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루샤(Edward Ruscha, 1937-)는 1965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주요 도로인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와 할리우드 대로(Hollywood Boulevard)를 체계적으로 촬영하며 방대한 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했다. 그는 픽업트럭에 특수 제작된 카메라를 장착해 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일정한 간격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고정된 카메라는 정해진 높이와 각도를 유지해 촬영 대상의 균일한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 적합했으며, 이를 통해 도로 양쪽의 건물과 도시 풍경을 포괄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루샤는 이 작업을 단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동일한 도로를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촬영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도시의 변화와 발전을 면밀히 관찰하고자 했다.
에드워드 루샤는 사진 아카이브를 편집해 아트북 형태로 발표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Every Building on the Sunset Strip>(1966)은 선셋 대로의 모든 건물을 있는 그대로 촬영해 발표한 것이다. 이 책은 접이식 판형으로 제작되어 펼쳤을 때 거리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이를 통해 당시 로스앤젤레스의 도시 풍경과 건축 환경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루샤는 아트북의 형태인 작품에서 사진을 연속적으로 배열함으로써 예술적 결과물로 승화시켰다. 또한, 그는 도시의 일상적 장소를 미적 탐구의 주제로 삼으며, 독특한 예술적 시각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주유소를 촬영한 <Twentysix Gasoline Stations>(1963), 로스앤젤레스의 아파트를 담은 <Some Los Angeles Apartments>(1965)는 평범한 도시 풍경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아트북들은 도시 환경을 미학적으로 재구성하며, 일상적 장면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루샤의 독창성을 잘 보여준다.
2012년, 에드워드 루샤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게티 연구소(Getty Research Institute, GRI)에 기증했다. 약 6만 5천 장의 사진, 네거티브, 관련 문서와 노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사진가로서 예술적 작업을 이어온 루샤가 자신의 사진을 '작품'이 아닌 '아카이브'로 기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게티 연구소는 사진이 지닌 본질에 주목했다. 루샤의 사진이 단순히 예술성을 강조하는 독립적인 작품이라기보다는, 특정 시대의 도시 환경과 문화적 변화를 포착한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고 평가했다. 이는 루샤가 사진을 통해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의 물리적 변화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자 했던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정은 게티 연구소와 루샤 사이의 합의에 따른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게티 연구소는 에드워드 루샤로부터 기증받은 아카이브를 디지털화해 <12 SUNSETS: EXPLORING ED RUSCHA’S ARCHIVE>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했다. 루샤의 사진 기록을 다각도로 탐구할 수 있는 콘텐츠로, 그의 작업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해당 콘텐츠는 사진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적·공간적 맥락에서 재구성하여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는 1965년부터 2007년까지의 특정 연도를 지정해 해당 연도에 촬영된 거리 사진을 통해 도시 변화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두 개 이상의 연도를 선택하여 동일한 위치의 변화를 병렬로 비교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특정 시점에서의 건축물 변화, 상업적 간판의 변천, 거리 환경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포인트는 바로 루샤의 사진을 관람하는 독특한 방법이다. 루샤가 픽업트럭을 타고 촬영했던 작업 방식을 디지털 플랫폼에서도 그대로 구현하여, 사용자가 마치 도로를 직접 운전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히, 사용자 각자의 취향에 따라 픽업트럭, 클래식 버스, 자동차 중 하나를 선택해 가상으로 도로를 여행할 수 있다. 이 요소는 단순히 사진을 보는 것을 넘어 루샤의 시각적 경험에 동참하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각각의 사진에서 텍스트와 태그를 함께 배치해 세부 정보를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특정 키워드로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한다.
결과적으로, 새롭게 구현된 루샤의 사진은 단순히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건축물의 변화를 연도별로 탐색할 수 있어, 사용자는 도시의 시각적이고 역사적 내러티브를 탐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에드워드 루샤의 사진은 예술가 개인의 창작물에 그치지 않고, 도시 역사를 담은 중요한 시각적 아카이브로 평가될 수 있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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