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밥캅스 S02.03. 비골리 면으로 이탈리아 사람들 골려주기

예끼 음식이란 자고로 맛있으면 그만이다

2024.11.19 | 조회 60 |
0
|

밥캅스

재미없는 밥상, 너 오늘부터 범인해라

 Y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멋진 사진들을 보내주었다.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리는 사진, 국자째로 푸실리를 떠먹는 사진, 기후위기(?)로 스콜이 내리는 이탈리아 풍경 등. 그 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우동면처럼 오동통한 파스타 사진이었다.

당시 Y가 보낸 비골리 사진. 닭갈비 우동 사리인 줄 알았다.
당시 Y가 보낸 비골리 사진. 닭갈비 우동 사리인 줄 알았다.

 나는 두꺼운 면을 무척 좋아한다. 쫄깃쫄깃 탄성있는 식감과 어딘가 향긋한 밀가루 냄새가 좋다. 파스타 종류 중에 알고 있던 건 리가토니나 펜네 같은 쇼트 파스타 뿐이었다. 그런데 Y가 보낸 사진 속에는 꿈에서나 찾고 있던 길고 두툼한 면이 있었다. 구멍도 뚫려 있지 않았다. 어딘가 좋은 식당을 갔을 때 한 주먹 먹어본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그 이름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비골리.

 그래서 Y에게 비골리를 사오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 면은 계란을 써서 두껍게 만들기에 생면으로만 자주 접한다고 했다. Y는 면을 구입하기가 어렵다며 대신에 비골리 뽑는 틀을 찾아보겠다고까지 했다. 나도 아쉬운 마음에 '다나와'에서 파스타 제면기를 알아보고, 당근에 키워드도 등록해두었었다.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고? 짜잔!  Y는 결국 건면 비골리를 어떻게든 구해다 주었다. 그 면은 마치 사포 80방으로 박박 갈은 듯한 모양새에 바짝 동결건조를 시킨 듯한, 어딘가 징그러운 살결을 가지고 있었다. 샴푸 광고에 나오는 심하게 손상된 머리카락의 현미경 사진처럼 보였다. 혹자는 이런 좋은 면을 보고나니 마트 파스타면은 노란 고무줄 같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째 식욕 뚝뚝 떨어지는 이야기만 했지만 이러한 거친 표면 덕분에 소스가 쏙쏙 밴다고 했다.

바세린을 발라주고픈 비골리 면 
바세린을 발라주고픈 비골리 면 

 그래서 나는 그 면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은 절대 상상하지 못할, 미소된장 파스타를 해먹었다. 두꺼운 면에는 농후한 맛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본 식품 된장. 바로 너다. 짜디 짠 자극과 발효의 감칠맛이 이 면과 매우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 미소된장은 지난 5월, 전 회사 동료 리사가 한국에 놀러왔을 때 사다 준 것이다. 또 생일 선물로 받은 부채살도 구워 넣었다. 여러모로 친구들 덕분에 연명하는 나다.

채끝살 넣은 짜파구리 아닙니다
채끝살 넣은 짜파구리 아닙니다

 먼저 마늘, 그린빈, 부채살을 주물팬에 차례로 굽고 꺼내놓았다. 그 기름에 미소된장을 볶다가 면수를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 짠 맛이 너무 날카로워서 발사믹 식초를 살짝 넣었더니 웬 걸 먹을만해. 모처럼 멋진 재료들로 즐겁게 요리를 했기에 예쁜 면 그릇에 옮겨 담을 때도 정성을 들였다. 파마산 치즈도 괜시리 갈아서 올려봤는데, 후회했다. 소태같이 짜졌다.

그래도 나 혼자 먹기 아쉬울 만큼 맛있었다. 모험을 해본 보람이 있었다. 특출난 요리 기술이 없다보니, 이렇게 무모함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면 괜히 비공식 루트로 렙업한 기분이 들어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남은 비골리 면으로는 어떤 요리를 해볼까? 물론 한 번은 정석으로 먹겠지만, 불경하게 소시지를 잔뜩 넣고 달걀 후라이까지 올린 케챱 듬뿍 나폴리탄도 좋을 것 같다.

- J의 글 -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밥캅스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밥캅스

재미없는 밥상, 너 오늘부터 범인해라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