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페이스라는 아웃도어 브랜드가 있다. 영어로는 The North Face 라고 쓴다. 이 회사의 슬로건은 ‘네버 스탑 익스플로링 Never Stop Exploring’ 이다. 내가 그랬듯, 많은 소비자들이 이게 무슨 뜻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노스페이스’ 혹은 ‘노페’ 라고 부르며 사서 입고 신는다.
수목한계선이란 높은 산에서 볼 수 있는 생태적 한계선으로, 대략 해발 2,800미터 정도에서 시작된다. 이 위쪽으로는 수목이 자랄 수 없으며 산소농도와 기온이 낮아진다. 보통 수목한계선을 넘어서면서 고산병 증상이 나타나며 등반이 어려워진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분류상 8,000미터 급으로 본다. 해발 8,000미터 이상에서 산소 농도는 해수면에 비해 35% 미만이며,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생존하기 힘들다. 이러한 산들이 모인 곳이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인데, 대표적으로 1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14좌라고 부른다. 이 14좌 중 가장 높은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정상이다. 지금까지의 기록으로는 에드먼드 힐러리, 그리고 텐징 노르가이 이 2명이 1953년에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 완등에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14좌 정상 최초 완등, 즉 초등의 의미는 중요하다. 극한의 상황을 넘어 이루어 낸 정상 등정은,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극복한 인간의 도전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들 14좌 정상은 이미 누군가가 등정했으며 지금도 누군가는 그 봉우리에 오르고 있다.
최적의 수단과 방법으로 전인미답의 고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을 등반계에서는 등정주의라고 한다. 14좌 초등 등반가들은 등정주의의 화신이다. 그런데 이미 누군가 등정한 곳에 다른 누군가가 또다시 완등한다면, 일반적으로는 초등에 비해 역사적 의미가 퇴색된다. 그래서 등로주의가 등장했다. 이미 등정된 정상을 오르는데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등정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등로주의이다.
노스 페이스는 직역하면 북벽이다. 산의 북면은 해가 비치지 않아 다른 산면에 비해 등반의 난이도가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정상을 향할지라도 남들이 택하지 않은 길을 오르며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 Never Stop Exploring이다.
산악인 오은선 씨가 2009년에 14좌 중 하나인 칸첸중가 정상에 올랐다고 주장했으나 입증 의혹에 휘말렸다. 정상 등반의 증거 기록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346). 결국 대한산악연맹은 검토와 논의 끝에 오은선 씨가 칸첸중가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고 공표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00826207300007).
산악인 혹은 등반가로서 정상 등정을 주장한다면 그에 따른 입증 책임이 따른다. 입증은 증거 기록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장 전통적이며 대표적인 기록은 시청각 기록이다. 정상 혹은 등정 루트를 여러 각도에서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하여 등반가의 등반루트와 정상 완등을 입증한다.
두 번째 대표적인 방법은 구술 기록과 등반일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등반가 본인의 펜과 입을 통해 루트를 묘사하면, 이미 등정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진실 여부를 평가하게 된다. 더불어 함께 등반했던 셰르파나 다른 등반 팀들의 증언도 등반 및 등정 입증에 필요하다.
세 번째 방법은 물체기록을 통한다. 정상 혹은 등정 중 루트에 특정 물체를 남겨 놓음으로써 등반가의 족적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입증은 남겨 놓은 물건이 다른 등반 팀에 의해 발견되거나 회수될 때 완결된다. 마찬가지로 이전에 등정했던 다른 팀이 남겨 놓은 물건을 회수하고 공개함으로써 등반가 본인의 등정을 입증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주로 사용되는 방법은 데이터기록이다. 대표적으로 GPS 추적기를 예로 들 수 있다. 등반가의 움직임을 데이터로 기록하여 등반 루트와 등정을 입증할 수 있다.
고산 등반 중에는 레스트 스텝 (rest step)이라는 보행법을 사용한다. 한쪽 다리를 올려 딛은 다음, 뒤쪽 다리 축에 몸무게를 의지한 채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한 발 한 발을 디디고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른다. 공기통을 사용하더라도 부족한 산소로 인해 여러가지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한다. 극심한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환청과 환각을 경험한다. 일시적 기억상실을 겪지도 한다. 기록을 남기고 싶어도 남기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장갑을 벗었다가 장갑을 잃어버리고 사진과 손을 모두 잃기도 한다. 사진이나 영상이 잘 찍혔는지 확인하려 선글라스를 벗었다가 설맹이 와서 하산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상황에서 루트를 착각하기도 하고, 입증 기록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극단적으로는 죽음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최근 들어 정보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등반기록의 양상도 변하고 있다. 네팔 정부에서는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2024년부터 모든 등반객들이 GPS 추적 칩을 사용해야 한다 (https://edition.cnn.com/travel/nepal-mount-everest-climbers-tracking-chip/index.html). 이러한 정책은 산과 등반가 모두를 보호하는 정책의 일환이다. 등반 증거기록의 생산을 자동화하여 등반가가 증거기록을 남기는 일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 위험을 줄이고 등반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적어도 에베레스트에서는 증거사진 찍다가 동상에 걸리거나 설맹이 올 위험은 낮아진 것이다.
기록관리 부문에서도 기록의 생산과 관리가 점차 자동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만 등반 기록의 자동화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자동화되어 생산되는 기록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에 오른 등반가의 등정 목표지는 한 곳인데, 업무담당자의 업무 목표는 다양하며, 주로 늘어나기는 방향으로 변한다. 등반가들은 산을 잊지 못해 다시 산으로 간다는데, 업무담당자들은 업무를 잊기 위해 산에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나라 등산 인구가 그렇게 많고 또 늘어나고 있는 건가. 화장실 거울에서 피로에 지친 얼굴을 보며, 한 때 설산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등반했던 또 다른 자기를 바라보는 백일몽을 꾼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