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민원인은 내부 직원
우리 기관에는 소위 ‘민간기록’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매일 같이 들여다보는 엑셀 기록물 목록에는 온통 딱딱하고 건조한 공공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눈을 돌리면 시스템으로 들어온 기록물 열람 신청과 정보공개청구, 전자문서 배부기능이 날 반긴다. 하…
우리 기관에서 내 업무분장명은 “기록물관리 총괄” 라는 단 2마디로 설명된다. 그래서 58개 처리과에서 들어오는 기록물 관련 질의는 모두 나에게 온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전날 저녁까지 들어온 기록물 열람신청 내역이고, 09시~18시까지 주로 받는 전화는 ‘기록물 열람승인 요청’, ‘기록물 보존기간 확인’. ‘기록물 검색 지원’ 등등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민원인(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기록관리시스템에서 예전 기록물을 찾아야 하는데 잘 안나온다는 말이었다.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파편적인 키워드/정보만을 가지고 방대한 양의 전자문서를 찾는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난 무조건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련 기록물을 찾아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기록물을 찾지 못하면 나에 대한 민원서비스 만족도 점수는 떨어진다…
작년 입사 2개월차에 느낀 점은 ‘그들의 서비스 만족도가 나의 기록관리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약 1,300여명의 전체 직원 중 나에게 문의를 주는 직원은 극히 일부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입소문을 통해 내가 ‘검색 맛집(?)’으로 알려졌을 때, 이후 나의 협조요청에 있어서 그들의 지원은 보다 적극적이게 바뀌기 때문이다.
기록관리는 숙제가 아니에요… 도와드리려고 그러는거에요…
기록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우리에게 생산현황 통보, 평가심의 관련 의견조회 등 여러 법정 업무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일반 직원들도 같은 생각을 할까? 짧다면 짧은 근무경력을 가진 내가 보기에도, 그들에게 있어서 기록관리 업무는 귀찮고 힘들고 어려운 숙제(일거리)로 보일 것이다. 생산현황 통보, 평가심의 의견조회 등 업무를 통한 협조요청은 평상시 내 민원인에게 역으로 민원을 넣는 행위와 같다.
"제가 뭐라고 OO님을 괴롭히려고 하겠어요... 전 그냥 업무 하시는거 도와드리려고 그러는 거에요... 제가 서식N부터 서식NN까지는 다 할게요! OO님 부서에서는 서식N에서 이것만 해주시면 됩니다!"
"OO님이 취합해서 보내주시면 전 몇달동안 전 부서의 목록을 다 봐야 해요... 도와주세요..."
"지금 ■■■■ 때문에 바쁜거 알아요... 그래도 언제까지만 좀 공문으로 보내주세요...."2025년(2024년 생산분) 기록물 생산현황 통보 자료 수합 中
가끔 사업부서의 몇몇 직원이 “이거(생산현황 통보) 왜 해야해요?”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이전의 기관에서 근무할 때였다면 아마 단순하게 공공기록물법에 나와있는 업무라고 만! 말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직접적으로 공공기록물법을 언급하지 않는다. ‘법률’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더욱 반감을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 안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몇 년 뒤 연말에 폐기할 거 정리하는 거에요. 그리고 나중에 갑자기 소송 걸렸을 때 빨리 찾아서 도와드릴 수 있게 미리 준비하는거에요. 뭣보다 사실 상급기관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거에요” 라고 말한다.
의외의 곳에서 터지는 도움 그리고 전임자 선생님의 은혜
아직 우리 기관에는 기록관으로 이관되지 못한 기록물이 많이 있다. 그래서 최대한 가능한 만큼의 양을 이관받아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고, ‘유휴공간 활용 계획 제출’과 같은 공문이 내려올 때엔 매번 기록관 서고 공간을 요청하고 있었다. 기관장 직인을 우리 부서에서 관리하고 있어서 때로는 관련 부서 직원이 올 때마다 유휴 부지/공간이 있는지 물어보곤 했다.
“감자씨, 기록관 공간 필요하다고 OO씨(전임자)가 있을 때부터 들었는데 얼마나 필요하세요?”
"계산해봤을 때 OOO㎡는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적어도 좋습니다! 지금 보다 넓기만 하면 됩니다"기록관 서고 공간 확보의 첫 연락(대화)
해당 직원은 약 15년간 근무하신 전임자 선생님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고, 내 단골 민원인이기도 했다. 알고보니 전임자 선생님과 함께 계속 기록관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해오던 분이었고, 마침 부사장님으로부터 숙제가 내려왔던 상황이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바로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층수에 상관없이, 면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원칙으로 서고 공간을 확보하였다. 그 덕에 당시 2층 콘크리트 공사까지만 진행된 11층 건물 중 9층 전체(약 100평의 작은 공간)를 기록관 서고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지금은 모든 마감공사가 진행 중이고 내년 상반기 준공 예정입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사실 처음 우리 기관에 들어왔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전임자 선생님이 너무 훌륭하신 분이야. 너도 그만큼 잘 해야 해!” 였다. 그래서 작년 한 해 동안에는 다소 부담이 되었다. 뭔가 나 하나의 잘못된 말이나 행동으로 전임자 선생님을 욕보이게 할까 무서웠다. 그래서 최대한 직원들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노력했다. 기록물 하나 찾아달라는 전화만 울리면 그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직원의 민원을 해결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오늘이 되었을 때, 전부서에 기록관리 관련 업무협조를 요청하면 작년과 달리 다들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곤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기록관 업무는 이 기관에서 처음 수행해본다. 그래서 말로만 들어본 1인 기록관 업무를 약 1년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매순간 느끼는 단 한가지는 정말 많은 1인 기록관 종사자 선생님들의 고충/어려움이다. 종종 개인적인 연락으로 기록관리 업무 진행과 관련한 문의가 들어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름 최대한 도와드리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 개인적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혹시나 저를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제가 받은 만큼 저도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우린 깐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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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기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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