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요리가 취미라지만 각잡고 예쁜 그릇에 담는 것도 한두번이지 일상 생활에서 매일 그렇게 먹을 순 없다. 부끄럽지만 글을 쓰고자 요리를 한 것을 고백한다. 원래는 매일 쿠차라만 먹는데 다 지어낸거다. 시즌 1때 내 첫번째 글은 맥도날드를 매일 먹는다며 난데없이 화내는 글이었으니 내 요리하는 근성은 사실 그정도 밖에 안 된다. 특정한 음식의 계시가 내려오지 않는 이상, 맥도날드 두 달, 서브웨이 두 달. 대부분 매일 재미없는 음식을 먹으며 그냥 그렇게 산다. 그런 내가 이번 주에 먹은 재미있는 음식을 떠올려 보니, 공교롭게도 모두 친밀한 사람들과 함께한 외식이었다. 밥 먹고 사는 건 다들 똑같지만, 나누는 이야기는 매번 다르다.
신동양반점 깐풍표고
무려 40년이나 되었다는 여의도 신동양반점. 건물 자체가 낡아 연식이 느껴졌다. ‘얼마나 맛있길래 여기서 이렇게 살아남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나는 오래된 화상 중국집은 맛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화이트보드에 큼직하게 적힌 예약자 명단이 눈에 띄었다. 기대감이 더 부풀었다.
중국집답게 메뉴는 백여 가지가 넘었고, 유니짜장이 아닌 유미짜장, 브로콜리가 아닌 브로코리라는 표기조차도 내 식욕을 자극했다. 이 가게는 채식을 지향하는 친구가 고른 가게다. 채식 메뉴 책자도 따로 준비되어 있다. 이 날은 깐풍표고, 채식 마파두부, 채식 간짜장을 시켰다. 특히 깐풍표고가 정말 맛있었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한 저녁 식사였는데, 그 중 한 명은 10년 만에 봐서 정말 반가웠다. 변하지 않은 모습이 마치 신동양반점 같았다. 우하하. 또 다른 친구는 돌고 돌아 한국에 왔으니 이제 외롭지 않느냐고 물어줘서 마음이 울컥했다. 오래된 친구들과 비닐 깔린 중국집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 여행을 마친 듯한 기분으로 가게를 나왔다.
오징어볶음과 고등어구이
회사 근처에 생선구이와 오징어볶음을 파는 밥집이 생겼다. 찌개류를 시키지 않으면 미역국까지 무한리필로 제공되는데, 혼자 사는 직장인에게는 정말 소중한 밥집이다. 자취생이 해산물을 집에서 손질하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일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이 집은 오징어볶음이 맛있는데, 동료 중 한 분이 '섹시한 오징어볶음'이라고 표현했다. 맛이 상상이 가시나? 불맛이 가득하고 칼칼한 양념이 특징이다. 오징어볶음 사진은... 없다! 청순한 맛의 고등어구이도 일품이다. 우하하2
호라파의 태국 음식
한 달 전부터 예약해 둔 호라파. 가장 친한 친구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저녁에 방문했는데, 이전 방문 때 시켰던 메뉴를 거의 그대로 주문했다. 마크아야오텃쌈롯, 후무양, 까이고를레.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함께 간 친구에게 5점 만점에 몇 점 줄 것이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그냥 맛있다는 말로 끝내고 싶고 점수 매기기 싫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사실 나는 단순히 채점 하자는 게 아니라, 내가 맛있게 먹었던 부분을 이야기하며 어떤 점이 좋았는지 공유하고 싶었다. 이 음식에서 어떤 맛이 낯설었는지, 혹은 싫었던 점이 있다면 그걸 듣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맛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게 내겐 즐거움인데, 그게 잘 전달되지 않아 아쉬웠다. 좋아하는 친구인 만큼 감상의 온도를 맞추고자, 하고 싶은 말을 삼키려고 노력했다.
이번 주는 위와 같은 대화들이 머리 한 구석에 남았다. 중학생 때, 한 달 치 식단표를 되짚어보며 그 날 나눴던 대화들을 다시 떠올리는 걸 좋아했는데, 커서도 여전히 그러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 J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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