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중력의 중심을 찾아서

2026년 8월 11일

2026.08.11 | 조회 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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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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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을 구상한 적 있어요. 독일에 사는 주인공 애리는 대학 동기 니콜로와 시칠리아에 방문해요. 니콜로는 여름방학마다 고향에 가 어머니가 운영하는 숙박 시설 일을 거드는데, 남자친구와 막 헤어진 애리는 기분 전환이 필요하답시고 거기 따라가지요. 두 사람은 손님을 픽업하러 그리스 신전으로 향해요. 건조한 바람이 불어닥치는 차 안에는 바티아토의 음악이 흐르지요. 애리는 여기까지 와서 시칠리아다운 구경은 하나도 못 했다고 투덜거리며, 남은 여름 계획이 뭐냐고 채근해요. 이에 니콜로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며 말하지요. 계획은. 그냥 이렇게 바티아토나 실컷 듣다 가는 거지 뭐.

 

미완성으로 남은 이 소설의 가제는 《부서진 방주》였어요. 이탈리아 가수 프랑코 바티아토의 앨범에서 채집한 이미지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고 싶었지요. 뙤약볕과 터키석 빛깔의 바다, 초기 모듈러 신디사이저의 소리로 물든 이야기를. 애리는 난감한 처지에 놓이며 뙤약볕 아래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나는 파라솔 그늘에 누워 어떻게 하면 그 애를 더 골려 먹을까, 그 궁리만 했어요. 결국 내가 던진 철퇴에 맞은 건 나 자신이었지만요. 애리를 실컷 골린 죄로 방향을 잃은 이 소설은 내 폴더 안에 소심하게 등을 돌리고 누워 있어요. 그러나 나는 그 소설을 완전히 죽일 수 없었어요. 언제고 여름이면 내 정수리 위에 프랑코 바티아토가 군림하거든요. 페르세우스처럼 여름 밤하늘에 형형히 빛나며 권위 있는 모습을 드러내지요.

 

바티아토는 2차 대전이 막을 내린 1945년, 시칠리아 동부 리포스토에서 태어났어요. 이오니아해를 끼고 있는 화산 도시의 독특한 자연, 고대 그리스, 로마, 아랍 유산이 켜켜이 쌓인 시칠리아의 복합적인 문화는 추후 바티아토 음악의 근간이 돼요. 시칠리아는 하나의 대륙이다. 이렇게 수식할 정도로, 바티아토는 고향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어요. 시칠리아 민요, 그레고리오 성가, 바흐 등을 들으며 성장한 바티아토는 열여덟에 아버지를 여의고 밀라노로 떠나요. 기타를 조금 칠 줄 알았던 그는 카바레에서 우연히 시칠리아 노래 두세 곡을 부르게 되고, 거기서 싱어송라이터 조르조 가베르를 만나 본격적으로 음악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지요. 그렇다 해도, 그는 꿈에도 몰랐을 거예요. 자신이 교황에게 초청받아 만 명의 청중 앞에서 노래 부르는 이탈리아 최고의 음악가가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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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1967년 처음 발매한 싱글 《La Torre(탑)/Le Reazioni(반응들)》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시적인 가사를 쓰는 칸초네 민중 가수네. 이 정도 반응을 일으켰을 뿐이었지요. 그러나 5년 후 그가 발매한 《Fetus(태아)》에서, 바티아토는 완전히 달라진 장르를 선보여요. 슈톡하우젠의 실험 음악과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런던에서 우연히 EMS사의 VCS3 신디사이저를 발견해요. VCS3은 초기 모듈러 신디사이저로, 건반이 없으며 휴대가 가능할 정도로 소형이었어요. 핑크 플로이드의 《Any Colour You Like》 같은 곡에서 이 악기가 몽환적인 상승과 하강을 돕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지요. 바티아토는 바이올린이나 드럼 등 기존 악기와 VCS3을 혼용해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 열중해요. 가사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한층 더 심오해진 주제를 다루지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앨범의 곡들은 《태아(Fetus)》, 《핵분열(Cariocinesi)》, 《현상학(Fenomenologia)》, 《역학(Meccanica)》 등 생물학적 용어로 점철되어 있어요.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게 되는가, 바티아토는 근원적인 질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돌파하지요.

 

바티아토의 관심사는 생명에의 탐구에서 점차 의식으로 옮겨가요. 그는 수많은 독서와 여행, 대담을 통해 영적 갈증을 채워나가지요. 그가 영향을 받은 인물들 중 빠뜨릴 수 없는 이로, 신비주의자 게오르기 구르지예프를 꼽을 수 있겠어요. 구르지예프. 이름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냄새를 풍기지 않나요? 그는 1800년대 말 러시아 제국이던 알렉산드로폴에서 태어났어요. 오늘날 아르메니아 제2의 도시인 귬리지요. 구르지예프의 가족은 구르지예프의 출생 이후 곧 아나톨리아 동부 카르스로 이주해요. 카르스는 러시아인, 캅카스인,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쿠르드인 등이 뒤섞여 사는 다문화적 도시였어요. 그는 캅카스에서 성장기를 보낸 이후 영적인 대모험을 떠났다고 주장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인도, 티베트 등지를 돌아다니며 고대 밀교적 지식을 지닌 이들과 조우했다지요. 특히, 그는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만난 한 수피 신도를 통해 사르뭉 형제단이라는 밀교 교파와 접촉했다고 기록해요. 고대 바빌론에서부터 내려온 지식을 전승하는 그들 수도원에서 수련을 받았다며, 이를 바탕으로 《경이로운 이들과의 만남(Meetings with Remarkable Men)》이라는 회고록을 쓰기도 하지요. 이 책은 이후 피터 브룩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한답니다.

영화 <경이로운 이들과의 만남, 1979>
영화 <경이로운 이들과의 만남, 1979>

오늘날 구르지예프를 보는 시각은 다양해요. 괄목할 만한 이론 정립과 창작 활동을 통해 영적 연구에 기여한 선구자. 이야기를 잘 지어내 사람들 이목을 끌 줄 알았던 사기꾼. 그러나 진실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의 서술은 당시 사람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이에요. ‘대모험’을 끝낸 그는 1920년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와 ‘인간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연구소’라는 기관을 설립해 회화와 디자인, 음악, 언어, 체조, 춤 등을 가르쳤어요. 이후 그는 베를린, 런던을 거쳐 파리로 옮겨가 아예 공동체를 일구는데, 그 과정에서 춤은 구르지예프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로 자리 잡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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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에 체류하는 동안, 구르지예프는 수피 전통인 ‘세마 의례’에 대해 탐구했어요. 메블레비 춤이라고도, 데르비시 춤이라고도 불리는 회전 의식. 주방장처럼 긴 갈색 모자를 쓰고 흰 치마를 펄럭이며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군중을 눈앞에 그려보세요. 이 사람들을 메블레비나 데르비시라고 부른답니다. 튀르키예 콘야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슬람 학자이자 시인, 철학자, 수피 교단의 창시자, 잘랄루딘 루미를 따르는 이들이지요. 유네스코 무형 유산으로도 선정된 이 의례에는 확고한 규칙이 있어요. 먼저 오른손은 위쪽을, 왼손은 아래를 향하도록 들어야 해요. 여기서 고개는 옆으로 기울인 채 한 발을 축에 놓고 다른 발로 회전하지요. 이 동작은 빙빙 도는 세계 속에서 중심을 찾으려는 의지를 표현해요. 메블레비들은 이 의례를 통해 신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지요. 구르지예프는 세마에서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춤을 창작했어요.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인간이란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생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스스로 믿지만, 실은 습관, 감정, 충동, 외부 자극에 자동적으로 반응할 뿐이라고요. 그는 특정한 방식으로 신체를 움직이는 것이 의식을 깨우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여겼어요. 궁극적 목적은 달랐지만, 메블레비의 세마와 맞닿는 지점이 확실히 있지요. 그리고 그 지점에 뺨을 갖다 댄 또 하나의 인물이, 바티아토였어요.

 

구르지예프의 사상과 수피즘에 관심을 갖던 바티아토는 1978년 겨울, 튀르키예 콘야를 방문해요. 거기에서 세마 의례를 직접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지요. 바로 다음 해 그가 발매한 《L'era del cinghiale bianco(흰 멧돼지의 시대)》의 수록곡, 《Il re del mondo(세계의 왕)》에서 그는 이렇게 노래해요.

둥글게 펼쳐지는 흰 옷 속에는 수피 춤의 메아리가 울리고 / 일본의 지하철에는 이제 산소 호흡기들이 놓여 있군요 / 모든 것이 점점 무의미해질수록, 당신은 더욱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어요 / 세상의 종말이 오는 날에, 당신께 영어는 아무 쓸모 없을 거예요.

그리고 1981년에 발매한 곡 《Centro di gravità permanente(영속적인 중력의 중심)》에서는 수피즘의 핵심 개념을 그대로 옮기지요.

용감한 선장들, 영리한 마케도니아 밀수꾼들 / 유클리드적 사고를 지닌 예수회 신부들, 명나라 황제의 궁정에 들어가려고 중국 승려처럼 옷을 차려 입은 이들 / 나는 영원히 변치 않는 중력의 중심을 찾고 있어요 / 사물과 사람에 대한 내 생각을 결코 바꾸지 않게 해 줄 그런 중심이 필요해요.

프랑코 바티아토 <영속적인 중력의 중심>

이 곡이 수록된 앨범 《La voce del padrone》는 백만 장 넘게 팔리며 바티아토를 명실상부 대스타 자리에 올려놓아요. 이런 난해한 가사가 붙은 음악이 한때 그토록 큰 사랑을 받은 대중 음악이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지요.

 

이렇게 언급되었던 수피 춤은, 1982년에 가서는 아예 곡의 척추를 이루는 요소로 쓰여요. 바티아토는 그해 발매한 앨범 《L'arca di Noè(노아의 방주)》에 《Voglio vederti danzare(당신의 춤을 보고 싶어요)》라는 곡을 수록해요. 이 경쾌한 신스팝 곡에서 그는 사막의 집시, 발리의 여인, 회전하는 메블레비, 카타칼리를 추는 인도인, 불가리아의 무용수, 북아일랜드에서 춤을 추는 노년의 연인을 차례로 읊지요.

그리고 방 안 전체가 빙글빙글 돌아 / 춤을 추는 동안, 춤을 추며.

그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몸소 춤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심오한 얼굴로 진지하게 선보이는 춤사위가 축제적 선율과 대비되어 얼마나 중독적인지 몰라요. 한때 이 춤은 우리 집에서 대유행했지요.

프랑코 바티아토 <당신의 춤을 보고 싶어요>

성공적인 행보 이후 바티아토는 음반 발매에 그치지 않고, 오페라를 창작하거나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해요. 심지어는 시칠리아 관광·문화 지역 장관을 지내기까지 하지요. 세계를 떠돌며 인간의 의식을 탐구하던 이 팝스타는, 2019년 마지막으로 발매한 앨범에서까지 깨어남에 대해 논해요. 그가 남긴 마지막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은 긴 모자를 쓰고 흰 치마를 펄럭이며 메블레비 춤을 추는 한 여성이지요.

 

내가 바티아토 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한 것은 독일에서였지만, 진정으로 빠져든 것은 아나톨리아에 온 후였어요. 깨어남에 평생 천착한 그가 영적인 영감을 받은 땅에, 내가 직접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 반가웠거든요. 음악 혐오에 빠진 후에도 바티아토의 음악만은 들을 수 있었어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모든 멜로디를 달달 외울 때까지, 바티아토 중독증에 걸린 사람처럼 나는 그의 음악에 집착했지요. 이제 본격적으로 그의 여행에 동참해볼까 해요. 그간 도저히 엄두가 안 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그의 가사를 번역하기로 결심한 거지요. 가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어로 옮겨 여기에 아카이브해두려고 해요. 영속적인 중력의 중심을 찾을 때까지, 나도 그의 자취를 따라 뱅뱅 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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