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미움 받는 남자

2026년 6월 9일

2026.06.09 | 조회 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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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석굴 무덤은 삼 년에 걸쳐 완성되어요. 완공식 풍경이 영상으로 남았는데, 많은 이들이 경사진 돌산에 서서 와인잔을 들고 무덤에 건배하지요. 해당 장면에는 바흐의 성악곡 D장조 마그니피카트 중 ‘권능을 행하셨도다Fecit potentiam’가 쓰여, 무르익은 축제의 감흥을 일으켜요. 반복적으로 들리는 누가복음 구절도 절묘하지요. 주께서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도다. 그 후 바로 디졸브 되는 장면은 조간신문 기사예요. 니샨얀은 중지를 치켜든 자신의 사진이 실린 것을 확인하며 별안간 웃음을 터뜨리지요. 카메라에 대고 그는 이렇게 말해요. 오늘날 이 나라의 통제 방식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항해야 합니다. 모든 국민에게 강력히 추천하건대, 무허가 건축을 하나씩 하세요. 무허가 건축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는 무덤을 짓기 전 관료들을 찾아갔다고 밝혀요. 치안 헌병대로 가서 무덤 설계안을 보여준 거지요. 허가를 받아오라는 명이 떨어졌으나 어느 기관에서 무슨 허가를 받아야 할지는 헌병들도 몰랐대요. 입씨름 끝에 결국 산림청으로 가보라는 결론이 났고, 니샨얀은 그렇게 했지요. 그러나 거기에도 관련 법규 따위는 없었다고 해요. 건축물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암석을 깎을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완공 후 어느 매체에서는 그에게 물어요. 선생님, 대체 이런 걸 지으신 거예요? 그는 되물어요. 여러분은 왜 안 하는 거예요? 이 소크라테스형 지식인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반복적으로 참여를 촉구하지요. 의문을 품지 않는 삶은 인간이 아니라 가축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 강조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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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 무덤은 그를 영영 아나톨리아에서 추방하는 데 결정타로 작용해요. 그가 곧바로 추방된 것은 아니고, 일단은 수감되지요. 니샨얀은 총 9가지 죄목으로 인해 16년 7개월 형을 선고받아요. 유죄가 내려진 죄목은 대부분 불법 건축과 관련된 것들로, 경미한 위법 행위에도 무거운 형벌이 내려졌지요. 니샨얀은 이 선고가 다분히 보복성이라고 반발하지만, 법원에서는 그저 범법 행위에 상응하는 형을 내린 것이라며 팽팽히 맞서지요. 그는 결국 감옥에 들어가고, 옥중에서 저술 활동을 이어가지요. 3년 반을 감옥에서 지내던 그는 끝내 탈옥에 성공해요. 트위터에는 이렇게 남긴 채로요. 새가 날아갔습니다. 날아간 새는 보트를 타고 그리스 섬으로 건너가 그리스인 연인과 네 번째로 결혼하지만, 이 천방지축 새를 감싸안기란 외교상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그리스에서 외면당한 니샨얀은 몬테네그로를 거쳐 결국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 정착했어요. 고국 튀르키예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됐지요. 망명 도중에도 니샨얀은 라이브 방송을 통해 활동을 이어갔어요. 망명지가 변경됨에 따라 방송 배경도 계속해서 바뀌었지요. 가끔은 미국에 사는 아들 아르센과 함께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1993년 시린제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란 아르센은 고대사학자인데, 옥스포드를 거쳐 현재 하버드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어요. 부자의 열띤 설전을 구경하는 게 얼마나 재밌었던지 아르센의 팬들도 저절로 생겨났어요. 이들은 중동의 정세에서부터, 전쟁 양상이나 지정학적 변화 등에 대해 논의하지요. 특히 아르센은 전공을 살려 로마의 제국 운용 방식을 되짚어 설명하고 오늘날 미국이 이 로마식 제국주의를 어떻게 뒤따르고 있는지를 세세히 일러요. 나아가, 아르센은 튀르키예 역시도 무슬림 이웃 국가들을 중심으로 제국적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해요.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발칸 반도, 중동 등 구 오스만 지역에서 중립을 지키며 군사 산업과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고요.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가혹했던 현 정부의 군사력과 외교력을 출중한 편이라고 평가해요. 이 난리통에 튀르키예가 가교 구실을 이만하면 수월하게 해내고 있다고요. 미국의 상황이 저럴진대, 제국 안 될 것 무어냐고요. 그 말에 목이 타듯 음료를 벌컥 들이켜는 아버지는 이렇게 비죽거리지요. 넌 튀르키예인들을 너무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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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마을에서 나오자 해가 서서히 이울고 있었어요. 정감 가는 산자락에서는 금방이라도 저녁밥 짓는 김이 피어오를 것 같았지요. 나는 너무 늦기 전에 서둘러 시린제 마을로 돌아갔어요. 어귀에 들어서서는 잡다한 기념품과 아이스크림, 디저트를 파는 가게들 사이 와인 가게들을 유심히 훑어봤지요. 관광객은 호객하는 주인에게 이끌려 갖가지 와인 맛을 보고 있었어요. 그러나 거기서 파는 와인 중 정말 와인이라고 부를 만한 술은 없는 듯했지요. 상인들조차 와인에 대해 아무런 전문 지식이 없어 보였고요. 라벨만 보아서는 정확히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누가 제조했는지 알 수 없었지요. 니샨얀 또한 자신이 수감된 후 시린제가 특색 없는 관광지로 전락했다고 쓴소리했어요. 시린제 역사와 별 관계도 없는 싸구려 과실주 대신, 차라리 수학 마을과 연계된 관광 상품을 개발해 팔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시린제 정체성을 대안 교육 특화 마을로 더욱 강화할 수 있을 텐데요. 여름마다 거기까지 와 체재하는 다수의 학생, 각종 분야 연사와 협업할 수도 있을 테고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린제 마을은 빼어난 자연 외에는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웠어요. 상황이 그러했음에도 나는 거기서 꼭 하룻밤 머물고 싶었어요. 아니, 그래야만 했지요. 시린제 방문의 세 번째 이유를 고백할 순서가 이렇게 찾아왔군요. 니샨얀 호텔에서 묵기.

 

호텔은 그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 위에 위치해 있었어요. 도저히 호텔이란 것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언덕 꼭대기였지요. 비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등산하듯 올라가야 했는데, 가는 길에 경쾌한 어르신 한 분과 마주쳤어요. 그는 니샨얀 호텔에 가냐고 물으며, 내 손에 견과류 한 움큼을 쥐여주었지요. 건투를 빈다는 식으로요. 어르신 외에 사람은 전혀 없고 닭, 염소, 고양이들이 돌아가면서 등장했어요. 세상사에 지친 니샨얀은 건설적으로 살기 위해 이 호텔을 지었다고 했어요. 대문을 들어서니 그 말의 의미를 알겠더군요. 명망 높으며 부도 얼마간 축적한 고대 로마 관료가 유배를 떠나야 했다면 꼭 그런 저택에 살 것 같았어요. 예컨대, 아테네에서 추방된 투키디데스가 이렇게 생긴 집에 살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하지 않았을까? 온통 석재로 마감된 뜰에는 동그란 대리석 연못이 하나 솟아있고, 그 수면은 노란 꽃잎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어요. 거기서 지배인으로 보이는 이가 나를 환영해 주었지요. 니샨얀 호텔은 현재 니샨얀의 전 부인 뮈즈데와 딸 이리스가 운영해요. 그러나 내가 방문했을 당시 그들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지요. 지배인이 안내해 준 대로 식당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는데, 붉은 셔츠를 입은 중년 직원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통화를 하고 있더군요. 혹시 아르메니아어인가? 추측해 보았지요. 곧 싱그러운 미소를 띤 청년이 기름한 유리잔에 딸기를 넣은 스파클링와인을 가져다줬어요. 웰컴 드링크라고요. 식당 내부는 아늑한 헛간 같았어요. 목조로 된 천장을 투박한 나무 기둥이 떠받들고 있고, 암회색 벽돌로 된 벽 한 면에는 아치형 창문이 나 그리로 시린제 전체가 내다보였지요. 식당 곳곳은 말린 옥수수나 석류, 흙으로 빚은 탈, 솔방울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장식되어 있었어요. 부엌과 사무실이 있는 본채 1층에서 열쇠를 받고 2층으로 올라가자 커다란 응접실이 나왔어요. 햇빛 쏟아지는 그 매혹적인 공간에 오직 나 홀로였지요. 마치 어느 노학자의 부름을 받아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나는 부끄러움 없이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공간이 머금은 묵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어요. 내가 한참을 앉아 있었던 공간은 응접실 옆에 딸린 작은 서재였어요. 영원히 간직하고 싶던 것은 시간, 침묵, 먼지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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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샨얀 호텔에는 똑같이 생긴 방이 없어요. 모든 방이 다 다르게 설계되었으며, 미리 웹사이트에서 사진을 보고 어떤 방에 묵을지를 고를 수 있답니다. 내가 고른 방은 침대 두 개가 직렬로 놓인 작은 방이었어요. 창가에는 녹음이 드리우고, 침대가 맞닿은 벽에는 로마식 벽화가 그려져 있었지요. 니샨얀은 고대 로마인들이 집을 짓고 장식을 새겨넣은 방식을 재현하고자 했어요. 그는 마을 수리공들에게 로마인들의 전통 방식을 알려주고 그대로 벽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했다지요. 그가 그 작업을 완수하며 수리공들과 얼마나 옥신각신했을지, 시행착오를 어떻게 극복했을지,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져 방에 들어서자마자 웃음이 났답니다. 당신도 언젠가 시린제에 가신다면 에페수스 유적도 반드시 돌아보시겠지요. 거기서 로마 상류층들이 살던 빌라, 테라스 하우스를 보실 테고요. 향락적 라이프스타일이 고스란히 남은 그 빌라 부지를 걸으며 고대 귀족들의 이모저모를 상상하실 터예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요. 여기서 와인을 마시고 이 통로를 걸어 욕실로 갔겠구나. 욕조에는 이 배관을 통해 뜨끈한 물도 나왔겠구나, 하고. 그 풍요로운 삶의 일부를 재현해 놓은 곳이 이 니샨얀 호텔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내가 묵은 방은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썼을 법한 작고 소박한 방이었지만요.

에페수스 테라스 하우스의 가상 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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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묵은 작은 방
내가 묵은 작은 방

나는 이 확장적인 경험을 한층 끌어올리고자 호텔 식당에서 저녁까지 먹기로 했어요. 나를 제외한 투숙객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온 노인들이었어요. 내 뒤에는 매우 강한 보스턴 억양을 쓰는 백인 노년 부부가, 그 옆에는 군살이라곤 전혀 없는 프랑스인 중년 부부가, 또 그 옆에는 인도계 미국인 가족이 앉았지요. 나는 입구 쪽 가장 작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그 옆 진열대에는 세반 니샨얀의 책들이 몇 권 전시되어 있었어요. 나는 무작정 한 권을 손에 집었어요. 어원을 풀이해 주는 책이더군요. 책장을 넘기는 새 체크인할 때 보았던 붉은 셔츠 직원이 음료를 갖다주었어요. 이번에는 통성명을 했는데, 아흐멧 씨라고 했지요. 아흐멧 씨는 내가 읽는 책을 훑어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어요. 펼쳐진 책장에는 튀르키예어로 정육점kasap과 마을kasaba이라는 단어가 모두 ‘자르다’라는 뜻의 라틴어 카스트룸castrum에서 왔다고 적혀 있었어요. 고로 피델 카스트로의 이름도 직역하면 ‘충직함을 자르다’라는 뜻이 된다. 이런 유머로 챕터는 마무리되고 있었지요. 어느새 털이 복슬복슬한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와 내 발치에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지요. 내 테이블에 음식이 없는 걸 알아차렸는지, 고양이는 인도인 테이블로 이동한 모양이었어요. 인도 여자가 꽥 소리를 지르더니 가족들이 일동 불쾌해하며 이내 우르르 자리를 뜨더군요. 음식은 거의 손대지도 않은 채였지요. 아흐멧 씨는 매우 난처한 눈치였어요. 내가 다 속이 상하더군요. 이후 나는 손님이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지킨 채 책을 읽어 나갔어요. 와인은 같은 종류로 석 잔 비웠지요. 아흐멧 씨를 위로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었어요. 나는 수고하십니다, 말하며, 혹시 세반 니샨얀 씨를 만난 적 있으세요? 물었어요. 그는 갑자기 맥이 탁 풀린 듯 말하더군요. 그럼은요. 내가 면접 볼 때부터 계셨는데요. 정말 좋으신 분입니다. 정말로 좋은 인간이에요, 그분은. 비록 손수 지으신 이 마을에 다시는 못 돌아오시지만요.

 

나중에 셀축 시내에 있는 에페수스 박물관에 가서 그 땅에 깃든 역사를 연대기별로 훑어봤어요.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 로마, 비잔틴, 튀르크 시대, 오스만 제국, 터키 공화국···.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패널이 길더군요. 그 기나긴 역사에서 네신과 니샨얀이 지은 이상 마을은 찰나의 이벤트에 불과할지 모르는 일이지요.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미움 받는 이 남자의 역사도, 그 미움 자체도요. 이 남자는 그 사실을 뼛속 깊이 알았던 것 같아요. 사전과 암석 무덤. 이것보다 더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나중에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본바, 니샨얀은 실제로 이렇게 기록했더군요. “지금으로부터 2천 년 후, 터키 공화국의 이 초기 단계에서 별다른 흔적이 남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건물뿐만 아니라 제도와 사상도 마찬가지다. 작은 지진에도 잔해 더미로 변해버릴 것들이다. 어쩌면 시린제의 석굴 무덤만은 남을지도 모른다. 그 어두운 시대에도 아름다움을 찾던 사람들이 있었구나, 하고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D장조 마그니피카트: 권능을 행하셨도다>

이 글을 쓰며 내가 며칠째 듣고 있는 곡은 이 곡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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