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의 나는, 시키는 것은 별말 없이 잘 하고, 가끔 학원이 끝나고 친구들과 몰래 놀러 가는 것 말고는 크게 일탈이랄 것이 없었던 아이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튀지 않는, 개인의 취향이랄 것도 없는 무색무취의 인간이었다고나 할까. PC방에 가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PC방에 가서 게임을, 노래방에 가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노래하기가 싫어도 억지로 노래방에 함께 가곤 했다.
그런 나에게도 좋아하는 음식을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음식들이 있었다. 순살 양념치킨 맛집이었던 둘리 치킨, 전주 비빔 삼각김밥, 치킨 마요 한솥 도시락같이 별생각 없이 메뉴를 골라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들이더라도 이런 간편한 음식들을 먹으면, 이상하게도 먹는 동안 나의 머릿속이 비워졌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먹었는지도 모르게 배에 가득한 포만감 만이 남아있었다.
대학교, 그리고 군대를 거치며 새로이 인생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취향’이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평소에 읽지 않았던 책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 없이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이런 고민을 가지고 어떻게 미래를 살아내야 할까 막막한 마음이 강하게 머릿속을 지배했었다.
그때부터였다. 취향을 생각하며 살고 싶어졌다. 하자는 대로 하고, 시키는 대로 먹고, 트렌드를 따라가려 노력했던 것들을 덜어냈다. 누군가 무엇을 함께 하자고 하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지를 넘어, 왜 하고 싶은지, 또는 하기 싫은지를 생각하려 노력했다. 밖으로 보이는 이파리와 꽃을 피우는 것 보다도 나의 뿌리가 어디로 얼마나 뻗어나가는지 더 궁금해했다.
이제는 적당할 만큼의 시간이 흘러, 조금 귀찮을 정도로 내 취향을 뚜렷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가장 열심히 한 일은 먹고 마신 것이니, ‘밥 한정 취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밥을 생각할 때면 할 말도 많고, 할 일도 많다. 개진 햇감자를 얻어 단호박과 로즈마리로 직접 뇨끼를 만들고, 제대로 된 파스타를 가족과 나누고 싶어 이탈리아 친구가 만든 토마토소스와 사르데냐에서 사 온 보따르가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 친구와 밥 약속을 잡을 때면 언제나 밥집 찾기가 최우선 과제다. 마음에 꼭 드는 장소를 찾을 때까지.
그래서 나는 조금씩,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귀찮아지는 중이다. 내 삶을 더 단순하게 만든다는 목적으로 나의 머릿속까지 갉아먹는 음식을 먹던 습관은 덜어내고 있다. 좋은 식재료가 생기면 어떤 요리를 할까 고심하고, 궁금하던 식당들에 가서는 종종 실패도 한다.
무취향의 나는 과거에만 남아있다. 아주 얇고도 둥글었던 나의 취향은 이제 제법 시원하게 뾰족해졌고, 덕분에 꽤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귀찮고 어려울수록 내가 재미있게 사는 방식이라고 믿으며.
- Y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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