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예술레터(연대)

관계와 경계

Boundary _이 상황은 나를 어떤 경계에 서게 하지?

2024.03.31 | 조회 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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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예술

가부장제에서 막 빠져나온 여성이 자신만의 여성성을 찾아가는 이야기, 지금까지와 다른 구성의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시도

"나의 경계선은 나만의 내밀한 정체성을 보호하고 나의 선택 권리를 지켜준다."

시인 제라르맨리 홉킨스


감정만다라_이기로운 꽃
감정만다라_이기로운 꽃

 

관계와 경계(Boundary)

결혼 졸업 이전과 이후. 그 사이에 겪는 가장 큰 문제는 기존에 있던 바운더리(경계/영역/보호/교류), 즉 경계가 깨어진다는 점이다. 이미 깨어진 당신의 경계는 기존의 틀을 유지할 수 없으며 새로운 구성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에 대해 신중히 응답하는데 바운더리 심리학이 도움이 된다. 바운더리 심리학은 지금 모습으로 충분하다는 위로의 심리학이 아니라 당신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변화의 심리학이다. 바운더리 심리학에서는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의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를 바운더리(Boundary)라고 한다. 이 개념은 관계의 문제를 경계(Boundary)의 문제로 바라보게 한다. 깨어진 관계를 허망하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깨어진 관계의 일그러진 바운더리를 건강하게 재구조화할 수 있을까? 라는 성장의 질문으로 나아가게 한다. 

원하지 않았던 변화라고 하더라도 찬찬히 충분히 돌아보면 배울 점이 있다. 외상 후 성장은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조심스러운 과정이다. 고통의 경험을 돌파하거나 통과하는 것, 견디는 것 만으로도 벅찬 순간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통과하고 나면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변화는 일어났다. 원치 않는 변화였다 하더라도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삶으로 나아갈 수 없다. 변화에 대해 저항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고통을 자원화하여 성숙해지겠다는 결정을 할 때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포용이다. 이때의 포용성은 포기나 체념이 아니다. 고통스러웠던 경험이었더라도 일어난 경험들을 소화하겠다는 용기있는 결정이며 일어난 변화들과 함께 흐르겠다는 예측불가능한 삶에 대한 열린 마음이다. 살아남았고 살아가겠다는 삶에 대한 단호한 의지다. 

 

이 상황은 나를 어떤 경계에 서게 하는가?

결혼 전의 당신과 결혼 후의 당신, 그리고 결혼 졸업 후의 당신은 어떤 바운더리 유형에 속해 있을까. ‘성장하는 삶’이라는 화두로 꾸준히 활동해 온 정신과 의사 문요한의 <관계를 읽는 시간, 나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바운더리 심리학>에서는 바운더리의 유형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바운더리는 그 기본 틀이 어린 시절 양육환경 속에서 형성된다. 이 틀은 '아이-어른'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시절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틀이라고 하더라도 '어른-어른'의 관계에는 맞지 않으며 재구성 없이 성인관계에 적용될 때 문제가 일어난다.  관계의 재구성, 바운더리 재구성을 위해서는 먼저 지금 현재 내가 무의식적으로 관계에 적용하고 있는 기본 틀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육 환경 속에서 자아의 분화에 따른 바운더리 유형의 기본 틀에는 다음의 3가지 유형이 있다. 

1. 미분화 유형(희미한 바운더리): 타인중심적 인간관계(사회적 뇌에 치중-감정조절에 취약-특히 불안)

2. 안정적분화 유형(유연한 바운더리)

3. 과분화 유형(경직된 바운더리): 자기중심적 인간관계(생존의 뇌에 치중/ 감정조절 취약-특히 분노)

결혼 전 자신의 자아가 안정적 분화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결혼 후의 여성은 기존의 바운더리가 일그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음은 일그러진 바운더리 4유형이다.

1. 누군가와 불편해지는 게 싫은 순응형(미처 해소되지 못한 분리불안)

2. 네가 기뻐야 나도 기뻐 돌봄형(과잉책임감)

3. 나한테 신경 좀 쓰지마 방어형(뿌리깊은 불신)

4.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지배,착취/분노 뒤 수치심)

결혼 전에 안정적 분화 상태로 자신의 자아를 균형있게 유지하며 타인과 관계를 맺어 왔던 여성이, 아내와 엄마가 되는 순간 순응형이나 과잉책임감형처럼 미분화 유형으로 바운더리가 희미해지는 경험은 결코 낯설지 않다. 우리는 무수히 목격하고 경험해 왔다. 이런 바운더리 일그러짐 현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헌신적 사랑과 이기주의의 금지라는 여성/모성에게 강요되는 사회 문화적 요구의 영향력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에서는 이러한 현상 속에서 사랑과 이기주의에 대한 재정의의 필요성에 대해 논하는데 1970년대의 글임에도 여전히 강력한 울림을 준다. 

여전히 선택은 ‘사랑’- 여성적인 어머니의 사랑, 이타적인 사랑- 문화 전체가 규정하고 지배하는 사랑과 이기주의- 남성들이 종종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창조와 성취와 야망을 추구하면서 그래도 되는 것처럼 정당화하는 힘 사이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성이 아니면, 우리의 운명은 여성의 이타적인 사랑이어야 하는가? 이제 우리는 그 양자택일이 틀렸음을 안다. ‘사랑’이라는 말 자체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도 안다.

에이드리언 리치/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사랑은 자기돌봄과 타인돌봄 사이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안정적인 자아 분화 상태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건강할 수 있다. 결혼 졸업 후, 현재의 내가 건강한 관계-경계 재구성을 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과제가 놓여 있다. 하나는 경계 세우기고 다른 하나는 경계 허물기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아내, 엄마라는 역할들이 생겼을 때 나의 경계는 불확실 해졌고 무조건적으로 주는 관계로 나라는 자아의 경계를 완전히 해제하고 가족들과 나를 하나처럼 여겼다. 그렇게 과도한 헌신의 상태가 남긴 것은 결국 분노서린 피로이며 자기돌봄의 방치였다. 아이들의 요구와 남편의 요구를 최우선으로 하며 '지침 그 이상의 소진 상태'에 갈 때 까지 왜 거절하지 못했는가, 왜 스스로를 과도한 헌신으로 몰아갔는가. 그 뿌리에 가보면 ‘이기심’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 '이기적이어선 안돼, 이타적인 것이 여성/모성으로서 추구해야할 이상적인 정체성이야. 사랑한다면 나를 내려놓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돌봐야 해.'  라는 사랑과 헌신을 동의어로 두던 여성/모성적 사랑에 대한 정의가 있다. 이런 일그러진 경계에서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이기성과 사랑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했다. 브레네 브라운의 진정성에 대한 정의는 이기심과 사랑에 대한 가부장제에서 형성된 주입된 신념을 정화해준다. 

진정성의 핵심은 불완전하고 취약해질 수 있는 용기이며경계를 세우는 용기다.

브레네 브라운


새로운 경계의 설정하기: 경계 세우기와 경계 허물기

건강한 경계 재설정을 위해 먼저 해야할 것은 경계 세우기였다. 나를 돌보기 위해 아이들의 요구와 타인의 요구를 거절해도 된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자기 사랑이라는 것이 새로이 세운 사랑에 대한 재정의이다. 또한 자기 사랑과 타인 사랑의 균형이야 말로 진정성있는 사랑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이기성을 재정의하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경계 세움의 지혜를 ‘이기로움’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기성을 지혜로움의 연장선 안에서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두번째로는 경계 허물기다. 결혼 졸업 이후 아이들의 아빠이자 나에게는 x가 된 그에 대해서 초반에는 자기보호를 하고 싶었고 그로 인해 급격히 일그러진 바운더리 유형 중 ‘방어형’을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기보호의 욕구로 인한 것이라도 ‘방어’의 경직성이 강해지면 결국 관계가 폐쇄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아이들과 아빠와의 관계의 가능성도 막히게 된다.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지원하는 상호돌봄 Co-parenting 도 어렵게 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얼마만큼의 자기 보호와 자기 개방을 원하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자기보호이지 관계의 단절은 아니기에 느슨한 연결을 열어놓기를 원했다.

관계에 대한 개방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고 취약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경계 허물기라는 과정에서는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지 거리 조정을 위한 시도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 그로 인한 불편함에 대해 자신을 내어놓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용기는 가치있다. 존중된 경계에 대해서는 '네'하고 열어놓고 무너진 경계에 대해서는 '아니오.' 라고 거절하며 진정성 있는 경계 재구성을  경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장하는 삶이며 경계가 존중되는 관계를 새로이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이다. 

 

Flower of glory_이기로운 꽃 나는 어떤 경계에 서 있지? 지금 마주한 아니 마주하기 싫은 이 상황은 나를 어떤 경계에 서게 하지? 누군가 나를 경계로 밀어 떨어지는 듯 싶었는데 아니, 나는 올라가기를 기어가기를 매달리기를 멈춰. 떨어지듯 힘을 빼 바람에 몸을 맡기어 날아가고 있었네. 나의 자리, 나의 땅으로. 퀀텀 점프. 이기심에 대한 불편함에서 고유성에 대한 존중의 자리로, 헌신에 대한 공포에서 소명이 있는 영광의 자리로, 애쓰며 살던 고단함에서 해야할 일 사라진 안식의 자리로. 그 도약의 자리에 온전히 그라운딩. 나를 경계에 서게 한 삶의 가시가 실은 나의 내면을 ‘환기’시키러 왔음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날.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그래, 계속해서 지금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기를 선택하는 것. 그렇게 지금 나로 사는 영광을 다른 누가 아닌 내가 다른 어디 아닌 지금 온전히 음미하는 것. 더이상 해야할 일이 가야할 곳이 사라진 지금 바로 내가 있는 이 영광의 자리에 화알짝 핀 이기로운 꽃을 보며 감탄하는 것. ‘참’ 알음답다(알아차리다+아름답다)!

 

To. 모두 다 돌봄예술가!

성인 대부분은 건강한 경계를 원하지만 너무 경직되거나 너무 약한 경계가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유용할 때와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3월,

경계를 무너뜨리고 개방했던 관계가 있나요?

혹은 경계를 설정하기 위해, 거절의 표현이나 부탁의 표현을 한 관계가 있나요?

다가오는 4월,

적합하고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는 시도를 어떤 관계에서 해보고 싶으신가요?

서로의 경계가 존중되는 환경이 우리 주변에 많아지기를 바라며

각자의 땅에서 이기로운 꽃을 피우는 4월이 되기를 바라며

이번 돌봄예술레터를 마칩니다. 

From.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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