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은 잘 들 보내셨나요? 자고로 자취생인 나에게 복날이란 조금 비싼 음식들도 핑계대며 챙겨먹을 수 있는 날이다. 엄마가 보내 준 백종원 삼계탕도 먹고, 장어덮밥 맛집도 알아보며 침을 흘렸다. 또 중복 점심에는 맥도날드에서 쿠폰을 받아 굳이 맥치킨 크리스피도 먹었다. 읽으면 아시겠지만, 이제 영양은 아무 상관 없다. 이렇게 밥캅스 글감이라도 남았으니 챙길 거 다 챙겼다고 본다.
1) 초장
내 기억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복날의 기억은 초등학교 때다. 어릴 때 난 닭껍질만 즐겨 먹었다. 그리고 퍽퍽살은 초장에 찍어먹었다. 괴식 그 자체라고? 먹어보고 말씀하세요. 특히 닭가슴살이 초장을 만나면 촉촉하게 깔끔하고 산뜻해진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난 초장이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중학생이 되어서야 백숙에 먹기에는 드문 양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친한 YE,SJ와 뭘 찍어먹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이다. 성인이 되고 서울에서 헤쳐 모인 친구들도 아니고 우리 셋 다 대전의 같은 동네 출신인데 집마다 뭐 그렇게 달랐는지. YE는 클래식한 소금+후추 가끔 고춧가루가 섞인 양념, SJ는 간장. 지금 생각하니 셋 다 맛있을 것 같은데 그 땐 간장이 말이 되냐, 초장이 더 말이 안된다 그런 말들로 투닥대며 하교한 기억이 있다.
2) 정성
진짜 양념 얘기를 할 줄 알았겠지만 뻘소리 한 번 해보겠다. 그만큼 유별난 재료니까.
도토리를 선산에서 주워서 벌레를 잡고, 돌로 밟아 껍데기를 깨고, 손질해서 묵을 쑤기까지 하는 우리 엄마… 성격 상, 보양식은 더더욱 대충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왜일까, 그 헌신적인 복날의 삼계탕을 우리집에선 항상 그냥 백숙이라 불렀다. 그치만 하나 하나 따로 손질한 대추, 인삼, 닭고기에 온갖 한약재를 달여 넣은 밥이 아닌 약이었다. 엄마가 징그러워하면서도 닭 안에 찹쌀까지 듬뿍 넣었었다.
나이 먹고 괴팍한 성격이 사라진 우리 아빠는 때때로 감수성에 젖어 엄마를 뮤즈삼아 글도 쓴다. 내 밥캅스 DNA의 원천. 주 내용은 엄마의 수고 예찬이다. 이제까지 가정을 돌봐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그 마음씨를 존경한다고 쓰신다.
나도 식사에 대한 뉴스레터를 적어야지 마음을 먹고 글감을 찾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여기까지 왔다. 식사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니 엄마의 밥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3) 죄책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염소탕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사실 그건 보신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와서 구글링 해봐도 사진만 가지고는 구분이 안 된다. 어쨌든 멋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장조림같이 검은 고기를 죽 죽 찢어가며 먹은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고기보단 들깨가루에 초장을 섞은 양념 맛으로 먹었었는데... 인생에 딱 한번 먹은 염소탕이 왜 이제까지 지워지지 않을까? 마음 속 깊은 곳에 보신탕일 거라는 의심과 함께 남았기 때문일거다.
우리 집은 개를 키우면서도 개를 먹은 적이 있다. 누군가 어느날 개고기를 선물해줬다. 그걸 엄마가 징그러워하면서도 직접 양념해서 요리하셨다. 뽀식이는 항상 식사를 할 때마다 식탁 옆에서 고기를 달라고 쳐다보곤 했는데 그날의 뽀식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기억에서 지워버렸나보다. 나는 마음이 찌르듯 아파 먹지 못했다. 선물 받은 아빠만 조금 먹었다. 그 후로 우리 가족이 개고기를 먹는 일은 영영 없었다.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에 멍이 든 기분을 느낀다.
읽고 계시는 독자분들에겐 어떠한 복날의 기억이 있을지 궁금하다. 아무것도 안 먹었어도 괜찮다. 주변에 "오늘 복날이래요." 하고 알려주는 사람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궁금하다. 별다를 것 없고 더위에 짜증만 나는 여름 날에도, 이열치열이라는 말로 더위마저 기념하며 사는 사람들과 인상 한 켠에 남는 대화를 나누었다면 그게 복이니까! (복날의 그 복 아닌 거 안다.)
- J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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