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 공지사항

E.

누구나 알고 있지만

역시나, 기록의 힘은 쎘다.

2024.12.27 | 조회 665 |
0
|
from.
바람돌이
기록과 사회의 프로필 이미지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무명(無明) Oblivion 프로젝트, 오석근 작가

인천 LBDF(사진의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오석근 작가의 ‘무명(無明) Oblivion’ 전시에 다녀왔다. 오석근 작가는 지난 10년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식 가옥이 해방 이후 한국인에게 불하되면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탐구하는 ‘적산’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적산’프로젝트는 한국에 남아 있는 일제 침략 역사를 배경으로 층층이 쌓인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에 대한 한국인의 실질적 태도와 삶의 형태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2024년에 시작된 ‘무명’ 프로젝트는 일제 침략과 조선인 강제 동원 흔적 및 현재를 탐구하는 프로젝트다. 역사와 역사 사이의 틈새에 존재하는 것, 현 일본 사회의 구조와 기원, 기억 정치, 일본인의 실질적 태도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적산’을 통해서는 한국인을, ‘무명’을 통해서는 일본인의 삶의 형태와 태도를 파악함과 동시에 일제 침략과 조선인 강제 동원에 대한 사회적 현상, 행위, 태도, 문화가 쌓이는 풍경을 포착하여 흔적을 감각하기 어렵게 감추려는 영역을 담아낸다.

전시포스터, 출처: 오석근작가 페이스북 
전시포스터, 출처: 오석근작가 페이스북 

작가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석탄 생산량의 50정도를 생산했던 일본 최대 탄광촌 지쿠호 탄광 일대를 찾아가 탄광의 흔적과 풍경을 담아냈다. 어둠 속에 솟은 두 개의 광산, 수풀에 뒤덮인 채 자취를 숨기고 있는 듯한 노동자 숙소, 평범한 웅덩이처럼 보이지만 채굴이 중단된 채로 남은 곳에 물이 고인 모습, 현재는 창고로 쓰이고 있으나 당시엔 탄광 관리사무소였던 곳 등. 과거이면서도 현재의 것들이었다. 작가가 담아온 풍경을 보면서 역사는 글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직접 발을 디디고 그 의미를 다시금 되새길 때 더욱 더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강제동원과 노동의 현장이었던 곳에 누군가는 집을 짓고 살아간다는 것이 굉장히 기묘하게 느껴졌다. 집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참 의문에 빠져있을 때, 작가는 사진 속에 담긴 의미와 맥락들을 설명해주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와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흐름과 방향성을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록물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전해주었다.

지쿠호 탄광일대에서 촬영한 사진 (번호 1~4번까지) 
지쿠호 탄광일대에서 촬영한 사진 (번호 1~4번까지) 

작가가 소개해 준 인물과 기록물은 지쿠호 탄광일대를 중심으로 강제 동원 흔적을 추적하며 50여 년 동안 13만 건이 넘는 기록물을 수집, 생산, 기록해 온 재일 조선인 역사학자  김광렬 선생님과 관련 기록물. 그리고 1984년부터 1986년 사이 탄광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10권의 사진과 문헌 모음집을 만든 우에노 에이신과 재일 사진작가 조근재 선생님이다.

김광렬, <강제동원, 김광렬 기록으로 말하다 기억해야 할 사람들>

먼저 김광렬 선생님의 기록물은 일본의 역사 왜곡과 강제 동원 진상규명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광복 75주년을 맞이한 해인 2020, 국가기록원에서 선생님의 기록 일부를 묶어 <강제 동원, 김광렬 기록으로 말하다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행안부 국가기록원 강제동원 사진기록집 웹사이트 메인 페이지
행안부 국가기록원 강제동원 사진기록집 웹사이트 메인 페이지

이 책이 전시장에 비치되어 있었는데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구구절절 긴 말 할 필요도 없이 대단하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개인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고, 자세하게, 꼼꼼히 현장 조사를 하면서 기록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책에는 기증된 기록물 중 일부만 실려 있는데도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평소 입버릇처럼 기록의 힘은 세다.’라고 말하곤 했었는데, 정말로 힘이 센 기록을 만났다. 실물을 보면 좀 더 강한 힘과 무게감이 전해질 것 같았다. 더 나아가  김광렬 선생님은 도대체 어떠한 사람이었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故 김광렬 선생님이 국가기록원에 기증한 기록물은 2306138,579매의 문서, 500여 개의 녹음, 동영상 기록, 1200여 철 45천여 매에 이르는 사진과 도면이다. 50여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 부은 것인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강제동원, 김광렬 기록으로 말하다 기억해야 할 사람들>
<강제동원, 김광렬 기록으로 말하다 기억해야 할 사람들>

기록의 양도 어마어마하지만, 기록의 방법이나 매체도 다양하고, 현장 조사를 위해 방문한 장소만 수백 곳이었다. 300개의 사찰과 45개의 탄광산을 방문했고, 같은 장소를 여러 차례 방문한 것도 확인되었다. 이렇게, 한 개인의 집요하고도 체계적 기록은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20181113일 경남 MBC NEWS<역사 채널_끌려간 사람들 지쿠호 50년의 기록>에서는 군함도 이야기를 시작으로 조선인들의 강제 동원의 현장을 추적하는 장면들이 보도되었다. 지쿠호탄광을 비롯하여 인근에 있는 여러 개의 탄광을 둘러보고, 조선인의 강제동원역사를 추적하는 재일조선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이 때  김광렬 선생님이 국가기록원에 기증한 기록물도 등장한다. 故 김광렬 선생님이 당시 지쿠호 탄광일대를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 기록했으며 기록물은 어떤 방식을 통해 수집, 생산했는지 상세하게 나온다.

2018년 11월 13일 경남 MBC NEWS의 <역사 채널_끌려간 사람들 지쿠호 50년의 기록> 방송영상
2018년 11월 13일 경남 MBC NEWS의 <역사 채널_끌려간 사람들 지쿠호 50년의 기록> 방송영상

写真万葉録筑豊(사진만요록·지쿠호), 우에노 에이신(上野英信), 조근재

 김광렬 선생님의 기록물에 비해 정보가 많이 없는 写真万葉録筑豊(사진만요록·지쿠호)’는 지쿠호 탄광 노동자들이 겪은 가난, 착취, 투쟁, 폐광 이후의 삶을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총 10권으로 구성된 책이다. 전시장에 비치된 책은 1권 인간의 산과 9권 아리랑고개였다. 1인간의 산은 거대한 광산의 존재감을 통해 혹독한 노동에 대하여, 9아리랑 고개는 조선인 탄광 노동자와 강제동원자들의 혹독한 노동과 착취 그리고 삶에 대해서 다루었다. 1권에는 과거의 광산 모습이 찍혀 있었는데,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규모였을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당시 광산의 모습과 대비하여 현재 광산의 모습도 오석근 작가의 작품 속에 담겼고, 비교해서 볼 수 있었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거대하게 남아 있는 광산을 보면서 시점은 다르지만 같은 풍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궁금해졌다. 9권에서는 지하탄광이 아닌 노천탄광에서 작업해야 했던 조선인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있었다. 노천 탄광은 지표면에 노출되어 있어 지하탄광보다 더 단단하므로 힘을 더 세게 주고 일을 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일본인보다 체격이 더 큰 조선인을 데려와 일을 시켰다고 한다. 뜨거운 여름, 강한 햇빛과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했던 조선인들의 고단한 삶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写真万葉録・筑豊(사진만요록·지쿠호),  1권 인간의 산과  9권 아리랑고개 
 写真万葉録・筑豊(사진만요록·지쿠호),  1권 인간의 산과  9권 아리랑고개 

이 모든 것을 기록을 했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 들었으면 또 달랐겠지만 남겨진 기록을 통해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가혹한 노동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와 배고픔과 억압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이 안타까워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만약, 이들의 기록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면,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심도 있게 들여다 볼 수 있었을까? 각고의 노력과 시간을 쏟고,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을 남겨준 그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 이전 세대의 일로만 여기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역사와 역사 사이의 틈새에 존재하는 감춰진 무언가를 들춰세상에 드러내는 오석근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본다. 동시에 나는 어떤 기록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전시를 보러 온 관객에게 설명 중인 오석근 작가 
전시를 보러 온 관객에게 설명 중인 오석근 작가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기록과 사회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5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메일리 로고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