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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9급'이 하던 일 아닙니까?-(3)

'기록물평가심의회' 우리만 중요한 회의라 하지, 공공기관 내부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안해요.

2024.08.20 | 조회 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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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다주택자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사례1) A기관 기록물관리전문요원 : 'ctrl+c ctrl+v / ctrl+c ctrl+v, 복붙 / 복붙, 드래그 /드래그'의 연속이었다. 드디어 비전자문서 38,000여 권의 기록물평가심의서 작성을 완료했다. 기록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그 내용과 평가사유를 작성하고 싶지만, 그건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불가능하다.(기록물평가심의서 엑셀(xlsx) 파일이 다운되어서 복구하는 시간, 파일 열고 닫는 시간, 필터링 하는 시간 그것만 모두 합쳐도 반나절은 되겠다.) 그렇게 열심히 작성한다고 평가심의회 위원들이 모두 다 보실 수나 있을까? 이거 말고도 할 일은 쌓이고 쌓여있다.(일단 내일 점심식사부터 우리 팀장, 과장은 기록물평가심의회 업무추진비를 쓸 요량으로 맛있는 식당을 찾아보라고 하겠지?) 회의록, 결과보고서, 심의의결서 다 작성한 후에 처리과 별로 폐기 대상 문서들을 가져와 확인하는 것도 일이고, 내가 관리하는 문서고에서 폐기할 문서들을 골라내는 것도 최소 한 달은 바라봐야 하는 일이다. 내부직원 그 어느 누구도 '문서폐기'가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는 환경에서 최선과 현실을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내겐 가장 중요하다.

언제 다운될지 몰라 뛰는 가슴 부여잡고 작성한 심의서. 버전관리는 그렇게 습관이 되었다.
언제 다운될지 몰라 뛰는 가슴 부여잡고 작성한 심의서. 버전관리는 그렇게 습관이 되었다.

(사례2) B기관 기록물평가심의회 외부위원 : B기관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메일로 보내준 기록물평가심의서 엑셀(xlsx) 파일이 5분이 지나 겨우 열렸다.(내 컴퓨터를 바꿀 때가 된 것인가?) 열린다고 해도 무수한 행의 연속. 마우스를 아래로 드래그하며 확인하기에도 눈이 아프고, 필터링을 하니 또 하세월이다.(역시 내 컴퓨터를 바꿀 때가 맞나보다.) 사실 업무명, 철제목, 내용, 평가사유를 읽어도 그 기록의 보존가치를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다. 현장의 기록관리 담당자도 해당 기관의 기능과 업무 전체를 조망하는 것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하물며 외부위원이 기록물평가심의서만 보고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최대한 열심히 보되 기록물평가심의회에 가서 2~3개 정도 질문 던지고, 1~2개 의견 개진하고, 윗사람들 앞에서 우리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정말 고생많다고, 잘했다고 추켜세우고 오는 것이 최선이다. B기관의 기록관리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더 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의견을 제시하고 싶은데 공식적인 안건조차 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아쉽다.

B기관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심의회 개최 이전에 보내온 메일. 현장 기록관리 동료로서 외부위원이 해주었으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문장 하나하나마다 절절히 느껴진다.
B기관 기록물관리전문요원이 심의회 개최 이전에 보내온 메일. 현장 기록관리 동료로서 외부위원이 해주었으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문장 하나하나마다 절절히 느껴진다.

사례1과 사례2는 내가 경험해본 '기록물평가심의회'를 둘러싼 전문요원과 외부요원의 심정이다. 현재 공공기관의 기록 평가는 기록관리기준표 단위과제의 보존기간 책정(1차 평가)과 이에 따라 보존기간이 경과한 기록에 대한 폐기 여부 확정(2차 평가)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장에서 실질적인 평가업무는 '2차 평가'에 주로 머물러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령 상으로도, 그간 운영된 국가기록원의 평가지표 상으로도, 공공기관 기록관이 주로 다루는 기록의 매체(비전자문서) 상으로도 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현장의 전문요원 인식 속에서도 그렇다. 이렇듯 공공기관의 기록관리는 '2차 폐기'가 핵심업무가 되다보니 기록물평가심의회도 그 명칭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에 비해, 실질적으로 보존기간이 경과한 기록의 폐기를 1~2시간 내에 결정하는 좁은 의미의 평가기능을 수행하는 '회의체'가 되어 버렸다. 공공기록물법이 각 기관에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규정한 유일한 회의체인데 말이다.

시행령 43조의 제목은 거창하게 '평가 및 폐기'로 명명하고 있으나, 실상은 폐기 절차일 뿐 우리가 공부한 '기록의 선별평가'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시행령 43조의 제목은 거창하게 '평가 및 폐기'로 명명하고 있으나, 실상은 폐기 절차일 뿐 우리가 공부한 '기록의 선별평가'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 '기록물평가심의회'에서 1차 평가인 '기록관리기준표'를 다루자는 것은 아니다. 앞선 글에서 쓴 것처럼 기록관리기준표는 '1년, 3년, 5년, 10년, 준영구, 영구로 제한된 일종의 문서보존기간표'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공공기록물법이 각 기관에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규정한 회의체에서 기록정보에 대한 설명과 관리주체, 처분시기와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기술된 '기록관리기준서'를 '공식화', '규정화'하는 행정절차로 다루는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다. 나는 지방자치단체 전문요원으로 근무하면서 (또 하나의 작은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지자체의 기능과 업무와 관련된 법률을 검토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은 타법의 공공기관 회의체에 비해 우리의 '기록물평가심의회' 기능은 매우 협소하고 권한도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 예시로 '영유아보육법'의 '보육정책위원회'를 보면 그 기능과 권한이 매우 구체적이고 해당 법률의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충 찾아본 법령 사례가 이렇다. 여러 법령들을 찾아보시라. 대부분 이런 구성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대충 찾아본 법령 사례가 이렇다. 여러 법령들을 찾아보시라. 대부분 이런 구성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대다수 타법에서 말하는 '기본계획'은 공공기록물법에 따라 쳇바퀴 돌 듯 매년 반복되는 기록관리 업무에 대한 설명과 통계, 일정 등을 정리한 현재의 '기관별 기록관리 기본계획'과는 결이 좀 다르다. 많은 법들이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위원회'에서 정책의 목적 달성을 위해 5년 단위 계획과 1년 단위 세부 시행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에 따라 유관 기관별로 수행해야 할 목표와 업무, 일정 등을 정리한 것이 바로 '기본계획'이다. 그리고 그 기본계획의 수행결과를 최종적으로 위원회에서 평가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는 법들도 있다. '국가기록관리위원회'와 각 기관 '기록물평가심의회'의 기능이 단절되고 매우 동떨어져있는 우리 공공기록물법이 매우 독특한 법 구조라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다시 글을 써볼 생각이다.)

 법령에 저렇게 한줄 넣는다고 만사형통으로 각 공공기관의 기록관리 정책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장을 모르는 매우 안일한 생각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법령에 저렇게 한줄 넣는다고 만사형통으로 각 공공기관의 기록관리 정책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장을 모르는 매우 안일한 생각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따라서 나는 기록의 선별평가를 위한 '기록물평가심의회'를 넘어 기관별로 '기록관리위원회'가 필요하고, 그 회의체에 더 많은 권한과 기능을 더 구체적으로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회의의 위상이나 개최주기도 충분히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현재의 '1개 기록관=1개 위원회'가 아니라, 중앙행정기관은 '특행' 및 소속기관을 포함한 1개 위원회, 교육청은 교육지원청을 포함한 1개 위원회, 지방자치단체는 인구 및 행정조직의 규모에 따라 조례를 통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이 모든 현장의 기록관리 문제들을 유일하게 해결할 수 있는 '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적어도 다른 법령과 비슷한 제도적 기반은 만들어놓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기관별로 '기록관리위원회'가 다룰 수 있는 정책, 기능, 의제들은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역시나 아쉽지만 그 구체적인 제안은 필자의 끈기 부족을 탓하며 다음 회차로 넘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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