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한 만화가가 〈자동 냅킨(Self-Operating Napkin)〉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버츠 교수가 수프 한 술을 뜨면 그 동작이 끈을 당기고, 당겨진 국자가 크래커를 던지고, 앵무새가 뛰어오르고, 씨앗이 쏟아지고, 라이터에 불이 붙고, 로켓이 발사되고, 끈이 끊기고, 마침내 냅킨 달린 진자가 좌우 운동을 하며 그의 턱을 닦는다. 목표는 단 하나. 입가를 닦는 것. 손으로 한 번 훔치면 끝날 일이다. 결과는 사소하고 과정은 비대하다.

이 난리의 이름이 루브 골드버그 장치(Rube Goldberg Machine)다. 루브 골드버그(1883–1970)는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만화가이고 그의 이름은 사전에 형용사처럼 등재되었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루브 골드버그를 이렇게 정의했다.
겉보기에 단순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복잡한 수단으로 수행하는 것
골드버그 장치는 대개 일상의 사소한 과제를 수행한다. 불 켜기, 사진 찍기, 연필 깎기, 우산 펴기 같은 일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 사소함은 오늘날 대회 형식으로도 이어진다. 1987년부터 미국에서는 루브 골드버그 머신을 만드는 전국 대회가 열린다. 이 루브 골드버그 머신 콘테스트(RGMC)의 역대 과제도 그렇다. 1989년엔 연필 깎기, 1995년엔 라디오 켜기, 2016년엔 우산 펴기, 2020년엔 전등 끄기, 2022년엔 책 펴기가 과제였다. 과제가 사소할수록 장치는 과장된다. 이 대회는 문제 해결만 겨루지 않는다. 굳이 돌아가는 능력을 겨룬다.

굳이 돌아가는 장치
골드버그 장치를 ‘쓸데없이 복잡한 장치’라고만 하면 아쉽다. 그것은 쓸데없이 복잡하면서 동시에 쓸데없음의 쓸모를 보여주는 장치다. 스위치가 눌리는 일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눌리기까지 무슨 과정이 발생했는가다.
골드버그는 기계를 잘 만들고 싶어서 혹은 발명이나 설계를 위해 이 그림들을 그린 게 아니었다. 공학을 전공하고 시정부 상하수도국에서 일한 이력도 있지만 그가 만든 것은 실용적 기계가 아니라 기계적 합리성의 풍자였다. 인간 노동에 의존하던 세계에서 기계의 세계로 전환되고 있던 당시 사회적 맥락은 이러한 장치가 만들어진 배경이자, 그것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장치와 절차를 불러들이는 현실에 대한 농담으로 읽히는 이유가 된다.
그는 평생 장치를 그렸을 뿐 실제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만화적 장치들은 이후 전시와 대회, 광고와 교육 프로그램 안에서 실제 움직이는 기계로 옮겨졌다. 1970년 스미스소니언의 전시 Do It the Hard Way: Rube Goldberg and Modern Times는 골드버그의 만화와 조각, 애니메이션 영화뿐 아니라 단순한 기능을 우스꽝스럽고 비효율적인 연쇄 사건으로 수행하는 기계들을 함께 선보였다.

그는 자신의 장치를 “점진적 무(無)에 대한 풍자적 재현”이라 불렀다. 무의미하되, 아무 의미도 없지는 않은 농담. 효율이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또 다른 복잡성을 낳는지, 작은 일 하나를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거대한 우회를 감수하는지에 대한 농담. 골드버그 장치의 굳이는 그 과정을 일부러 늦추고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비효율이 보일 때
골드버그 장치가 매력적인 건 비효율적이어서가 아니다. 비효율은 사실 대체로 매력이 없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매력적인 건 비효율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시작했고 어디서 멈췄고 무엇이 다음을 만들었는지 눈으로 따라갈 수 있다. 과장됐지만 감춰지진 않았다. 실패해도 어디서 실패했는지 안다. 구슬이 안 굴렀거나, 컵이 안 넘어졌거나 중간에 뭐 어찌저찌해서 마지막 버튼이 안 눌렸을 것이다.
혼다의 2003년 광고 〈Cog〉가 이걸 잘 보여준다. 분해된 Honda Accord 부품들이 차례로 움직이며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지는 120초짜리 연쇄반응이다. 이 광고는 2003년 4월 10일 동안 단 10회 방영되었지만 이후 가장 영향력 있고 많은 상을 받은 TV 광고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는 “그냥 잘 작동한다”는 말이 얼마나 많은 설계와 조정 위에서 성립하는지를 보여 준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Cog〉의 연쇄반응은 작동이 매끄러워질수록 그 뒤의 과정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다시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보이게 만든다.
잘 작동한다는 말은 대개 작동의 과정을 지운다. 검색창에 단어를 넣으면 결과가 나오고 버튼을 누르면 열람 신청이 된다. 그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조정과 설계와 판단이 있다. 좋은 시스템은 이용자를 덜 고생시켜야 한다지만 그렇다고 자기 판단의 경로까지 통째로 지워도 되는 건 아니다. 작동은 보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설명까지 사라지면 곤란하다. 이 지점에서 골드버그 장치는 이상한 모범이 된다. 빠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지만 적어도 작동을 보여준다.
기록관리의 "굳이"
기록관리에도 굳이가 있다. 다만 그것은 특정한 서식이나 절차 몇 가지로 환원되기 어렵다. 기록을 기록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용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맥락에서 생산되었는지, 어떤 관계 속에서 남았는지, 어떤 조건에서 접근될 수 있는지, 훗날 어떤 방식으로 다시 읽힐 수 있는지가 함께 남아야 한다. 기록관리의 굳이는 바로 이 부가적인 정보와 판단의 경로를 남기는 데 있다.
바깥에서 보면 이 과정은 느리고 답답해 보일 수 있다. 물론 안에서 보아도 늘 아름답진 않다. 다만 여기서 던질 질문은 ‘왜 이렇게 귀찮은가’가 아니다. ‘이 귀찮음은 무엇을 남기는가’다. 기록관리의 굳이는 효율의 반대말이 아니다. 효율의 시간표를 바꾸는 일에 가깝다. 지금 빠르게 처리하는 효율이 아니라 나중에 덜 찾고 덜 의심하고 덜 해명하기 위한 효율이다. 지금 느리게 맥락을 남긴 기록은 나중에 더 빨리 찾아지고 더 정확히 읽힌다. 지금 빠르게 지나친 기록은 훗날 가장 느린 기록이 된다. 찾을 수 없고, 믿기 어렵고, 해명할 게 많아지니까.
텍사스 주립도서관·기록위원회(TSLAC) 블로그의 글 「Rube Goldberg Reports and Investigations」가 이걸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 글은 지방정부 기록 분류가 골드버그 장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며 회의 통지를 작고 가벼운 구슬에, 처분지침 항목을 깔때기와 양동이에 비유한다.같은 서신이라도 일상적 내용인지, 운영 문서인지, 정책을 재정의하는 행정 기록인지에 따라 다른 경사를 타고 굴러간다. 사건 보고서는 그대로 끝날 수도, 범죄 수사 기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분류는 표 안의 번호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기록이 어떤 맥락의 경사를 타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이 비유가 좋은 건 기록관리의 복잡함을 조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판단의 경로를 보이게 만든다. 기록은 늘 하나의 분류 기호에 깔끔히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기록은 성격이 바뀐다. 어떤 사건은 보고서로 끝나지 않고 수사가 된다. 그러니 분류의 굳이는 기록을 괴롭히는 절차가 아니라 기록이 어떤 의미의 경로로 이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굳이의 조건
물론 모든 굳이가 정당한 건 아니다.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서식, 같은 내용을 반복 입력하게 만드는 시스템, 기록의 신뢰와 무관하게 제 몸집만 불리는 보고. 이런 건 유예된 효율이 아니라 그냥 지연에 가깝다. 앞서 레드 테이프가 문서를 묶는 붉은 끈에서 관료제의 폐해를 가리키는 말로 옮겨 갔듯이, 골드버그 장치 역시 때로는 불필요하게 복잡한 절차와 시스템을 비꼬는 말로 쓰인다. 그러므로 기록관리의 문제는 굳이가 있다는 데 있지 않다. 그 굳이가 훗날 어떤 설명 가능성을 남기느냐에 있다.
기록관리의 목표는 모든 굳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굳이와 불필요한 굳이를 구분하는 것이다. 필요한 굳이는 나중에 기록의 경로를 설명한다. 불필요한 굳이는 지금도 피곤하고 나중에도 쓸모없다. 필요한 굳이는 미래의 효율을 만든다. 불필요한 굳이는 현재의 비효율을 미래로 연장한다. 필요한 굳이는 기록의 신뢰를 만든다. 불필요한 굳이는 절차의 생존만 보장한다. 그러니 남기는 굳이는 반드시 설명되어야 한다. 굳이 분류한다면 왜 분류하는지, 굳이 보존기간을 판단한다면 그 기준이, 굳이 공개 여부를 검토한다면 제한과 공개의 이유가 남아야 한다. 설명되는 굳이는 기록의 조건이 되고, 설명되지 않는 굳이는 절차의 잔해가 된다.
결국 질문은 간단하다. 이 굳이는 무엇을 남기는가. 나중에 누군가가 기록을 찾고 믿고 해석하고 책임의 경로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그저 오래전부터 굴러왔기에 오늘도 굴러가는가. 버튼 하나 누르자고 왜 이 난리냐. 좋은 질문이다. 다만 기록관리에선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이 난리는 나중에 무엇을 설명하게 될까.
골드버그 장치는 굳이 돌아감으로써 우리에게 재미를 준다. 기록관리는 굳이 돌아감으로써 미래의 누군가를 덜 헤매게 해야 한다. 둘은 여기서 닮았고 여기서 갈라진다. 전자의 굳이는 효율을 희극으로 만들고 후자의 굳이는 효율을 미래로 미룬다. 그리고 남긴다면, 적어도 보이게 해야 한다.
골드버그 장치도 그 정도는 한다.
(아니면 아주 완벽하게 작동해서 아무도 그 난리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거나.🥷🏻)
참고자료
Honda UK. Cog: The Most Influential Advert Ever?
https://www.honda.co.uk/engineroom/cog/
Rube Goldberg Institute. Rube Goldberg: Artist, Inventor, Adjective. https://www.rubegoldberg.org/all-about-rube/a-cultural-icon/
Rube Goldberg Institute. The Official Rube Goldberg Machine Contest®. https://www.rubegoldberg.org/rube-goldberg-contests/the-rube-goldberg-machine-contest/
Rube Goldberg Institute. Past Task History. https://www.rubegoldberg.org/rube-goldberg-contests/past-task-history/
Wilson, E. (2018). The Story Behind Rube Goldberg’s Complicated Contraptions. Smithsonian Magazine.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story-behind-rube-goldbergs-complicated-contraptions-180968928/
Wikipedia. Rube Goldberg machine. https://en.wikipedia.org/wiki/Rube_Goldberg_machine
Christopher Roosen. (2022). Our Rube Goldberg Approach To Modern Systems. https://www.christopherroosen.com/blog/2022/11/7/our-rube-goldberg-modern-syst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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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
너어무나 즐겁고 멋진 글입니다. 훔치고 싶네요. 좋은 인사이트 얻어갑니다!
공드리
우와아!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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