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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아카이브의 억울함에 관하여

2024.12.25 | 조회 4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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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은 12월 12일부터 20일까지 대통령비서실, 행정안전부, 경찰청, 국방부 등 총 18개 기관을 대상으로 한 '12·3 비상계엄 선포 관련 기록물관리 현장점검'을 완료했다. 현장점검 결과 특이 사항을 발견하지 못했고, 점검 대상 기관도 점검에 협조적이었다고 한다. 이로써 국가기록원이 6일 관련 기관에 보낸 ‘기록물관리 철저 협조 요청’ 공문 발송과 함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기록물의 무단 폐기를 막기 위한 국가 아카이브의 역할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아카이브 구성원의 안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국가 아카이브의 조치는 실효성과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 따르면 북파공작원 대령 7명이 비상계엄 다음 날 임무가 적힌 종이를 파쇄기에 처리해 증거를 인멸했다고 하며, 서울경찰청장은 윤석열이 건넨 문건을 파쇄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알려졌다. 아직도 존재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는 국무회의 속기록(대통령기록물)과 회의록(공공기록물)도 그 작성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가 아카이브의 점검은 ‘특이 사항’이 없다니 기록물을 내란의 증거로 이해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어리둥절함을 넘어 국가 아카이브의 존재 의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국가 아카이브의 조치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국민의 기대와 매우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선포 3일 후인 12월 6일 국가기록원장은 폐기금지제도 발동과 점검 요구 등에 대해 ‘개인들이 만든 메모를 기관이 갖고 있지 않다.’, ‘수사기관의 요청이 없기 때문에 ‘폐기금지 검토’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도 국가기록원에 개인적인 메모를 점검하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 비상계엄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담고 있는 아무리 작은 공공 기록이라도 남을 수 있도록, 해당 기관의 기록물 관리 실태를 확인하고, 일상적 미등록이 발견된다면,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기록물이 파기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하라는 주문을 ‘개인의 메모’ 운운하며 회피한 것이다. ‘폐기금지제도의 수사기관 요청’은 12월 9일 그간 수사기관이 요청한 ‘폐기금지 요청’도 수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이유 없이 무시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기록원은 12월 13일 '국가기록원고시 제2024-9호, 제2024-10호'를 통해 그간 미루었던 '故 채수근 상병 수사 관련 기록물', '10·29이태원참사 관련 기록물'의 폐기 금지를 고시한다. - 관보 제20894호)

국가기록원장은 그제야 다른 변명을 들고나온다. ‘정부 전자기록 생산 시스템에 등재된 기록된 것만 '폐기 금지 조치' 대상이므로, 계엄 선포 관련 기록물들은 조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국가기록원장에게 묻고 싶다. 본인은 직원에게 ‘정부 전자기록 생산 시스템에 등재된 기록’만 보고를 받고, 그 기록만으로 업무가 진행된다고 믿는가. 그런 기록들만 잘 보존한다면 비상계엄 선포를 역사로 보존할 수 있다고 믿는가. 이러한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이미 국가 아카이브 수장의 자격은 없다. 대부분의 비전자기록물이 시스템에 등재되지 않고, 비전자기록물철로 편철되어 평가심의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폐기금지 제도를 통해 평가심의를 막는 것은 혹시 모를 비전자기록물철의 폐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런 사정을 모른다면, 알고도 저런 변명을 했다면 국가 아카이브의 수장 이전에 건전한 상식을 가진 공무원 자격도 없다.

국가기록원과 함께 점검을 실시한 대통령기록관의 입장은 더욱 한탄스럽다. 12월 12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비상계엄과 관련해 점검 대상인 기록물은 지난 3일 이후 생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폐기금지 발동을 미루는 국가기록원이 비겁하다면,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은 3일 이후 생산된 것’이라고 말하는 이 관계자는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의 보존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비상계엄과 관련된 기록물을 보존하려는 중요한 이유는 그 모의 과정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은 대부분 3일 이전에 생산된 것을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대통령기록관의 대통령비서실 등에 대한 점검에 12월 3일 이전에 생산된 기록물은 점검 대상에 포함도 안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점검의 실효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대통령기록관이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의 보존에 전혀 관심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쁜 시간을 쪼개 기록물 생산기관까지 달려가 점검을 한 국가 아카이브 직원들은 억울함을 호소할지 모른다. 행정안전부의 일개 소속기관인 아카이브가 무슨 힘이 있냐고, 수사기관도 하지 못하는 적극적인 개입을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폐기금지 제도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도, 국가 아카이브가 힘없는 기관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국민이 국가 아카이브의 조치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사정 때문이 아니다. 기록물 폐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특이 사항’이 없다고 말하고, 기관의 수장을 비롯한 구성원들이 국민의 기대를 적극적으로 배반하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런 입장을 부끄러움 없이 유지한다면 국가 아카이브의 억울함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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