었지요. 그러나 최근, 하던 일을 관두고 나는 진공 상태에 들어섰어요. 즐겨 듣던 음악들을 더는 들을 수 없겠더군요. 더 정확히는,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일 때문에 듣던 앨범들을 가끔 들으면 신물이 올라오고요.
내가 다가간 곳에는 아름드리나무가 한 그루 심겨 있었어요. 그늘에는 유랑 음악단이 짙은 코오롱 냄새를 풍겨 가며 연주에 몰입 중이었지요. 클라리넷, 다르부카(타악기), 다울(타악기), 우드(현악기), 탬버린으로 구성된 그들은 십 대 후반 남짓으로 보였어요. 노래는 돌아가면서 부르더군요. 한 명 한 명의 울림이 매우 커서 나는 별안간 깜짝 놀랐어요. 식은땀이 쭉 나면서 곧 구슬픈 음악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들었지요. 소년들은 서로의 신체 기관이 악기와 음성을 어떻게 관장할지 훤히 알고 있는 듯했어요. 소리는 촘촘하게 메워져 열기구처럼 팽창하더니 공중을 날았지요. 소년들의 연주는 훌륭했지만, 여유로운 쇼맨십은 더할 나위 없이 감탄스러웠어요. 그들은 좌우로 고개를 돌려 가며 얼굴을 바라보고 웃거나, 심지어는 볼 키스를 나누기도 했어요. 마치 이 연주를 함께할 수 있어서, 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서 황홀해 죽겠다는 양. 노래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갑자기 숨이 가빠왔어요. 나는 황급히 고개를 푹 숙였지요. 나는 소년들의 소리에 극도로 압도된 것이었어요. 옆에 앉은 노인이 근처 복싱장 관장이라고 소개하며 말을 걸어왔는데, 그는 내 복잡한 기분을 알아차린 듯 덧붙였어요. 기가 막힌 재능이지요? 로만들은 하여간 타고났어요.
로만, 혹은 칭게네Çingene로 불리는 그들은 집시였어요. 유럽 거리에서도 집시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튀르키예에서는 외출해서 집시를 보지 않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예요.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아이들이나 꽃을 파는 여인들, 지하철 칸칸을 돌며 음악을 연주하는 남자들을 날마다 보지요. 실로 전 세계에서 집시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국가는 이곳 튀르키예일 것으로 추산되어요. 서유럽에서 놀러 온 친구들도 놀라서 내게 물은 적 있어요. 여긴 집시가 왜 이렇게 많아? 당신께서는 살면서 한 번이라도 집시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그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요?
먼저 용어부터 짚고 넘어갈게요. 집시라는 명칭은 '이집션'에서 왔어요. 이집트에서 온 집단이라는 오해에서 이런 명칭이 생겨났고, 애석하게도 곧 전 세계로 퍼졌지요. 튀르키예에서는 집시 대신 칭게네라는 단어가 대체로 쓰여요. 놀랍게도 이 단어는 중세 그리스어 '아칭가노이Atsinganoi'에서 파생되었어요. 이 단어는 무려 11세기 비잔티움 문헌에 나타나요. 아칭가노이라는 집단이 점을 치고 동물을 다루며 마술을 부린다. 아칭가노이는 '접촉해서는 안 되는'이라는 뜻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되며, 본래는 비잔티움 이단 종교 집단을 일컫는 데 쓰였대요. 그랬던 이 단어가 점차 한 민족을 콕 찍어 칭하는 명칭으로 바뀌었지요. 추정 어원에서 멸시적 뉘앙스가 풍기므로, 아칭가노이에서 유래한 명칭, 즉 튀르키예어 칭게네, 헝가리어 치가니Cigány, 독일어 치고이너Zigeuner 등의 단어는 현대에 들어 사용이 권장되지 않지요. 또 하나 알아둘 것은, 아나톨리아에서 칭게네라고 불리는 이들은 다 같은 민족이 아니에요. 롬Rom족, 롬Lom족, 돔족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지요. 오늘날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다수 민족은 롬족이므로, 여기에서 이들을 국제적 호칭인 로마니Romani로 부르도록 할게요.
로마니들은 롬족, 돔족과 더불어 인도 북서부에서 건너왔을 것으로 추정되어요. 곰곰이 떠올려 보니, 나 또한 그들을 처음 마주한 것이 인도 북서부에서였어요. 라자스탄주의 작은 마을 푸쉬카르에 일주일 남짓 머물렀을 때였지요. 낙타를 타고 사막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준 소년 가이드가 로마니였지요. 바부라는 그 애 이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군요. 우리가 이틀 동안 둘러본 바부네 사막은 로마니 점령지와 다름없었어요. 중간중간 바부와 낙타에서 내려 코펠에 밥을 지어 먹거나, 볼일을 보거나, 백오십 살이 넘었다는 사막 명물 구루의 기도원을 찾아갈 때, 로마니 아이들이 내 뒷꽁무니를 구름 떼처럼 쫓아다녔지요. 비디 한 까치만 달라며 생떼를 쓰면서요. 마을 읍내에서는 역시 로마니로 보이는 여자들 대여섯이 다가와 내 손을 덜컥 잡아끌고 후미진 곳으로 가더군요. 그러더니 헤나로 어여쁜 그림을 손바닥에 새겨 주었어요. 돈을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까지, 우리는 아주 짧은 우정을 나누었지요.



약 1천 년경, 황금기를 누리던 남인도에 비해 라자스탄을 비롯한 북부 인도는 격변을 겪고 있었어요. 여러 힌두 왕국이 경쟁 구도에 놓여 있었고, 아프간의 이슬람 왕조 가즈니가 지속적으로 침입해 왔지요. 펀자브 같은 실크로드 주요 관문은 결국 백기를 들고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지요. 로마니들은 그때부터도 이동 서비스를 주업으로 삼았어요. 금속 세공이나 말발굽 가는 일, 농기구를 만드는 일, 가축을 거래하거나 돌보는 일, 악기를 만들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일, 곡예, 점술 등에 종사했지요. 이들은 혼란한 시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서쪽으로 떠났어요. 더 많은 일자리를 찾아서였지요. 아프가니스탄, 호라산(이란), 아르메니아를 지나 11세기에 들어서는 비잔티움이던 아나톨리아까지 도달하지요. 이 덕에 로마니 언어를 뜯어보면 북서부 인도어를 바탕으로 페르시아어, 아르메니아어, 중세 그리스어가 지층처럼 쌓여 있대요. 아나톨리아를 오스만이 점령하고, 제국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로마니들도 점차 넓은 영토로 퍼져요. 발칸반도로 다수가 흩어지고, 일부는 서유럽으로까지 건너가지요.
이렇게 널리 퍼진 로마니들은 1천 년경 인도에서 자신의 조상들이 하던 일과 그리 다르지 않은 업종에 종사해요. 어떠한 국가에도 종교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로이 유랑하지요. 그리고 곧 이것은 문제가 되지요. 처음에는 그들의 행태가, 나중에는 그들의 존재가.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며 서유럽은 중앙집권 국가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힘을 쏟았어요. 주민들은 등록이 되어야 했고, 세금을 내야 했고, 군역에 임해야 했고, 이동에 제한을 받았어요. 치안 유지를 위해 부랑자법이 생겨나기도 했지요. 로마니들은 주소지도 없고, 정해진 직업도 없이 떠도는, 그야말로 관리가 안 되는 사람들이었어요. 게다가 길드가 발전하며 할 수 있는 노동의 영역도 줄어들었지요. 이후 서유럽 국가들은 로마니의 유입을 막거나 추방시키는 법을 마련하지요. 시간이 흘러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서는 동화의 대상이 되거나, 나치에 의해 대량 학살되기도 하는 등 로마니들은 끊임없이 고난을 겪지요.
솔직히 한동안 나는 로마니들을 보는 것이 두려웠어요. 내 안의 냉정한 자아가 그들의 가치를 어떻게 도살할지 알았거든요. 사지 멀쩡한데 왜 제대로 된 일을 안 해? 어떻게 학교에 보내는 대신 앵벌이를 시켜? 어째서 미성년 소녀를 결혼시켜? 왜 대책도 없이 애를 다섯이나 낳고 거리에 나앉아? 왜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 않아? 차가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그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고드름이 그은 듯 가슴이 아렸지요. 그러나 서서히,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님을 깨달았어요. 아나톨리아에서 로마니들은 반드시 멸시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걸요. 차별이 아예 없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그들은 이 땅에 이미 뒤섞여 사는 수많은 민족 중 하나로 취급되는 듯해요. 약간은 독특하고 때로는 조금 과하게 자유로운. 체제에 속하거나 통념을 따를 의사가 별로 없는. 그러나 조직을 도모할 의도도 없어 딱히 해로울 것도 없는.
나는 가끔 길에서 꽃을 파는 로마니 처녀에게 갓 끓인 차를 갖다 주는 상인을 보아요. 주택가를 배회하는 아코디언 악사에게 줄로 매단 바구니에 팁을 담아 내려주는 주민들도 발견하곤 하지요. 실력 좋은 악단이 주말 밤 페리에 올라타면, 배 안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무도회장으로 탈바꿈해요. 로마니 자신들도 사회적 수직 상승의 욕구가 없어 보이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버려 두는 듯해요. 튀르키예인들의 넘치는 온정이 그렇다면 이유일까요? 로마니 인구가 여기 이토록 많은 것은, 아나톨리아의 고농도 연민 때문일까요? 서유럽에서 로마니들이 추방당할 때에도 오스만 제국의 로마니들은 세금만 잘 내면 머무를 수 있었어요. 대도시가 구축되던 서유럽에 비해 오스만에서는 작은 마을들이 여전히 주를 이루었고, 이동 노동자, 즉 찾아가는 서비스의 수요가 줄지 않았던 거지요. 다민족과 다종교가 뒤섞여 살던 오스만 제국에서 로마니만 콕 집어 내쫓을 이유는 없었어요. 오스만 이후 공화국이 세워지며 비무슬림인들이 아나톨리아를 떠나게 되었을 무렵에도 로마니는 그대로 남지요. 그들은 이미 무슬림으로 개종한 지 몇백 년이나 되어 비무슬림도 아니었고, 내보낸다 해서 돌아갈 나라도 없었지요. 그리하여 이토록 많은 로마니들이 아직까지도 튀르키예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지요.
언젠가 야외 술집에서 테이블마다 돌며 장미꽃을 파는 아이들을 보았어요. 주인이 나와 고양이떼 내쫓듯 훠이, 하고 손을 내젓자 아이들이 고성을 내지르며 도망쳤지요. 한국에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야. 사회에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지, 발전 가능성도 없지, 몇백 년을 똑같은 모양새로 살지, 그런데도 너희 나라는 왜 이렇게 로마니들에게 관대해? 술김에 가시 돋친 내 말들이 이빨 사이로 튀어나왔어요. 내 동행인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즐거운 시간을 우리한테 주잖아. 그 밤 나는 픽 웃고 넘겼지만, 늙은 복싱장 관장 옆에 앉은 그늘에서 그 시간의 가치를 처음으로 어림할 수 있었어요.
로마니들은 아나톨리아, 유럽 전역으로 퍼지며 현지 음악과 결합한 독특한 음악 세계를 창작했어요. 우리가 '집시'라는 단어에서 떠올리곤 하는 헝가리 무곡이나 플라멩코, 집시 재즈는 확실히 로마니의 유산에서 영향받은 것들이지요. 알제리에서 태어난 로마니계 프랑스인 영화감독 토니 갓리프는 평생 로마니에 대한 영화들을 만들어 왔어요. 그의 1993년작 «라초 드롬(로마니어로 ‘평안한 여정’»에서 카메라는 인도 라자스탄에서 시작해 이집트, 튀르키예, 루마니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프랑스, 스페인을 훑지요. 각 나라마다 다르게 꽃핀 로마니 음악과 춤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어 인상적이랍니다. 주말에 여행하는 기분으로 감상해 보시면 어떨까요?
튀르키예 로마니 음악에서 가장 특징적인 악기 중 하나는 클라리넷이에요. 언뜻 들어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지요? 서양 음악에서 클라리넷은 고고함, 멀고 아득함, 청초로움 등을 담당하고 있지 않나요? 이 우아한 서양 악기가 튀르키예에 와서는 재간부리기에 용이한 즉흥 툴로 변모해요. 셀림 세슬레르Selim Sesler(소리꾼 셀림)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존경받은 로마니 클라리넷 연주자예요. 마치 김덕수 사물놀이처럼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악단을 이끌었지요. 파티흐 아킨의 다큐멘터리 영화 «크로싱 더 브릿지: 이스탄불의 소리»에서도 셀림 세슬레르를 주요 음악가로 다루고 있지요. 튀르키예 로마니 악단의 구성은 위 영상에서 볼 수 있듯 클라리넷, 다르부카, 다울, 우드, 바이올린, 카눈이 주를 이루어요. 이 악기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뤄볼게요.
튀르키예의 수많은 로마니 음악가 중,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를 꼽자면 단연 지굴리Ciguli를 내세우겠어요. 지굴리는 불가리아 출신 튀르키예계 아코디언 연주자 겸 가수예요. 천부적 재능을 지녔던 그는 아코디언을 얼마나 재빨리 쳤던지, 사람들은 소련의 아브토바즈 자동차 지굴리Zhiguli에서 따온 별명을 그에게 지어 주었어요. 그는 튀르키예에서 어마어마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어요. 유랑 악사가 갖춰야 할 덕목에는 무릇 무엇이 있을까요? 난생처음 보는 남에게 가진 돈을 흔쾌히 내놓게 하려면, 아주 단시간에 시선을 끌 줄 알아야 할 거예요. 저항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든, 기행을 부리든 해야겠지요. 내가 볼 때 지굴리는 진정한 유랑 악사의 자질을 타고났어요. 오늘날 활동했다면 소셜 미디어의 힘으로 글로벌한 인기를 얻었을 법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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