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에 한 번 쓰는 글이건만 업무와 공부에 치이다 보면 항상 벼락치기가 되기 마련이다.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능력치가 올라가는 듯한 묘한 감각에 기대어 이번에도 평소 관심이 있던 주제를 떠올렸다가, 12월 31일이 발행일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득해졌다.
12월 한 달이 일 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요즘, 이렇게나 탈이 많았던 한 해의 마무리를 당최 어떤 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이 차 저 차 이렇게 저렇게 무언가를 어떻게 정리하고자 글을 준비하는 중에 일요일 무안에서의 사고 소식에 생각이 많아졌다. 아니다. 어쩌면 생각이 다 없어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오히려 생각할 수가 없어졌다는 게 맞겠다.
유사한 영상과 새롭지 않은 음성만 가득한 뉴스 특보를 멍하니 계속 보며 스스로 느끼는 감정들- 슬픔, 황망함, 먹먹함, 무력감, 안타까움, 그리고 불안 -을 마주했다.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더 원론적으로는 지금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게 맞나? 이런 질문을 되뇌다가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사고 원인, 책임 소재, 보상, 후속 조치 등을 폭력적으로 배설하는 일부 기사와 댓글을 보니 기시감이 느껴진다. 나는 이 과정에서 어쩌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애도’에 관하여 짧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애도라는 정동(情動, affect)은 선험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아주 개인적인 영역의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감정과 지금의 상태가 작동하는 기제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리하여 현재의 나를 이해하고자 관련 논문을 읽으며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애도
‘애도’는 사전적으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정서적 반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회복 불가능한 상실 앞에서 느끼는 인간 본연의 슬픔을 함축한다. 문강형준(2015)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를 더 확장한 견해도 있다. 유해정(2018)과 이경래(2022)에 따르면, 애도는 단순히 정서적 반응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상실을 마주하며 고인을 떠나보내는 동시에, 상실과 이별을 통해 삶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러한 설명은 애도가 단순한 감정적 상태가 아니라, 상실을 사유하고 이를 통해 삶을 다시 구성하는 행위적이고 과정적인 의미를 포함함을 시사한다.
이는 애도가 개인적 슬픔에서 출발하더라도, 공동체적 연대와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재난과 같은 사회적 참사 앞에서의 애도는 희생자 개인을 넘어서 공동체가 상실을 함께 마주하고 기억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더 큰 윤리적 책임과 연결된다.
사회적 애도와 기억의 역할
우리는 국가적 참사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주체로서의 나약함과 삶의 불확실성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인 취약함을 드러내며 희생자 중에 가족이나 친구가 없더라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충격과 슬픔을 공유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문성윤, 2024:74).
이러한 맥락에서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이를 ‘사회적 애도’라고 정의하며 참사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이고 선행적인 반응인 ‘무의도적 감수성’을 그 시작이라고 본다. 이는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감정적 반응으로 참사와 같은 재난 앞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 본연의 슬픔과 충격을 말한다.
사회적 애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깊은 철학적이고 실천적 자세가 요구된다. 버틀러는 특히 전체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을 강조하며, 이러한 자세는 단순히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비극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현상학적 판단중지”를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 사회적 애도는 단순히 슬픔에서 질서를 회복하는 행위를 넘어선다. 이는 고인의 상실을 책임감 있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집단적 책임감과 연대를 강화하는 과정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재난 시대의 애도는 단지 슬퍼하는 차원을 넘어 어떤 대상을 기억하는 행위이자 사회 개입과 실천을 요구하며, 적극적 해석에 따라서는 재난의 경험을 보다 근본적 시스템 변화로 이끌려는 개입과 행동(이경래, 2022:24) 을 뜻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애도는 단순한 정동적 반응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행위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애도가 때로는 정치적 행위로 여겨지거나 반복되는 논의로 치부되기도 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통해 이를 목도했다.
이 과정에서 기억 패러다임과 아카이브의 역할이 있었다. 우리는 사회적 애도의 지속과 확장을 위해서 기억을 체계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결국 애도는 기억을 통해 기록되고 기록은 다시 애도의 과정과 맞물려 사회적 실천을 지속하게 한다. 이는 단순히 공동체 아카이브나 갈등 내러티브 사건의 관심사에 그치지 않으며 집단 기억의 형성과 유지라는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다시 애도 그리고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고와 관련해 아직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적극적 애도라거나 기록학계의 책무에 대해 논하기는 조금 이르다고 생각한다. “분노와 열정 없는 애도는 사회를 바꾸는 정치적 힘이 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는 문강형준(2015)의 주장에 지금의 나는 분노와 열정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 어쩌면 버틀러가 말한 ‘무의도적 감수성’만 존재하는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최성용(2024)은 애도와 관련해 개개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억할 건지, 기억하려는 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각자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마주하는 감정과 사유는 무엇보다도 특정한 이론이나 체계화된 논의에 앞서 애도라는 본연의 경험을 직면하고 성찰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
내가 처음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슬펐다. 애도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그저 희생자들의 죽음이 슬펐다. 국가가 애도 기간을 정하지 않더라도 나는 한동안 슬플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직장 근처 무수히 날아다니는 비행기에 사고 기억이 떠오르고 여전히 슬플 것이다. 아직도 큰 배를 보면 마음이 아픈 것처럼. 물론 이 슬픔이 사회적 애도의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스스로 사유하기”와 “현상학적 판단중지” 또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면에 따라서는 애도에 분노와 열정까지 더해질 수 있다.
애도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슬픔이 아닐 지도 모른다. 각자 사고를 처음 접했을 때의 그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 지금의 최선이 아닐까. 애도를 글로 표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워서 지금의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 글을 쓰고 있다.
기억 담론과, 사회적 애도와, 버틀러의 이론들을 읽고 정리했으나 아직은 내가 느끼는 슬픔이라는 감정의 이유만 겨우 알게 된 듯하다. 우리가 공유하는 취약성과 상실에 대한 본질적인 응답 바로 그것.
제목에 관하여 #1_미약한 우리
Lucia Angelino(2024)는 버틀러와 레비나스의 이론을 통해 글로벌 위기 속에서 “우리”라는 개념을 재구성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버틀러는 이러한 ‘비선택적 공거’에 따른 타자와의 ‘비의도적 근접성’에 따라 우리라는 개념이 경계를 넘어서서 확장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슬픔에 머무는 것(tarrying with grief)이 새로운 형태의 윤리적·정치적 공동체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실제로 슬픔은 우리를 동등한 위치에 놓아 역사적 상실의 경험이 모두를 연결하는 “미약한 우리”(tenuous ‘we’ of us all)를 만들어낼 잠재력을 가진다고 말한다.
제목에 관하여 #2_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
슈톨퍼슈타인 프로젝트는 1992년 독일 예술가 군터 뎀니히(Gunter Demnig)가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독일어 stolpern(걸려 넘어지다)과 stein(돌)의 합성어로 직역하면 “걸림돌”이지만 의미적으로는 “기억의 돌”이 더 적합하다. 나치 시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의미 있는 독일 전역 거리에 작은 동판을 설치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잠시 멈추며 자연스럽게 과거의 상처와 희생을 기억하게 만드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 글에서는 물리적 실체로 한정하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 상실과 책임을 되새기게 하는 장치로 확장하고자 한다.
2025년에는 “미약한 우리”의 연대가 더욱 강해지길 바라며.
온 마음을 다해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문강형준. (2015). 재난 시대의 정동 : 애도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여성문학연구 제35호, 41-67.
문성윤. (2024). 국가적 참사로 발생한 타자의 죽음과 사회적 애도에 관한 고찰: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을 중심으로. 생명연구 제72집, 65-84.
이경래. (2022). 정동의 기록화 : ‘4.16 기억저장소’를 중심으로. 기록학연구 74, 5-43.
이희은. (2023). 사회적 참사와 타인의 죽음: 이태원 참사의 고통과 죽음은 왜 일상으로부터 배제되었나?. 문화연구 제11권 1호, 23-41.
정은귀. (2023). 애도의 방법론과 책임의 윤리: 재난과 죽음을 바라보는 열세 가지 방법. 안과밖 : 영미문학연구 제54호, 184-218.
최성용. (2024). 10·29 이태원 참사의 사회적 애도와 기억을 위하여. 황해문화, 2024 가을, 274-289.
최정. (2020). 고통의 연대적 공감과 애도를 위한 기억과 망각의 서사. 한국언어문학 제113호, 195-230.
Lucia Angelino. (2024). Questioning the ”We” in Times of Global Threats with Butler and Levinas. Research in Phenomenology, 53 (1), 83-104.
Stolperstein https://en.wikipedia.org/wiki/Stolp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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