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지난해 가을, 전쟁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 동료들과 함께 튀르키예를 찾았습니다. 한국전쟁은 단지 한반도에서 전쟁이 아니라 국제 사회가 함께한 전쟁이었기에, 그 기록 또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스탄불과 앙카라의 도서관과 아카이브에서 마주한 전쟁의 흔적들은, 아키비스트인 제게도 특별한 울림을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현장에서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나아가 국내 협력으로 확장된 아카이브 사업의 의미를 함께 짚어보고자 합니다.
2. 수집사업의 배경 및 출장 시작
사업회는 2022년부터「6·25전쟁 아카이브 구축 사업」을 추진하며, 세계 각국에 흩어진 기록을 수집·보존·활용해 왔습니다. 2024년에는 이를 더욱 체계화하기 위해 ‘KWO 국제자문위원단’을 발족했고, 각국 전문가들과 협력해 기록 발굴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10월, 사업회 양동학 부관장과 실무진 일행은 튀르키예를 방문해 현지 자문위원들과 수집 현안을 논의하고, 국립 아카이브·도서관를 방문하여 협력체계를 모색했습니다. 또한 현지 참전용사들을 만나 기부금을 전달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3. 현지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다
튀르키예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현지 자문위원들과의 ‘KWO 자문회의’였습니다. 회의는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 각각 열렸고, 튀르키예 내 한국전쟁 기록의 현황을 공유하며 효율적인 수집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습니다.
자문위원들은 전쟁사 연구자와 기록 수집가들로, 국제자문위원단 발족과 함께 위촉된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두 차례 회의에서 실질적인 논의가 오갔고, 특히 네즈메틴(Nemettin) 위원은 “내 자료가 좋은 곳에 더 많이 활용되었으면 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평생 모아온 한국전쟁 관련 원본 기록의 디지털 사본 9,000여 건을 기증했습니다.
4. 국립기관과 민간 아카이브를 방문하다
7박 9일간의 일정 동안 저희는 총 7곳의 국립기관과 민간 아카이브를 찾았습니다.
각 기관에 「6·25전쟁 아카이브 사업」을 소개하고, 앞으로 한국전쟁 기록을 어떻게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튀르키예 국가기록원에서는 큰 성과가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파병 결정과 활동과 관련된 공식 문서 1만여 건의 컬렉션을 소개받았고, 일부 원본 기록을 직접 열람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국가기록원장 무하멧 아흐메트는 “우리 기관을 방문해 한국전쟁 기록을 직접 확인한 대한민국 기관·단체는 전쟁기념사업회가 처음”이라고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아직 세계 곳곳에 빛을 보지 못한 한국전쟁 기록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 방문 기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도서관, 라미 도서관, 하르비예 군사박물관, 고서적 거리
- 앙카라: 사짓알툰 아카이브, 에르도안 아카이브, 군사전략아카이브(ATASE),
튀르키예 국가기록원
5. 한국전 참전용사를 만나 감사를 전하다
사업회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리고자 매년 기부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그 대상을 국외 참전용사까지 넓혀, 튀르키예 용사분들을 위해 총 3,000달러의 기부금을 마련했습니다. 출장 동안 두 차례에 걸쳐 현지 참전협회(앙카라, 이스탄불)와 용사분들에게 기부금과 증서를 직접 전달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만난 한 참전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똑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난 다시 한국으로 갈 것이다." 알리 오스만 귀뮈시 참전용사
6. 성과를 공유하고, 유관기관 협업 사례를 만들다
튀르키예 출장 이후, 사업회는 올해 3월 26일 열린 국사편찬위원회 주관「사료수집보존 유관기관 실무협의회」에서 그 성과를 공유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국립중앙도서관도 튀르키예 기록 수집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중복 수집을 피하기 위해 협력의 필요성을 확인했습니다.
**사료수집보존 유관기관 실무협의회 가입기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국가보훈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국립중앙도서관, 전쟁기념사업회, 군사편찬연구소, 국회도서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독립기념관, 동북아역사재단, 여수 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평화재단,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
그 결과, 전쟁기념사업회-국립중앙도서관은 정식 업무협약(MOU)을 체결하였습니다. 사업회는 지난해 다녀온 현지 인프라를 활용하여 직접 기록을 발굴·수집하는 역할을 맡고, 국립중앙도서관은 수집된 기록을 바탕으로 메타데이터 고도화와 번역을 진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튀르키예 국가기록원 소장 한국전쟁 관련 공식문서 '총 7,497건(105,248매)'의 디지털 사본 수집을 완료하였고, 그 중 5,410건(97,224매)의 기록 활용을 위한 메타데이터 고도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구축된 튀르키예 공식문서 컬렉션은 내년 초 '6.25전쟁 아카이브 서비스 플랫폼(가칭)' 또는 국립중앙도서관 '해외한국관련자료' 페이지에서 공개될 예정입니다.
이번 협력은 단순한 역할 분담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의 중복 수집을 방지하고 공동 활용하기 위한 실제적인 협력의 사례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서로의 역량을 연결하고 공유할 때, 비로소 더 풍부하고 지속 가능한 아카이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7. 맺으며: 한국전쟁 아카이브, 남겨진 과제와 기대
지난해 튀르키예 출장을 통해 1만여 건의 기록 수집과 현지 기관·전문가들과의 협력 기반 마련이라는 실질적인 성과를 남겼습니다. 이어 국내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과의 협력을 통해, 수집기록의 메타데이터 고도화와 번역이라는 후속 작업이 체계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국제 사회가 함께한 전쟁이었던 만큼, 그 기록 역시 국경을 넘어 존재합니다. 현지 수집과 국내 협력이 맞물릴 때 비로소 기록은 온전히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번 과정은 해외 발굴과 국내 정리를 연결한 구체적인 사례로, 향후 다른 참전국 기록 수집에도 중요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8. '고마운 은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본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아낌없는 지원과 협조를 보내주신 주이스탄불 총영사관, 주튀르키예 한국대사관, 오수용 사무총장, 사짓 알툰, 현지 가이드 딜라라(Dilara)와 통역 엘리프(Elif),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 온라인자료과 담당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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