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기록연구직렬이 신설되고 중앙행정기관에 기록연구사가 배치된 지도 20년이 넘었다. 낯선 전문직으로 조직에 들어가 업무의 틀을 잡던 사람들이 이제는 어엿한 ‘고인 물’이 되었다. 기록연구사라는 이름이 우리가 하는 일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 되묻는 지금, 그 이름으로 오래 일해온 모습도 한번 돌아볼 만하다.
익숙함의 온도
어떤 기록연구사는 오래 해오던 방식으로 기록을 관리한다. 해마다 지난해의 계획을 꺼내 날짜와 수치를 고치고, 익숙한 순서에 따라 업무를 진행한다. 처리과에서 제출한 자료에 빠진 것이 없는지는 확인하지만, 그 방식 자체가 여전히 유효한지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시스템에 설정된 보존기간과 공개 여부를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기고, 당장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은 굳이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다. 업무는 기한 안에 처리되고 결과도 보고된다. 다만 어제의 방식이 오늘도 반복되고, 반복된 방식은 어느새 가장 합리적인 방법처럼 느껴진다. 그 사이 법령과 시스템은 바뀌고 다뤄야 할 기록의 범위도 넓어지지만, 달라진 업무를 익숙한 방식으로 감당하는 일이 반복된다.
전문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조직에 들어왔지만, 일상은 종종 그 이름의 무게를 잊게 한다. 기록의 가치와 맥락을 고민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정작 모니터 앞에서는 수많은 처리과에서 쏟아지는 기록물의 보존기간과 시스템의 빈칸을 확인하는 데 하루를 보낸다.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고민하던 자리에 올해 몇 권을 처리했는지가 남는다.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한 일에서 확인과 처리만 반복하는 동안, 소진은 성실하게 일한 흔적으로 여겨진다.
“여기서는 원래 이렇게 해왔어요.”
짧은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관행의 냄새가 배어 있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에 개구리를 넣어두면 온도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머문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 점진적인 변화에 무뎌지는 모습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비유다. 불편함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불편함이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이 된다.
물은 계속 뜨거워지고 있는데, 개구리는 그저 오늘도 무사히 일을 마쳤다고 생각한다.
우물의 너비
우물 안에도 개구리 한 마리가 있다. 이 개구리는 자기가 사는 곳을 누구보다 잘 안다. 어디가 깊고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하는지, 비가 오면 물이 얼마나 차오르는지까지 꿰고 있다.
오랫동안 한 기관에서 일한 기록연구사도 그렇다. 조직의 사정과 업무의 맥락을 알고, 직접 만든 분류체계와 매뉴얼에도 자부심이 있다. 어느 부서에 어떤 말을 해야 협조를 구할 수 있는지도 안다. 그 경험 덕분에 돌아가는 일이 적지 않다. 한 기관의 사정과 맥락을 깊이 아는 것은 기록연구사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다만 익숙한 세계를 깊이 아는 것과 그 세계의 경계를 넘어 바라보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장자는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살아온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구리에게 넓은 바다는 단지 모르는 대상이 아니라, 애초에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였을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기록연구사는 대표적인 소수직렬이다. 한 기관에 기록연구사 한 명만 배치된 경우도 적지 않다. 내 업무 방식이 맞는지 토론할 동료가 없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외로움이지만, 어느새 ‘내가 정답’이라는 기묘한 안도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게 고립은 조금씩 폐쇄성으로 굳어진다. 현장에서 부딪친 문제와 어렵게 찾은 해법도 그 기관 안에 머문다. 다른 사람의 질문을 만나 더 나아질 수 있었던 경험이, 혼자만 아는 노하우로 남는 것이다.
우물 안에는 아는 것도 많다. 그런데 우물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점점 줄어든다.
각자도생의 끝에서
최근 세미나나 기록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면 묘한 기분이 들곤 했다. 민간의 다양한 아카이브와 새로운 기록 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생생하고, 관심도 그쪽으로 모이는 듯했다. 반가운 일이면서도, 그 사이에서 공공기록관리는 이미 할 이야기를 다 해버린 고루한 분야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행정의 판단과 책임을 어떻게 남길지, 새로운 시스템과 데이터를 어떻게 기록으로 이어갈지 고민할 일이 여전히 많은데 싶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는 그 고민을 얼마나 밖으로 꺼내놓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급한 업무에 밀려 질문을 미루고, 기관의 특수성을 이유로 대화를 닫고, 별문제 없이 한 해를 넘긴 것을 성과로 삼아온 모습들. 그런 모습이 쌓여 공공기록관리를 더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분야처럼 보이게 한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쓰고 나니 조금 민망해진다. 남의 일처럼 적어놓은 말들이 낯설지 않아서다. 남이 하면 관성으로 보이던 것이 내게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학계와 현장의 변화를 나름대로 따라가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다시 하던 대로 일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마음을 다잡자는 말로 끝낼 수는 없다. 전문요원 한 사람을 배치했다고 전문성이 저절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업무는 한 사람에게 몰리는데 인력과 예산,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바꿀 권한은 다른 곳에 있다. 이런 자리에서 지치지 않는 것까지 개인의 역량으로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공공기록관리가 다시 질문이 살아있는, 흥미로운 현장이 되었으면 한다. 각자의 우물 안에서 외롭게 마주했던 고민을 밖으로 꺼내놓고, 서로의 질문에 답하며 오래 쌓인 경험을 다음 시도의 밑천으로 바꾸는 일이다.
우물 안에 갇힌 고인 물로 머물지, 밖으로 나와 서로를 잇는 물줄기가 될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혼자서 무사히 하루를 견디는 각자도생을 넘어, 함께 묻고 답하며 흘러가는 기록 현장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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