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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진가

예술과 기록사이, 프로와 아마추어사이, 사진의 모호함이 불러오는 것들

2025.08.07 | 조회 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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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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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1. 사진미술관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전시되는 사진가(혹 작가)를 규정하나요? 

처음엔 간단한 질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쉽지 않다. 사진을 찍는다고 모두가 사진가는 아니다. 반대로, 사진가가 될 수 없다는 법도 없다. 이 경계는 흐리고,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다. 과거의 사진가들은 기술자에 가까웠다. 빛과 화학을 다뤘고, 장비는 무거웠으며, 현상은 기다림의 미학이었다.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온종일을 기다리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사진은 행위이자 노동이었다. 또 과거의 사진가들은 기록가에 가까웠다. 도시의 경관, 식민 지배의 당위성을 위한 환경조사 등. 지금은 다르다. 누구나 손에 스마트폰 하나쯤은 들고 있고, 고화질의 이미지를 몇 초 만에 만들어낸다. 클릭 한 번이면 수천 장의 사진이 저장되고, 필터와 편집으로 꾸며진다.

 

2.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은 누구나 사진가예요.

어떤 유명 사진가에게 사사를 받았고,  어떤 학교 교육원을 졸업했고, 함께 단체전을 몇 번 정도 해서 예술인 증명을 받아 '사진가가 되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누군가는 말한다. "저는 돈을 받고 사진을 찍습니다." 또 다른 이는 말한다. "나는 돈과 상관없이 사진을 찍습니다." 찍는다는 행위는 같다. 하지만 의도는 다르고, 결과 또한 다르다. 그것은 태도의 차이일 수도 있고, 책임감일 수도 있다. 끈기에 달린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오래 묻혀있다 뒤늦게 시간에 대한 이자로, 복리의 빛을 본 것일 수도 있다. 

 

3. 예술로서의 사진은 어디쯤에 존재할까

현재 사진이 미술관이란 공적인 장소로 들어오려면, '작품'이 되어야 하고 작품은 더우기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때는 가능했지만, 이제는 더이상 아름답게 지는 해를 찍은 일출 사진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술이 되기 위해선 (크거나 작은)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고, 관람자도 그것을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모호한 지점에서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에서 '작품'으로 전환된다. 그 사이엔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혹 시대반영적이거나. 하지만 누구도 적확하게 규정짓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도 그렇게 헷갈리나보다. 이게 작품인지 아닌지. 

 

4. 박물관인가요 미술관인가요 기록관인가요

며칠 전 모 공립 역사박물관에서 사람이 와서 이야기 한다. "저희도 이번에 OOO 사진가의 사진전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모 기록관에서도 사람이 와서 이야기 한다. "저희 OOO 사진가 유가족이 필름을 기증하신대요." 내가 늘 고민하는 것은 '미술관'이란 장소성이다. 그런데, 우린 언제부터 미술관과 박물관을 구분지어 불렀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이 구분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미술관에는 그림이 있고, 박물관에는 유물이 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외국의 ‘뮤지엄 Museum’을 방문하면서 ‘아트’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식어일 뿐, 법과 제도적으로는 모두 “뮤지엄”으로 통합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와 일본만 구분하려 할까.

여기엔 언어의 그림자가 있다. ‘미술관(美術館)’과 ‘박물관(博物館)’은 한자어다. ‘아름다움의 기술’을 다루는 곳과, ‘넓고 다양한 사물’을 보관하는 장소.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제도를 만든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 ‘뮤지엄’을 용도와 제도로 구분지어 나눴고, 우리는 그것을 일제강점기 동안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물론 중국처럼 언어만 다르고, 제도와 운영구조는 동일하게 갈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는 지금과 같다.

물론 미술관과 박물관의 구분은 하나의 제도일 뿐, 그것이 우리 감상의 방식까지 결정할 필요는 없다. 이름은 바뀔 수 있지만, 우리가 마주한 사물과 이미지가 일으키는 감정은 결국 그 이름 너머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박물관이냐 미술관, 기록원이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5. 작은 제도가 큰 차이

아, 차이 하나는 작품과 유물 관리 방법, 작품 숫자 산정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매우 작은 차이지만 공무원 조직에서 그 경계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늘상 하던 질문 가운데 비슷한 맥락의 질문이 있다. 사진은 '작품'인가, '자료'인가? 진짜 웃기지도 않지만, 현재 우리 미술관이 처한 상황 가운데 가장 난감한 것이 작품과 자료의 구분 기준이다. 물론 이건 감상과 거리가 먼, '보험가액'을 산정해야 하는, 업무효율적인 이유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관람객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관람객이 궁금한 것은, “이 전시가 재밌을까?”이고, “어떤 작가의 사진이 있을까?”지 이게 작품인지 자료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6. 사진은 매력적인 매체

문서나 회화와 달리, 사진은 그 자체로 기록이자 이미지다. 특히 사진은 유일하게 '작품이자 자료가 될 수 있는' 매체다. 한 장의 사진은 작가의 의도를 담은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고, 시대를 증언하는 역사적 사료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 놓이느냐다. 그리고 그 뒤에 필름이 있다. '작품이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본질은 어쩌면, 찍는 것보다 고르는 데에 있다. 필름 카메라를 떠올려보자. 필름을 넣고, 셔터를 누른 뒤 바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없다. 약품으로 현상하고, 인화하고, 건조하고, 그중 '작품화' 할 컷을 고른다. 수십 장 중 단 한 장. 찍는 행위는 가능성을 만든다. 그러나 선별은 그 가능성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디지털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찍는 것은 쉬워졌다. 그러나 고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어떤 이미지를 남기고, 어떤 이미지를 흘려보낼 것인가. 그것은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사진은 곧 선택의 과정이기도 하다.

 

7. 사진의 본질과 아카이브의 개념

모으고, 정리하고, 보존하는 일. 단순히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방식으로 저장하는 행위. 다시 찾기 위해 태그를 걸어두는 것. 그것이 아카이브다. 사진은 그 자체로 아카이빙을 요구하는 매체다. 왜냐하면 너무 많이 찍히고, 너무 쉽게 잊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타데이터가 중요해진다. 사진 한 장에 담긴 정보들, 예를 들면 촬영 시각, 장소, 인물, 상황 같은 것들. 이런 정보 없이는 사진은 기억으로 기능할 수 없다. 물론 사진은 기록이다. 하지만 '기록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구조와 맥락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이미지일 뿐이다. 한때 국가기록원 속 사진에서 메타데이터가 없는 이미지들을 찾아 헤매던 날들이 떠오른다. 

 

8. 다시 돌아와, '사진가'로서의 자세는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사진가는 (1)오랜 시간 (2)동시대와 마주하며 (3)나와 사회의 이야기를 (4)지속적으로 기록하되 (5)그 방식이 스스로의 스타일을 만들고 (6)밖으로 공유되어 (7)시대와 사람의 호응을 얻는 (8)연속된 행위를 (9)여러 번 해온 사람이다. 어떤 이미지를 남길 것인가, 어떤 것은 버릴 것인가. 무엇을 작품으로 삼고, 흘려보낼 것인가. 이 모든 선택이 결국 그 사람의 작업 세계를 구성한다.

그러니 사진가는 끊임없이 나와 사회에 대해, 방식에 대해, 인간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는 왜 이 장면을 찍었는가? 그리고 왜 이 장면을 선택했는가?". 사진은 예술이면서도 사회적 기억을 보존하는 장치라고 하는데, 그 장치는 평면의 사진일 수도 있지만, 조각의 형태를 띄거나, 글이나, AI의 데이터 값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9. 시대의 증거는 옛 말

한때 우리가 생산했던 수많은 이미지들은 시대의 증거가 되었지만, 이제 그 시대는 끝났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찍는 사진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지금의 사진가는 기록하는 사람의 역할보다 찍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 왜 찍을 것인가, 어디에 남길 것인가. 그 질문의 끝은 시대를 증거하는 것이 아닌 '나'를 증거해야 할 것이다. 

 

10. 연구사의 일

질문은 단순하지만, 고민은 무겁다. "미술관에서 전시 가능한 사진가이십니다." 라고 대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좋은 사진가를 발굴하고, 작품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을 수집하고, 동시대에 적절히 선보이는 업무는 결국 '사진가'의 자세에서 '사진가'를 '연구사'로 바꿔 말한 것과 동일하다. 어떤 업무의 과정은, 늘 자신의 기준을 세워가는 일이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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