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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믿지 못해 그런 사실을 밖에 말하기도 부끄러운 생산현황통보

2024.10.22 | 조회 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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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양두구육', 양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매한다는 뜻으로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다. 나는 공공기록 관리 영역의 양두구육, 빛 좋은 개살구로 '생산현황통보' 제도를 손꼽는다. 제도가 시행된지 어언 20년이니 언뜻 '안정화 단계'로 들어간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20년 동안 큰틀이 유지되는 것도 사실 부끄러운 일이다.

인공지능이 생산현황통보 제도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인공지능이 생산현황통보 제도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를 했다.

생산현황통보는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 기록의 이관/수집 계획을 수립하기 위하여 각 공공기관의 기록 생산현황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생산현황통보로 파악할 수 있는 주요 기록의 유형은 문서(전자/비전자), 회의록, 시청각, 비밀, 행정박물이며, 각 유형별로 통계적 측면에서 기록의 '수량'과 내용적 측면에서 기록의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 생산현황통보의 제도적 취지 및 목적을 '1. 핵심업무기록이 반드시 생산되도록 통제하기 위함, 2. 의도된 폐기 또는 비악의적인 유실 방지, 3. 기록관의 지도감독 기능 수행'으로 설명하는 논문도 있다.

공공기관의 생산현황통보에 관한 연구 / 황진현 / 기록학연구 37호 / 2013 

생산현황통보의 가장 큰 문제는 공공기관에서 생산한 기록의 '수량과 목록'을 정리한 자료에 대한 (기관 별로 편차는 있겠지만) 신뢰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기록의 이관/수집 계획 수립이라는 법률적 목적으로도 활용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추측하고 있는 거 같다. 이 문제의 표면적인 원인으로는 시스템으로 데이터의 추출이 가능한 전자문서를 제외하고 다른 유형의 기록들은 '부서 담당자의 관심도와 노력에 의존'해 수기로 작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실제 기록의 수량과 목록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부서의 직원 또는 부서장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기관 내에서 기록관리 업무가 중요한 위상이 아닌데 굳이 열심히 작성할 필요가 있을까?(가끔 그런 직원이 있기는 하다.) 감사 같은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며 잘못 작성됐는지 누군가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어려운데? 열심히/잘 했다고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성과나 보상을 챙겨주는 것도 아니며 외부로 공표되는 것도 아닌데? 

내가 굳이 왜?
내가 굳이 왜?

이러한 제도적 취지 및 목적과 상이한 현실 앞에서 어떤 사람은 생산현황통보 제도를 두고 '계륵'이라 하며 한계도 많지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이 제도에 대해 '행정 비효율'을 이유로 필요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생산현황제도 폐기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공공행정의 영역에서 '행정 대상의 통계'가 없이는 소요되는 예산, 인력 등을 산출하기 어려우며, 행정 대상의 변천 과정을 정확하기 파악하고 미래의 변화상을 예측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행정분야에 있어서도 '통계'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기록의 통계적 '수량'도 반드시 정확히 측정되어야 한다. (*수량의 정확한 측정은 이 글의 핵심 주제가 아니므로 세부 각론은 다른 기회로 넘기고자 한다.)

그렇다면 생산현황통보 자료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앞선 글에서 공공기관별로 '기록관리위원회'가 필요하고 그 회의체에 더 많은 권한과 기능을 구체적으로 부여해서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서 첫 번째 절차로 공공기관 기록의 생산 결과는 기관별 기록관리위원회에서 심의되어야 한다.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또는 기록관리 부서는 각 부서에서 작성한 기록의 통계와 목록 자료를 정리하고, 생산의무가 지정된 기록의 생산여부 확인 및 미생산 사유 등을 분석하여 일종의 생산현황 보고서를 회의에 제출하여야 한다. 각 기관별 기록관리위원회는 생산현황 보고서를 검토/심의하여 그 결과값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

두 번째 절차로 기록관리위원회에서 확정된 생산현황 결과는 각 기관별로 홈페이지 공표, 또는 고시/공고 등을 활용하여 국민들에게 최종적으로 보고하여야 한다. 공공기록의 관리가 공공기관의 투명하고 책임있는 행정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공공기록의 관리 또한 투명하고 책임있게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매우 힘든 업무가 될 것이고 많은 어려움도 초래하게 될 것이지만, 기록관리의 존재 이유를 기록관리가 외면해서는 안된다. 친절히 설명해주지도 않는 행정분야에서 주장하는 예산/인력의 필요성을 공감해 줄 국민은 없다. 나조차도.

국가기록원에서도 2016~20년까지 전체 기관의 생산현황 분석결과를 공표한 바 있다.(그 이후에도 공표하는지는 홈페이지에서 찾기 어려웠다.) 이 자료는 당연하게도 전체 기관에 대한 자료라 기관별로 세밀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하면 좋고, 안해도 그만' 공공기관 각자 알아서 하는 것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국가기록원에서도 2016~20년까지 전체 기관의 생산현황 분석결과를 공표한 바 있다.(그 이후에도 공표하는지는 홈페이지에서 찾기 어려웠다.) 이 자료는 당연하게도 전체 기관에 대한 자료라 기관별로 세밀하게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하면 좋고, 안해도 그만' 공공기관 각자 알아서 하는 것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생산현황 결과에 대한 기록관리위원회의 심의와 대국민 공표로 예측되는 효과첫째, 공공기록물법이 각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규정한 회의체의 위상 강화이다. 생산 결과에 대한 분석자료를 토대로 내부위원과 외부위원의 토론과 심의를 통해 기록의 선별평가 뿐만 아니라 어찌보면 공공기관에서 예민한 기록의 생산에 대한 안건이 공식적인 의제가 될 수 있다. 둘째, 위원회 심의와 대국민 공표라는 두 번의 참여(또는 감시?) 과정을 통해 생산현황 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 있으므로 각 부서에서 제출하는 자료의 신뢰성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위 논문에서 제도적 취지와 목적으로 제시한 핵심업무 기록의 생산, 폐기 및 유실 방지, 기록관의 지도감독 기능 수행에 어느정도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현재의 생산현황 실무에 대해 모두 동의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제시한 주장이 이 문제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이 글에서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 제도의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본조건으로 필요한 절차를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을 기준으로 잡고 세부적인 생산현황통보의 세부 각론, 실무, 서식 등에 대한 수정/보완에 대한 논의가 추가로 이루어져야 한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유비와 싸우다가 고기가 적어 먹기에 만족스럽지 않다는 '닭갈비(계륵)'에 비유하며 결국 '한중' 땅을 포기했다. 하지만 닭갈비도 오래 끓여 양념을 더하면 닭곰탕, 닭볶음탕, 닭칼국수, 닭죽처럼 충분히 맛있는 요리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포기가 아니라 변화/발전이다. 다음 글에서도 기록관리위원회가 다룰 수 있는 또 다른 기능은 무엇이 있을지 다뤄보고자 한다.

삼국지 팬들은 알다시피 조조는 결국 죽을 때까지 한중 땅을 되찾지 못했다.
삼국지 팬들은 알다시피 조조는 결국 죽을 때까지 한중 땅을 되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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