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도님의 글입니다.
지나고 보니 ‘참 무모한 도전이었구나’ 싶을 때가 있다. 무식과 용감의 관계처럼 대개 뭘 잘 몰라서 하는 선택과 결정의 후과일 텐데, 자연스레 좌충우돌과 우여곡절의 시간을 맞닥뜨려야 한다. 다행히 결말이 ‘해피’하면 도전한 자에게 축복이 있을 터! 물론 결말이 ‘비통’해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 남으니 아주 손해는 아니다.
내게 ‘무도’를 꼽으라면 뒤늦은 대학원 진학이 단연 으뜸이다. 기록이 뭔지 알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로 들어간 내게 한 장의 행정문서를 한 시간 동안 읽어가는 경험은 신세계였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래도 무슨 일이든 맛보기를 하려면 6개월은 버텨봐야 한다는 경험칙이 있어 경거망동하지는 않았다.(대학원 동기 중에는 한 학기를 마치고 탈출한 이도 있었다.) 늘 소화 불량에 허덕였지만 가까스로 버티기에 성공했고, 감사하게도 개인적인 관심 영역인 기록 서비스와 활용에 대한 가능성과 쓰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다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도반’을 만난 것은 큰 축복이었다.
이후 가끔씩 찾아오는 발견의 기쁨도 쏠쏠하다. 수준 낮은 이에게도 강림하는 ‘번쩍’ 하는 어떤 순간 말이다. 얼마 전에도 그런 순간을 경험했다. 업무와 관련해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 활동 과정을 접했을 때다.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역사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첫 공개 증언 덕분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2024년 10월 말 현재 1670회에 육박하는 정기 수요시위, 정부 산하 공공 연구소 운영, 피해자에서 여성 인권 활동가로 변신한 이야기 등 지난 30여 년간 대한민국은 일본군‘위안부’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활동과 연구를 축적해오고 있다.
이를 눈여겨 봐온 이가 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 서경호 위원장이었다. 2014년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서 위원장은 일본군 생산 공문서들과 피해자 증언, 시민사회의 운동 기록 등을 20년 넘는 시간 동안 쌓인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핵심 요소인 ‘세계적 중요성’을 충족한다며 등재 추진을 제안했다. 지금으로서는 놀랍게도 서 교수의 제안을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등재 추진이 가시화됐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전쟁, 식민지 등 복합적인 갈등을 품은 역사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로 부각됐고, 2016년에는 7개국 14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한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 위한 국제연대위원회까지 구성되면서 등재는 순조로운 듯 보였다.
하지만 제안으로부터 꼭 10년, 현재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 여부는 대체불가능하고 세계적 중요성을 가진 기록물이라는 전문가의 판단을 받았음에도 답보상태이다. 등재 노력이 국가 간 갈등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정치적 목적’이라는 논쟁을 일으키는 동시에 ‘자본력’까지 동원한 일본의 집요한 로비와 방해가 한 축, 여기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측이 자유롭지 못한 현실적 이유도 또 다른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접하면서 꽂힌 부분이 ‘세계적 중요성’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려면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인 동시에 기록물이 ‘세계적 중요성’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지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기록물이 가지는 ‘역사 서사’를 이루는 시간성과 장소, 인간의 업적, 주제, 표본, 그리고 사회적·정신적·문화적 중요성 등 여섯 가지 기준이 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세계적 중요성’을 완성시키는 구성 요소가 있으니 기록물 자체가 진본이어야 하고, 희귀성을 지니면서, 세계에서 유일하며 대체불가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록물이 소실되거나 훼손될 경우 인류의 기억과 유산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고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이라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프로젝트의 이름에 걸맞는 기준인데,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세계적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기록유산에 담긴 역사적 의미나 그 내용 해석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전문가들은 한 많은 피해 당사국이라는 위치나 기록물이 담고 있는 내용이 100% 진실이라는 믿음과 상관없이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을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전문가들은 피해자인 할머니가 다르게 증언한 기록물도 하나하나가 피해 ‘기억’을 담고 있기에 모두 ‘진실성’을 가진 ‘원본’으로 보았다. 피해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증언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의 다양성 문제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성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라 터부시되기 쉽고, 당사국인 일본의 경우 가해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기록물의 은폐와 조직적 폐기의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것, 기록물이 소실될 경우 1990년대 이후 강화되어온 여성 인권 가치 등 인류의 기억과 유산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기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깨달음은 개인적으로 기록물, 나아가 기록관리의 본원적 기능과 역할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였다. 어느 순간에는 제대로 기록하고 남기는 일이 절대적인 실천일 수 있겠다는 생각,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민주성이라는 기록관리의 목적은 그것이 사실에 부합하기 때문이 아니라 기록 행위 자체로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무게감이 새삼스럽게 실감된 것이다. 기록을 남기지 않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이 즈음, ‘세계적 중요성’이라는 기준을 곱씹고 있다.
(*이 글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웹진 <결>의 ‘2024 기림의 날 특집-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하여’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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