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보이지 않는, 볼 수 없는

2026년 8월 18일

2026.08.18 | 조회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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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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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인데도 바람이 유난히 거센 밤이었어요. 나와 친구들은 집주인이 가져다준 담요를 둘둘 두르고 옥상에 앉아 있었지요. 게자리를 별자리로 삼는 세 명의 생일을 한꺼번에 축하하는 자리였어요. 각자 들고 온 술이 모두 동날 즈음, 한 아이가 와인을 두어 병 더 들고 나타났어요. 어둠 속 반짝이는 눈동자가 돋보이던 그 애 이름을 이렘이라고 가정하지요. 이렘은 은행원인데, 파격적인 질문으로 좌중을 선동했어요. 얼마 전 새해였는데, 알고 있던 사람? 일순 옥상은 너른 고요에 잠겼어요. 새해? 아무리 그 밤이 쌀쌀했다지만, 우리 모두 확실히 하복을 입고 있었지요. 방금까지도 게자리에 대해 논하고 있었고요.

 

알고 보니 이렘이 언급한 새해는 이슬람력을 따른 것이었어요. 그녀는 최근 이슬람계 은행으로 이직했는데, 그 덕에 이슬람력으로 새해가 언제라는지 처음 알게 됐다지요. 그녀 직장에서는 성대하게 새해를 축하하고, 선물도 교환했대요. 새해 이후에는 아슈라의 날을 기념했다지요. 이슬람력 새해로부터 열 번째 날을 아슈라의 날이라고 부르는데,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 후세인 이븐 알리가 살해된 날이라고 해요. 무슬림들은 노아가 홍수 후 방주에서 내린 것도,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파라오로부터 해방된 것도 전부 아슈라의 날에 일어났다고 믿는다지요. 따라서 이 신통방통한 날을 크게 기리는데, 튀르키예에서는 아슈레라는 음식을 이웃과 나눠 먹는대요. 아슈레는 병아리콩, 말린 과일, 견과류 등을 섞어 먹는 디저트인데 아사이볼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모쪼록 이렘은 이 모든 정보를 최근 직장에서 알게 됐다는 것이었어요. 아슈라의 날은 그저 아슈레 먹는 날인 줄로만 알았지 뭐야. 이슬람 은행이라고 다를 줄은 예상했지만, 이런 것까지 배울 줄은 몰랐어. 아니, 내가 이렇게 하나도 모를 줄은 몰랐어.

‘노아의 방주 푸딩‘이라고도 불리는 아슈레
‘노아의 방주 푸딩‘이라고도 불리는 아슈레

이슬람계 은행 얘기를 처음 들어본 것은 아니었어요. 어학원에 다닐 때 예문에서 ‘초록 자본’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적 있었거든요. 때는 1970년대, 사우디와 쿠웨이트는 넘쳐나는 오일머니를 어디에 쓸지 즐거운 고민에 빠져 있었어요. 그에 반해 오일쇼크 타격을 제대로 입은 튀르키예는 이 걸프 자본을 들여오는 데 총력을 다하기로 해요. 보다 폭넓은 투자를 유치하고자, 튀르키예 정부는 한 가지 수를 써요. 샤리아에 부합하는 이슬람식 금융기관 설립하기. 여기서 잠깐. 샤리아에 맞는 이슬람식 금융기관은 뭐가 어떻게 다를까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이자가 없다는 거예요. 이자를 받지도, 지급하지도 않지요. 대신 이슬람식 금융기관은 실물자산·거래에 기반해 이익과 위험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금융을 제공해요. 세속주의 국가 튀르키예에는 이와 같은 이슬람식 금융기관이 내내 없었어요.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졌단들, 걸프에서 돈 좀 가져오게 이슬람 은행 지읍시다. 이렇게 대놓고 추진할 수 없었지요. 세속주의 국민들의 저항이 어마어마할 테니까요. 그런고로 정부는 이슬람식 은행을 슬쩍 세워놓고, 이를 특수금융기관(Özel Finans Kurumu)이라고 불러요. 2005년부터는 명칭이 바뀌어 참여 은행(Katılım Bankası)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이렘이 다니는 은행도 이 참여 은행 중 하나인 것이고요.

 

간판에 뭐라고 쓰였든, 걸프 국가들은 이 금융기관을 통해 오일머니를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었어요. 샤리아에 걸맞는 방식으로. 그렇게 튀르키예에 유입된 투자금은 대부분 아나톨리아 중부나 동부의 보수 이슬람계 중소기업으로 흘러갔어요. 국영기업과 이스탄불 기반 대기업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튀르키예의 경제 판도가, 이 특수금융기관의 설립으로 뒤흔들리기 시작하지요. 이 기회를 틈타 성장한 이슬람계 중소기업들을 ‘아나톨리아 호랑이’라고 불러요. 세속주의 자본은 흰 자본(Beyaz sermaye), 이슬람 자본은 초록 자본(Yeşil sermaye). 이러한 명칭이 생겨나고 구도가 형성된 것도 이때지요. 여담이지만 튀르키예에서 계급을 논할 때도 색상 구도가 튀어나온답니다(피부색과는 전혀 관계 없어요). 세속주의 엘리트 계급은 흰 튀르키예인(Beyaz Türk), 무슬림 서민 계급은 검은 튀르키예인(Siyah Türk)으로 구분하지요. 그러나 이슬람주의 여당이 장기 집권하며 이 구도는 무너지고 있어요. 세속주의 엘리트 계층은 경제력을 잃었고, 무슬림들이 사회적 권력을 장악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게자리들의 생일 파티로 다시 돌아가 볼게요. 샤도네이로 목을 축이고 있는 이렘에게 나는 물었어요. 그녀의 직장 동료들은 그럼 대부분 무슬림이냐고요. 이렘은 그렇지는 않다고 했어요. 자신처럼 히잡을 쓰지 않는 ‘우리 편’ 직원들도 많다고요. 그러나 중간관리자급 이상 남성 직원들은 대부분 ‘그들’, 즉 무슬림이라고 했지요. 남자들은 의복에서 뚜렷한 차이가 없을 텐데, 어떻게 알아? 업무 도중에 기도를 하러 가니까 티가 나나? 내가 묻자, 이렘은 단호하게 대답했어요. 그 사람들 수염을 보면 돼. 신자들, 수구 꼴통 여당 지지자들은 전부 아몬드 수염을 하고 있거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내게 이렘은 사진을 하나 보여 주었어요. 엄지와 검지로 화면을 확대하며 그녀는 깔깔 웃다가 뒤로 그만 넘어갔어요. 자 봐, 이게 아몬드가 아니면 뭐냐고! 멍청한 여당 남자들 같으니라고.

입술에서 분리시켜 다듬은 일자 아몬드 수염. 사진을 보고도 이름은 납득이 안 가요.
입술에서 분리시켜 다듬은 일자 아몬드 수염. 사진을 보고도 이름은 납득이 안 가요.

 

순간 나는 이렘 맞은편에 앉은 푸르칸의 표정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어요. 푸르칸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태연한 얼굴로 담배를 한 대 말고 있었지요. 푸르칸은 독실한 이슬람 엘리트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의 아버지는 시인이자 성공한 사업가며, 히잡을 쓰는 그의 누나는 이슬람 예술 박물관에서 일해요. 푸르칸은 현재 아버지의 회사 일을 돕는데, 직원 대부분은 하루에 다섯 번 기도 드리는 신실한 무슬림들이지요. 푸르칸과 가까운 친구들은 이런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만, 이렘과 푸르칸은 그날 초면이었어요. 푸르칸은 칼질에 가까운 이분법에 익숙한 듯했어요. 어쩌면 그의 삶은 항상 이런 식이었을 터예요. 집에서는 우리였다가, 밖에서는 그들이었다가, 그런데 실은 밖에서도 우리인데, 나도 너희 무리에 속한다, 구태여 정정하지는 않는. 어차피 그렇게 해서 얻을 것도 별로 없는. 그래서 푸르칸은 담배 마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겠지요. 아버지의 수염 모양을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고, 날숨에 훌훌 털어내기 위해.

 

흑백 구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대도, 내 주위에는 흑보다는 백에 가까운 친구들이 9할 이상을 차지하는 듯해요. 종교가 없는 집안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자란 이들이 대부분이니까요. 굳건한 케말주의자였을 그들의 부모는, 히잡 쓴 여자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미간을 찌푸렸을 터예요. 명절을 맞아 어린 아이가 손등에 입을 맞추려고 하면 냉정하게 손사래 쳤을 터예요. 내 시댁만 해도, 종교적 명절에는 아예 가족끼리 모이지도 않지요. 이토록 주위에 이슬람 전통에 정통한 이가 거의 없는 탓에, 나는 푸르칸을 상대로 자주 성가시게 굴었어요. 희생절에 너희 집에서는 양을 도축해? 어떻게 도축해? 그걸론 뭘 요리해? 잡은 양은 며칠이나 두고 먹어? 그날에는 무슨 모스크에 가? 몇 시에 가? 가서 무얼 해? 이슬람식 장례식은 어떻게 달라? 무얼 입어? 암송해야 될 건 뭐야? 테스비(염주)는 어떻게 골라? 너희 부모님은 어떤 테스비를 쓰셔? 구슬 세는 건 정확히 어떻게 하는 거야? 테스비 없이 손가락 마디 세는 것도 봤는데, 그건 뭐야?

 

푸르칸과는 처음 베를린에서 만났어요. 그와 나는 같은 미대에 다녔고 심지어 같은 건물을 썼어요. 더구나 우리는 같은 계절에 졸업해, 비슷한 시기에 이스탄불로 이사했어요. 그의 경우 귀국한 것이었지만요. 푸르칸과는 이런 우연이 잦았어요. 아직 베를린에 살 때 브란덴부르크 공항에서 그를 마주친 적 있어요. 그 역시도 우연히. 이스탄불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에서, 그의 얼굴은 우윳빛으로 창백했어요. 그는 특유의 심오하면서도 한가로운 말투로 말했지요. 집에 가서 모든 걸 고백하려고 해. 사실 기도를 안 하고 술을 매일 마신다고. 클럽에도 다닌다고. 프랑스인 여자를 사귀고 있다고. 우리 아빠가 날 다시는 안 볼까?

 

 

나는 개신교 가정에서 자랐어요.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아기에 침례 세례를 받았다고 들었지요. 내가 튀르키예인과 결혼한다고 선언하자, 내 어머니는 교회 성도들의 반응을 우려했어요. 알라 믿는 사람이 사위라고 소문 나면 어떡하니? 사위가 북마케도니아 교포 3세라는 점을 강조해 마케도니아가 어딘지 모를 성도들을 적당히 교란하시라. 이 정도 지침을 드리는 선에서 그쳤지만, 나는 생각했어요. 어머니의 교회 친구들이 이 땅 세속주의자들이 얼마나 종교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를 알면, 알라고 나발이고 우려할 일 없을 텐데. 난 아무것도 안 믿어. 세속주의자들이 이 문장을 토해낼 때, 거기에 얼마나 웅장한 자긍심이 서려 있는지를 알면. 흰 무리에 둘러싸여 세속주의 울타리를 두른 둔덕에 살면, 반대편에 선 존재는 까마득해 아예 보이지조차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이 안다면.

 

 

벨쿤 오야는 내가 튀르키예에서 가장 좋아하는 극작가이자 영화 감독 중 한 명이에요. 그의 드라마 ≪에토스≫에는 이런 장면이 나와요. 히잡을 쓴 젊은 환자가 정신과 의사 페리를 찾아요. 자꾸만 이유 없이 기절을 한다고요.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차림새만 보고도 진작 그녀를 속단했어요. 아이구. 알라 같은 거나 믿는 가련한 것.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나예요. 교육을 못 받았으니 저 모양이지, 딱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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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는 그 자신도 정신과 상담을 받는데, 의사 귈빈에게 그날 진료 본 감상을 털어놓아요. 히잡 쓴 환자를 볼 때마다 얼마나 속이 터질 것 같다는지를요. 상담 말미에 페리는 제안해요. 다음 환자 없으면 밥이나 같이 먹을까요? 귈빈은 말해요. 진료는 취소됐지만, 친언니와 약속이 있어서요. 다음에 먹지요. 대기실에는 히잡을 쓴 환자가 한 명 앉아 있어요. 페리는 간호사에게 물어요. 진료 취소됐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보죠? 간호사는 말해요. 아아, 저분은 선생님 언니분이세요. 미동 없는 페리의 얼굴.

 

같은 공간 안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 혹은 볼 수 없는 사람들. 그 비가시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장면이지요. 나는 일상에서 자주 이 장면을 떠올려요. 내 시야에도 벌써 윤곽이 흐릿해진 피사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며.

 

페르디 외즈베엔 <당신과 낮을>

벨쿤 오야는 <에토스>의 모든 에피소드를 같은 가수, 페르디 외즈베엔의 노래로 끝내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볼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열광했던 가수지요. 4천5백만 조회수가 넘는 이 라이브 영상이 생전 그의 인기를 증명해주지요. 그는 동성애자였는데, 7~80년대 모든 계층으로부터 그토록 사랑받은 유명인이 성소수자였다는 사실이 흥미롭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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