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사진가 산투 모포켕(Santu Mofokeng, 1956-2020)은 1890년부터 1950년까지 생산된 타인의 사진을 수집하고 이를 재촬영해 작품 <Black Photo Album / Look at me : 1890-1950>으로 발표했다. 사진 속 인물 대부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동자들이었다.
모포켕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체제에서 국가가 관리하는 기관들, 가령 미술관과 도서관, 아카이브에서 보여주는 흑인 이미지와 자신의 경험 사이에 괴리가 있음을 깨닫는다. 소수의 백인으로 구성된 정부는 흑인을 부족 문화에 갇혀 있는 존재로 묘사하는 데 일조했고, 서양의 여러 국가는 아프리카 대륙을 물리적으로 식민지화하기 위해 여행기와 소설, 대중 매체로 선동하며 아프리카인을 왜곡했다. 교육 과정에서조차 흑인의 정체성은 배제되거나 삭제되었다. 그렇게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아무런 비판 없이 역사 속에서 소비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영향력을 인식한 모포켕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원시생활이나 부족 문화, 초원과 야생동물로만 형상화되는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의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다. 그렇게 작가는 흑인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현실 사이의 틈을 조금이라도 좁혀보려는 목적으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
모포켕이 여타의 사진가들처럼 대상을 직접 촬영하지 않고, 평범한 가족사진을 수집하면서 드러내고자 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첫째, 작품에서 무의식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는 것. 둘째, 사진 속 피사체들을 이미지로만 인식하지 않는 것. 셋째,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사진 속 피사체의 정보를 추적해 실존 인물로 증명하는 것.
작가는 수집 주체였기에 사진의 내용과 맥락을 파악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30여 년 전부터 1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거스르며, 작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이를 실현하고자 흑인 커뮤니티가 활발히 형성된 지역의 원로들에게 묻고, 종교 단체의 기록에 의지하며 정보를 수소문했다. 사진 뒷면에 남겨진 메모와 사진 촬영을 맡았던 스튜디오의 기록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진 조사로 사진 속 인물들의 이름과 생몰년도, 직업, 고향, 사망 이유 등을 밝혀냈다. 피사체가 두 명 이상일 경우에는 그들의 관계를 기재했고, 끝내 찾을 수 없는 경우엔 ‘unidentified’라고 표기했다. 추가로 사진을 촬영한 연도와 장소, 사진의 인화 방식도 기록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작가가 인물과 관련한 내용을 기록한 것뿐 아니라 해당 정보의 출처를 제공해 기록의 신뢰성을 높이고자 한 점이다.
수많은 작가가 인종으로 차별받는 폭력의 현장을 촬영해 잔혹함을 알리고자 했다. 이미지는 대상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매체이지만, 모포켕은 오히려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기록과 증거로 현실을 드러내려는 태도를 일관했다.
모포켕의 사례처럼, 미술계에서는 작가가 기록을 생산하거나 수집하여 이를 작품으로 발표하거나 아카이브의 구조나 방법론 등을 활용한 미술실천을 ‘아카이브 아트(Archival Art)’로 정의하고, 연구해 왔다. 미술계에서 아카이브에 접근하는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카이브는 모든 기록을 보존하지 않는 치우친 공간으로, 누군가에 의한 잘못된 평가와 폐기의 가능성을 지닌다. 애초에 기록되지 않은 대상들이 있기에 중립적이지 않고, 공백을 지닌 대상이며 치우친 역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론가들은 아카이브에서 발견할 수는 없지만 존재했을 법한 대상을 소재로 삼거나 이를 작가적 상상력으로 새롭게 구현한 작품들을 아카이브 아트로 평가해 왔다.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나 전쟁 희생자, 여성, 노동자, 평범한 사람들, 일상 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따라서 작품에서 다루는 내용은 실제로 일어났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 대항서사를 구축하려는 특성을 보인다. 이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의 아카이브 아트 연구는 아카이브를 신뢰하지 못하는, 반(反)아카이브적인 시각을 견지해왔다. 물론, 이런 경향들은 작가의 아카이브 충동으로서 아카이브 아트와 기록학에서의 아카이브 개념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구분해 사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아카이브를 강조한 것에 비해 학술적 용어로서의 함의와 고민은 추상적인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체계적인 과정의 축적 없이 단기간에 자리를 잡은 만큼, 전시 도록이나 작품집을 모아놓은 자료실을 아카이브로 여기거나, 출처와 맥락을 알 수 없는 종이 더미를 아카이브로 평가하는 등 오용의 아쉬움을 남겼다. 어느 순간부터 아카이브는 텍스트로 구성된 종이부터 역사자료, 사물을 수집한 컬렉션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모호한 의미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 원인으로 아카이브 전환을 주장하는 출판, 전시, 담론의 홍수 속에서 기록학의 관점과 해석의 배제도 지적할 수 있다.
당연히 미술작품은 작가의 주관을 표현한 자유로운 것이기에 기록의 특성이나 정보, 출처에 주목하거나 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주로 미술계에서 논의되는 아카이브 아트를 기록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모포켕과 같은 사례들 때문이다. 기록을 직접 생산하거나 활용하는 작가 중에는 원자료의 출처와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존중하고, 맥락을 반영하려는 시도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가들은 기록을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담긴 정보와 가치에 주목한다. 기록을 활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품들을 새로운 가치로 평가할 수 있다면, 창작과 해석의 영역도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아카이브 아트’에 관한 기록학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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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bEaN
확실히 미술계에서 아카이브란 말이 너무 자의적으로 사용되는 감이 있습니다. 중요한 문제제기를 해주신 거 같아요!
설리반
공감합니다. 처음부터 철학자들이 언급한 아카이브 개념을 수용했고, 그게 축적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rEdbEaN
사실 예술가들이 어떻게 아카이브 개념을 작품에 수용하느냐는 철저히 그들의 몫일 테고요, (심지어 일부러 "사라짐"의 미학을 추구하는 작가들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미술 비평가나 강단에서 아카이브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들 외에, 소위 미술 아카데미 내에서 아카이브 개념이 어떻게 소화되고 있는지도 같이 소개해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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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여행자
아카이브의 권위나 원칙을 비판하는 작품들을 주로 접했는데 모포켕처럼 기록에 집중하는 사례를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사례 또 소개해 주세요
설리반
감사합니다, 더 흥미로운 사례 많이 소개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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