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
환경이 본질을 바꾼다는 뜻을 가진 중국 춘추시대 고사성어로 '귤화위지(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가 있습니다.
1999년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 제정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기록관리 선진국의 기록관을 옮겨 심은 한국의 기록관은 귤일까요? 탱자일까요?
한국의 기록관은 ‘귤이다.’ 또는 ‘아니다 탱자다.’ 라고 단정 지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귤이 귤답기 위해 환경이 중요하듯, 기록관이 기록관답기 위해서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거시적으로는 기록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가 환경(풍토)에 가깝지만, 미시적으로 기초지자체 기록전문가가 기록관에서 기록관리를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의 측면으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침묵의 기록관
회사에서 기록관의 인식이 어떠한가요?
필자가 재직 중인 회사는 기록관이 1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직원들에게 ‘기록관 = 문서고’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기록관이 지하에 있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중사회에 기록관의 인식이 어떠한가요?
기록학계와 많은 전문가들이 ‘기록관은 도서관, 박물관과 함께 대표적인 3대 문화시설이다’라고 이야기 하지만 대중적으로 인정 받고 있을까요?
기록물은 다양하고 적극적인 서비스 제공을 통해 활용 되어야 보존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과거의 수동적으로 열람 방식의 기록관은 침묵의 기록관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공간이었습니다.기초지자체는 여전히 과거의 기록관 상태로 정체되어 있습니다. 대다수의 기록관이 시·군·구청사 안에 위치하고, 기록관이 사무실, 작업실, 서고 등으로 형성되지 않고 서고만 있는 경우도 많이 존재합니다. 대민서비스는 엄두도 못내는 기록관이 많습니다.
물론 대민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록관도 있습니다.
- 기록관 단독청사는 아니지만, 행정박물 전시실을 운영하는 기록관
- 라키비움을 구축한 증평기록관
-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인 청주기록원
- 민간기록 서비스를 위한 단독청사를 갖춘 전주시민기록관, 남원시 근현대기록관 '남원다움', 익산시민역사기록관
- 장소를 빌려서 기록물을 전시 하거나 편찬사업을 지속하는 기록관
기록관의 침묵을 깬 사례가 아직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이 현실입니다.
공급자 관점에서 수요자 관점으로
영구기록물관리기관에 방문하여 열람을 하는 시민이 많지 않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열람하는 기록물의 범위도 토지관련 등으로 한정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합니다. ‘기록물 보관해도, 열람실 지어나도, 사람들 안 본다.’
기록물은 전시도 쉽지 않습니다. 기록을 세월이 반영된 내재적 가치를 감상하는 것으로만 전시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그 내용을 직접 읽도록 전시를 한다면, 관람객의 흥미를 끌기 어려운 한계도 있습니다.
시민들은 무엇을 원할까요?
기록관의 기록물과 도서관의 책 모두 문자정보인데, 도서관을 많이 찾는 이유는 다양한 주제의 수많은 장서 속에서 시민들이 원하는 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기록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보공개청구 중 문서 청구 외에 정보의 조합이 필요한 청구, 질의가 포함된 청구 등이 증가한 것은 분명 하지만, 정보공개청구의 증가는 기록정보에 관심이 있는 시민이 많다는 증명입니다.
정보공개청구와 달리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의 열람이 적은 이유는 기록물 생산 후 10년이 지난 ‘비현용’기록이고, 이러한 기록은 시민들도 관심이 없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기록관은 2년 이내(전자기록은 1년 이내) 이관하기 때문에 기록관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열람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열람을 활성화 시킬 수 있습니다.
기록물 전시는 왜 어려울까요?
근래 큰 논란이 생긴 ‘문해력’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기록물에 기재된 정보를 읽는 것은 고도의 노동과 같습니다. 박물관에서 대부분의 관람객이 고문서 전시를 보면서 한문을 해독하며 관람하지 않듯, 그 기록물이 관람객에게 관심있는 분야가 아니라면 기록물에 기재된 내용을 읽으면서 관람하는 것은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관람객이 관심이 많은 주제로 전시를 하거나, 관람객 누구나 쉽고 직관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기록관의 전시도 행정박물, 시청각기록물를 중심으로 대상 기록의 맥락 속에서 관련된 문서를 전시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기초지자체는 정체성을 살려서 지역 주민의 역사를 전시하는 것이 효과적 입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는 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이 부분은 별도로 글을 발행할 예정으로, 약술하면 기록관리 선진국 사례를 보면 지자체에는 아카이브를 설치하고, 상급기관으로 이관하지 않고, 지역의 기록을 관리하고, 향토사 연구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남원시근현대기록관인 ‘남원다움’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관광객을 포함하여 연간 수 만명이 방문하는 기록관 전시의 모범 사례입니다.
도서관에서도, 박물관에서도, 문화원에서도 지역을 아카이빙하고 활용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한다는 것이 민간기록이 가진 잠재력에 대한 증명입니다.
기록복지를 실현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기초지자체는 주민들에게 다양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행정서비스 중 많은 부분을 ‘복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록관이 침묵을 깨고 수요자를 위한 서비스를 한다면 이것은 지역의 기록문화를 진흥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주민들이 받게 되는 기억과 기록의 열람·전시·교육·문화의 혜택을 ‘기록복지’라고 부르겠습니다. 이러한 기록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간이 필요 합니다. 기록관이 꼭 단독청사이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기록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 구성이 중요합니다.
3대 문화시설이 항상 단독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NARA)은 워싱턴D.C.에 국립기록관박물관을 운영합니다.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는 파리에 국립기록관박물관을 운영합니다.
기록관에서 박물관을 운영하듯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는 기록관와 도서관를 운영합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2층에 도서관이 있고,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를 분관에 설치하였습니다. 국내 도서관은 제4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2024~2028)에 따라 적극적으로 지역아카이빙과 전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록관, 박물관, 도서관은 필요에 따라 주 기관을 중심으로 필요한 기관을 설치한 다양한 사례가 있습니다.
한때 라키비움이 유행하였지만 대중적, 행정적으로는 복합문화공간(센터)이 더욱 친숙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대표적인 복합문화공간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도서관, 박물관, 기록관, 영화관, 극장, 공원(쉼터) 등의 기능이 있습니다.
현재 건립된 기록관 중 복합문화시설로 서울기록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기록열람, 시민기록교육, 전시, 기록테마도서 열람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록문화를 서비스 하고 있습니다.
기초지차체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나 서울기록원와 같은 규모로의 기록관 건립은 어렵습니다. 다만 기록관을 건립하면서 이처럼 기록문화를 서비스할 수 있는 공간을 설치하여 기록복지 실현의 기반을 마련 하여야 합니다.
- 기록물 열람실
- 기록테마도서 열람실
- 기록물 전시실
- 시청각기록물 영상 상영관
- 기록교육실(기록관리 직무교육, 기록관련 평생교육)
- 회의실(기록관련 행사)
- 기록공동체 활동실(기록 공동체 모임공간 대여)
- 기록쉼터(누구나 방문하여 쉬다 갈 수 있으며 기록콘텐츠가 조성된 공간)
마지막으로 누구나 방문하기 용이한 접근성이 좋은 장소로 입지를 선정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기록에 관심이 없어도, 별마당 도서관처럼 잠시 쉬어가는 공간, 만남의 공간으로 기록관이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면 더 많은 이용자와 함께하는 기록관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합니다.
오늘은 기록관이 탱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떠한 환경을 구축해야 할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지방기록관리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앞선 시리즈 소개
기초지자체 기록관 시리즈(1)
주민의 곁에 있는 기초지자체를 재조명하다. (2024. 5. 20.)
https://maily.so/archivenews/posts/ab5a246f
기초지자체 기록관 시리즈(2)
기초지자체 뜯어보기(2024. 7. 24.)
https://maily.so/archivenews/posts/f82f4e21
기초지자체 기록관 시리즈(3)
안녕하세요.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입니다.(2024.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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