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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비스트가 만난 예술가④ 전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다정한 '굳이'의 순간들

2026.01.28 | 조회 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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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설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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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작가 소개: 전지

‘말하기’가 어렵고 긴장이 돼서 미술과 만화, 글로 이야기하는 편이다. 어떻게 하면 타고난 기질을 사용해 표현하고 일하며 살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만화 『선명한 거리』, 『음음음』, 『끙』, 『오팔하우스』를 그렸고, 가족구술화 엄마편 『있을재 구슬옥』, 안양 아카이브 프로젝트 『채집운동』을 쓰고 그렸다.

 

기록방식의 기준: 중재와 균형

 

  • '재미'(이용자 지향)와 '사실'(증거 지향)의 중재
  • '일'(공적 의무)과 '개인 작업'(예술적 자유)의 분리
  • '객관적 증거성'과 '주관적 서사성' 사이의 긴장 관계 

 

작가는 기록으로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만화라는 매체 특성상 '재미'와 '유머'를 주어야 한다는 압박 사이에서 부단히 노력한다. 만화라는 매체 특성상 ‘재미’는 필수적이다. 작가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유머와 위트를 가미하지만, 이는 정보를 왜곡하기 위함이 아니라 기록의 이용 장벽을 낮추기 위함이다. 작가는 각색이 기록 본연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스스로 '수위 조절'을 한다. 본인의 기록이 너무 주관적이거나 정보가 부족하진 않은지 스스로 질문하며, 예술적 각색이 사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한다. 작가는 외부 의뢰를 받는 '일'로서의 기록과 개인적인 '예술' 작업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고민한다.

 

"기록이 원래 갖고 있는 내용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수위를 조절한다고 언급한 부분이,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작가가 기록이 갖고 있는 개념을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읽혀서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사실을 그리고, 재미와 유머도 넣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너무 왜곡되면 안 된다고 하는 부분에서 작가가 밸런스를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작가가 겪는 갈등은 오히려 기록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기록을 정보 전달을 넘어 만화나 작품으로 표현하면서 이용자(독자)에게 '재미'라는 전술을 주는 것도 필요할텐데, 작가가 말하는 '일(공적 기록)'과 '예술(사적 기록)'의 문법을 구분하려는 마음이 돋보였어요."

설리반

"작가가 이러한 경계에서 '마음을 많이 쓰고 고민하는 과정' 자체에 주목해요. 이는 기록이 기계적인 복제가 아니라, 기록자의 치열한 윤리적 고민 끝에 탄생하는 산물임을 강조하는 활동가적 시선인 것 같아요."

"(팟캐스트 '아카이브다' 출연분을 들어보면) 전지 작가가 각 작업을 설명할 때 처음에 항상 '어디에서 의뢰를 받았고 어떤 지원을 받으면서 했던 일이다', 혹은 '어떤 용역으로 했던 일이다' 이런 것을 밝히더라고요. 저는 그게 논문을 작성하는 연구자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출처나 사사를 밝히는 거 같은..." 

이대로
굳이 하는 일들, 2023이 만화에서 작가의 중재와 균형에 대한 고민이 잘 나타난다.
굳이 하는 일들, 2023
이 만화에서 작가의 중재와 균형에 대한 고민이 잘 나타난다.

작품의 특징: 매체의 형식과 물성

 

  • 만화: 시간의 압축과 재구성, 정보와 유머의 결합
  • 모형: 촉각적 기억, 신체적 인지 

 

만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기록자가 포착한 현장의 맥락을 가장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다층적 기록 매체'이다. 정보와 유머를 결합하여 무겁고 딱딱할 수 있는 도시의 소멸이나 장애인 인권 문제를 '만화'라는 친숙한 언어로 치환하여, 기록의 이용 장벽을 낮추고 대중적 확산성을 확보한다. 사진이 담지 못하는 '동네의 분위기', '사람들의 복잡한 마음' 등을 과장과 생략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물리적 사실보다 깊은 정서적 증거(Affective Evidence)를 남긴다.

작가가 만드는 비정형적인 모형은 수치적 정확성보다 '신체적 인지'를 기록하는 데 집중한 결과물이다. 작가의 모형은 실제 건축가의 도면이나 모형처럼 정확하지 않다. 대신 작가가 현장에서 느낀 비율과 질감을 강조한다. 이는 기록자가 대상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수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인지적 기록'이다. 

구석에 있기엔 과한 성의가 들어갔거나 그늘진 곳에 있기엔 아까운 조형성을 가진 덩어리, 주택가의 모르타르들.
쓰임새, 목적, 의도가 성향과 상황을 드러내며 마감되어있는 그 모양들은 읽을거리와 자유로이 해석될 여지를 묵묵부답의 태도로 내놓고 앉아들 있다. 산책하며 이미지를 주워담다 보면 가상채집 주머니가 포화상태가 될 정도로 동네엔 많은 감정과 상황들이 덕지덕지 눌어붙어 걸리고 박혀있다. 구조체로 쓰이기보다 미장용 바름재료로 쓰이는 값싼 모르타르는 여러 방식으로 동네를 뒤덮고 있는데, 다룸에 의외로 상당히 너그러워 다루는 이의 기분과 상황을 섞고 반죽하여 의도에 맞게 굳히기 그만인 재료.
급하다 못해 너무나 대충, 못생겼다기보다 무서울 정도의 모양들엔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한번은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매끈하게 마감 되었거나 안쓰러울 정도의 귀여운 모양새를 (우연히) 가지게 된 모르타르들을 보면 동네엔 미운 사람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엉뚱한 성격, 심심했던 때, 몸에 밴 꼼꼼함, 화가 나서 만들기 시작했지만 마감에 관한 기준은 명확한 누구들의 제작과정이 눈에 선하다.
(하략...)

2018년 개인전 <채집운동 모르타르> 전시 서문

채집운동 모르타르, 2018
채집운동 모르타르, 2018

"건축 모형은 비례감이 정확하잖아요. 작게 만들어도 가로세로의 비율이나 이런 게. 근데 전지 작가의 모형은 그렇지 않게 좀 과장된 게 있죠. 작가가 느끼는 비례감으로 때로는 삐뚤빼뚤하게 표현한 게 재미있어요. 본인이 인지하는 지점을 솔직하게 표현한 거 같아서 어떻게 보면 더 사실적인 것도 같아요."

"건축 모형은 보통 흰 바탕에 흰색 물체로 표현하는 게 대부분인데, 전지 작가의 모형에서는 색감이나 재질에 더 신경을 많이 쓴 거 같았어요.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는 더 디테일하고 사실적인 거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대로

"어떤 대상이나 장소를 기록하는데 9시 반에는 과일을 파는 용달이 왔고, 11시에 환경 미화원...  그 다음에는 비둘기가 지나갔다고 그려요. 모두 사실이지만 한 번에 일어난 일은 아닌데, 보는 사람은 이 모든 일들이 한 화면에 담겼을 때 동시에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이런 부분은 작가가 보는 관점과 이것을 엄밀히 기록으로 보고자 하는 관점이 좀 어긋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그것이 예술가의 일이니까요."

"작품을 자세히 보기 전까지는, 전지 작가의 만화나 작업들이 제가 생각하는 기록의 개념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실제로 작품을 읽고 공감하면서 그런 생각에 변화가 있긴 했어요.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저의 오만이 개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설리반

 

작업을 대하는 태도: 발품과 현장성

 

  • 정보 습득을 위한 반복적인 산책과 체류
  • 실제 몸으로 겪는 '신체적 경험'으로서의 발품  

 

작가는 디지털 기술의 효율성을 거부하고 드로잉과 만들기라는 노동집약적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기록물에 생산 맥락(Provenance)에 대한 작가의 신체적 헌신과 진본성(Authenticity)을 각인한다. 예를 들면, 직접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본 후 과거 '미적', '조형적'으로 의미있다고 여겼던 비정형적인 계단이나 골목이 장애인에게는 '공포'와 '위험'일 수 있음을 깨닫고 이를 작품에 반영하기도 한다.

 

광명의 옛일들, 2025작가가 직접 걷고 들으며 경험한 사실들을 표기한 인지지도
광명의 옛일들, 2025
작가가 직접 걷고 들으며 경험한 사실들을 표기한 인지지도

"전지 작가가 새로운 동네에 처음 가면 그냥 일단 걷기 시작하잖아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정보의 유무에 따라 동네 풍경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죠. 사람들의 이야기도 더 가까이에서 듣게 되면서 동네에 온도를 느끼게 되고요."

"태백에서 작업할 때도 산책을 많이 했더라고요. 갈 수 있는 거의 모든 산에 오르고, 산을 따라 다른 동네로 가보기도 하고. 작가는 대상에 다가가고 이 지역을 더 알 수 있게 돌아다니는 것을 산책한다고 표현했지만, 그게 작업을 하고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설리반

"공간을 실제 경험한 거를 작품에 반영하는 것... 장애인의 입장에서 도시를 느끼기 위해서 본인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기도 하고... 작업 과정을 보면 실제 몸으로 경험을 하려는 노력이 많이 느껴지는 거 같아요."
  
"도시계획에서도 생활자, 보행자의 입장에서 도시를 바라보고 계획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작가는 도시계획가의 기본 소양을 갖춘 거 같아요."  

이대로

 

작업을 대하는 태도: 관계맺기와 자기성찰

 

  • 지역주민과 관계맺는 방식
  • 자기성찰적 재맥락화

 

작가는 기록 대상인 주민과 동네를 정보 제공자로 수단화하지 않고, 정중한 소통과 허락의 과정을 거치는 참여형 아카이브(Participatory Archives)의 전술을 실천한다. 예를 들면,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주인에게 정성스럽게 줄을 그어 쓴 편지를 남기는 등, 지역민과 관계 맺는 방식이 매우 인간적이고 예의 바르다.

기록자 자신의 위치와 태도를 끊임없이 성찰하며, 과거의 기록을 새로운 사회적 가치(베리어 프리 등)에 비추어 재평가하는 유연한 기록관을 견지한다. 이런 작가의 태도는 주류 담론에서 배제된 도시의 미시적 흔적과 보행 약자의 시각을 발굴하여 기록화함으로써, 공적 기억의 지평을 넓힌다.


"많은 작가들이 지역정체성을 살린 작업을 할 때,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데, 전지 작가가 지역주민에게 말을 거는 방법은 귀여우면서도 단단한 용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장소와 관계맺기 위해 거주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게, 쉽지 않고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부끄러움이 많다고 주장하는 전지 작가의 이야기를 믿기가 어려워요(하하).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건지."

이대로


"태백에 있는 어떤 담벼락에 작업을 했는데, 그 벽 주인한테 작업 허락을 받으려고 편지를 써 놓은 거예요. 어떤 작업을 꼭 하고 싶다 라는 내용이었는데, 전지 작가를 직접 만나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성품을 갖고 있는지 알 것 같아요. 작업 과정에서 보이는 굉장히 예의 바르고, 귀여운 요소들이 작가를 더 매력적으로 드러내어서 인상 깊었어요. 정성스럽게 편지를 쓰는 이 모습이... 이런 걸 보고 누가 허락을 안 해주겠어요? 글씨 삐뚤삐뚤하지 않으려고 연필로 줄까지 긋는, 섬세한 다정함을 갖고 있구나 하면서 감탄했어요."

"타인과 계속 소통하고, 그리고 호기심이 많다는 점, 오래된 것들을 애정하는 모습이 작가에 대한 벽을 없애 주는 느낌이 들어 다가가기 편했고, 그런 점에서 '이대로님'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느꼈어요."
  
"지역에서 작업하다 보면 사람들의 얘기도 더 가깝게 듣게 되고 이 동네에 애정이 생기는데, 그럴 때 쯤 프로젝트를 끝내고 떠나잖아요.  그래도 동네에는 작가의 작업이 남겨지고, 작품과 또 다른 이야기들이 계속 쌓이고 남겨지겠구나 싶었어요."

설리반
리콜렉션 모르타르 드로잉, 작업과정, 2021
리콜렉션 모르타르 드로잉, 작업과정, 2021
리콜렉션 모르타르 드로잉, 2021
리콜렉션 모르타르 드로잉, 2021

*각각 미술과 도시를 전공하고, 그 관심을 기록으로 확대한 두 필자가 전지 작가의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아키비스트의 관점으로 ‘아카이브 아트’, ‘도시기록’을 주제로 종종 이야기를 나누고 글로 옮긴다. (이 글은 두 필자가 작가로부터 제공받은 포트폴리오와 작가노트를 보고 대화를 나눈 후, 녹음파일을 open AI로 요약한 것을 토대로 편집하였다.)

*이 글의 주인공이 되기를 허락하고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준 전지 작가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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