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가 이제 하나의 문화라면 그 문화를 소개해주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아 그게 뭘까 생각해보다 아카이브를 다룬 잡지를 떠올렸다. 한때 국가기록원에서 발행했던 『기록인(IN)』은 2018년 겨울, 통권 45호를 끝으로 더이상 만나볼 수 없게 되면서 이렇다 할 대표적인 아카이브 전문잡지는 과연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막상 공공이든 민간이든, 아카이브이거나 아카이브를 지향하는 기관이든, 기관지이든 브랜드북이든 상관없이 아카이브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아카이브 매거진을 찾아보았지만 의외로 찾기 어렵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https://www.koreafilm.or.kr)를 보다가 『아카이브 프리즘』이라는 기관지를 보게 되면서 이거다 싶었다.
빛을 굴절하고 분산해 색색의 광선을 만들어내는 프리즘처럼, 『아카이브 프리즘』은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수많은 자료를 통해 다채로운 영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보석같은 아카이브 잡지이다. 2020년 6월, 첫 발행을 시작으로 『아카이브 프리즘』은 지금 현재 16권(창간준비호 포함)을 발행한 계간지이자 대중지로 마치 영화잡지처럼 디자인도 세련되어 있고, 내용도 익숙한 영화를 다루다보니 왠지 친숙하고 재미가 있다. 지금까지 발행한 『아카이브 프리즘』 에서 다룬 주제는 아래와 같다.
그 간의 『아카이브 프리즘』 목록
# 창간준비호
#1. 전단의 시대-90년대 영화전단의 안과 밖 (2020년 여름)
#2. <하녀> 개봉 60주년 특별호 - 다시 <하녀> (2020년 가을)
#3. 옷의 뜻 - 영화의 의상, 의상의 영화 (2020년 겨울)
#4. 인터뷰 이슈 (2021년 봄)
#5. 리뷰 한국영화 2000-2020 (2021년 여름)
#6. 이런 책을 읽어왔다 - 1980년 이후의 영화도서 (2021년 가을)
#7. 필름 아카이브 투데이 (2021년 겨울)
#8. 필모그래피-윤여정 (2022년 봄)
#9. 리와인드 - 비디오 시대의 어휘들 (2022년 여름)
#10. 포스터 이슈-2000년 이후 한국영화 포스터 (2022년 가을)
#11. 필름 아카이브 투데이 Vol.2 (2022년 겨울)
#12. 대사극장 - 한국영화를 만든 대사 100 (2023년 봄)
#13. 한국영화의 장소들 (2023년 여름)
#14. 한국영화의 가요들 (2023년 가을)
#15. 필름 아카이브 투데이 Vol. 3 (2023년 겨울)
이 중에서 특색 있는 몇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 소개글은 각 권 인트로의 글과 홈페이지 홍보 문구를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4. 인터뷰 이슈
1960년대 이후 충무로를 대표하는 영화인 7명(배우 김지미,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촬영감독 정일성, 감독 이장호, 감독 최하원,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 감독 김수용)의 영화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그때 그시절 당대 영화인이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과 투쟁, 어처구니없는 실패담과 그 안에서 꽃피운 위대한 순간까지 한국영화사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수록된 7개 인터뷰는 한국영상자료원이 2004년부터 시작한 '원로영화인 구술채록사업'의 결과물 중 일부를 재구성한 버전으로, 인터뷰 전체가 담긴 채록 원본을 재료로 삼아 마치 영화 편집에 견줄 만큼 '선택과 강조' 과정을 거쳐 높은 밀도의 내러티브를 담았다. 인터뷰이가 전하고 싶었던 주요 내용을 편의적으로 축소하지 않고 충분히 그러나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편집하였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당대를 통과해 온 인물들의 복잡미묘한 인맥을 매핑해 볼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매력이다.
#7, #11, #15. 필름 아카이브 투데이
일 년에 네 번 발행되는 〈아카이브 프리즘〉은 매해 겨울 ‘필름 아카이브 투데이’라는 서브 타이틀 아래 세계 여러 필름 아카이브의 동시대적 의제를 다루어 왔다.
2021년 겨울 발행된 첫 번째 에디션(#7)은 필름 아카이브의 역할과 디지털 전환의 여파, 팬데믹 이후 변화된 영화 소비 트렌드에 따른 대응 등 시대적인 변화 앞에서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는지 물었다면, 두 번째 에디션(#11)은 영화사의 공유 유산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인 ‘복원’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의 각 필름 아카이브가 영화 문화를 보존하고 새롭게 순환시키기 위해 어떤 전략과 원칙을 세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필름 아카이브 투데이’ 세 번째 에디션(#15)은 필름아카이브의 기능 중 하나인 순환의 영역을 고민한다. 필름 아카이브는 영화를 유물로서가 아닌 지금의 시대와 함께 호흡하게 하고 새로운 영화 역사를 써 내려가는 구심점으로 필름아카이브의 큐레이팅과 프로그램 작업을 소개한다.
#9. 리와인드 - 비디오 시대의 어휘들
비디오시대, 즉 VHS(VIDEO HOME SYSTEM)와 관련된 어휘가 망라되어있다. 타이틀(거짓말, 공각기동대 등), 비디오숍(검정봉지, 대여료 등), 하드웨어(공테이프, 녹화 등), 출시사(드림박스, 명화비디오클립 등), 인물(김기영, 레너드 말틴 등), 기타(건전비디오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노동자뉴스제작단 등) 등 비디오숍에 드나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숙했던 생활 속 비디오 어휘라고 보면 된다.
200여 개에 달하는 비디오 관련 어휘를 ‘가.나.다...’순으로 뽑아, VHS의 기술적인 부분, VHS 출시작, 당시 비디오 대여문화 등을 다채롭게 조망한 사전이라는 열린 형식을 빌렸다. 잡지의 중간중간에는 흥미로운 인터뷰와 피처를 삽입해서 한국영상자료원의 VHS 보존고 현황, 비디오시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비디오 칼럼니스트’의 이야기, VHS를 다룬 영화들을 보다 깊이 있게 다뤘다.
#12. 대사극장 - 한국영화를 만든 대사 100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달콤한 인생 2005)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타짜 2006)
한국영화를 대표할만한 100개의 대사를 수록하였다. 시대순으로 정렬한 100갱의 대사는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관객 대중의 뇌리에 선연히 파고들어 대중문화에 각인된 '영화의 말'이다고 한다. 인트로에서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대사에서조차 영화와 사회의 문맥에서 그 함의를 찾아낼 수 있고, 그것이 영화를 재발견하거나 보는 시각을 풍부히 해줄거라 밝혔다.
그리고 페이지 중간중간에 '영화보다 큰 - 대사로 남은 걸작들', '욕설의 미학-주의! 부적절한 표현 있음' 같은 에세이와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 사서의 '대사는 시나리오다' 인터뷰, 실물 시나리오를 소개글과 대사들을 만든 전문가의 명단은 빠뜨릴 수 없는 덤이다.
이 『아카이브 프리즘』 전문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고화질 파일을 원하시는 경우, 1:1문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왕 본 김에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사이트(https://www.kmdb.or.kr)도 둘러보기 바란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 아카이브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는 사이트이다.
다음 호는 사단법인 경북기록문화연구원의 『기록창고』를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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