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소한 뇨끼 일대기 인트로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면 얼른 복습하고 오자. 3분이면 된다.
*주말에 뇨끼를 만들어 보았다면? 귀찮음을 이겨내고 수고로움을 견뎌낸 독자에게 박수를 보낸다(본인의 레시피를 댓글로 남겨주면 나의 뇨끼 레시피를 메일로 알려드리겠다!).
A의 할머니는 우리에게 15분 뒤에 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는 셀러 위층에 있는 주방으로 사라지셨다. 이 말을 듣고는 집중이 될 턱이 있나. 붙이던 라벨을 정리하고 뇨끼 만드는 모습을 보기 위해 재빨리 할머니가 계신 주방으로 뛰어올라갔다.
어느새 감자를 다 삶아 꺼내 놓으셨고, 작년에 직접 기른 토마토로 만든 소스를 꺼내와 프라이팬에서 약하게 끓이고 계셨다.
‘Vorrei imparare fare gli gnocchi’. A에게 내 발음이 맞는지 수차례 물어보고 최대한 발음을 굴려 할머니에게 말했다. 뇨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수가 많지 않으신 할머니는 흐뭇하게 웃으며 짧게 말씀하셨다. ‘Sì, è semplice(그래, 근데 별거 없어)’.
어려운 스킬이라거나, 정확한 계량이랄 것도 없었다. 연기가 아직 허옇게 올라오는, 갓 삶은 감자의 껍질을 벗기고 감자 전용 매셔로 굵은 알갱이가 없도록 잘 으깨준다. 깨끗히 닦은 주방 상판에 감자를 올리고, 밀가루를 툭툭 뿌려가며 반죽을 만들어준다. 이 때, 과하게 치대지 않고 설렁설렁 섞어주는 것이 포인트.
어느 정도 반죽이 잘 뭉쳐질 정도가 되면, 동그랗고 길다랗게 말아 칼로 툭툭 끊어주어 반죽을 완성한다. 흔히 알려진 레시피와는 다르게 계란은 사용하지 않으셨다. 오직 감자와 밀가루만을 사용한 뇨끼가 진짜라며,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계란없이 만든 뇨끼는 바로 전부 조리해야 된다며, 반죽이 끓는 물에서 떠오를 때까지 잠깐 삶아 아까 한 번 볶아둔 토마토 소스에 살짝 버무려 내셨다.
같이 먹으라며 구운 빵을 함께 내어주신 식탁에는 TV를 보며 뇨끼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본인의 밥을 먹는 할아버지도 계셨다(이탈리아에서는 언제나 빵이 식탁에 있다. 한국인의 밥처럼). Buon appetito! 잘 먹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입에 한 입 가득 넣은 뇨끼를 먹고 감탄사를 연신 외치는 나를 보고 웃으며 본인이 직접 만든 와인을 따라주신다.
입에 넣으면 퐁실하게 녹아내리는 뇨끼를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해치워 버리니, 뇨끼만 먹어서 배가 차겠냐며 할머니가 각종 내장을 이용한 요리인 트리빠(Trippa)를 한 냄비 가져오신다. 물론, 다 비운 와인 잔은 이미 할아버지가 채워놓으셨다.
뇨끼 레시피를 자세하게 노트에 기록하며 제일 먼저 막스를 떠올렸다. 덴마크로 돌아간 첫날이자,막스와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날에 그의 집을 찾아가 이탈리아에서 배운 그대로 뇨끼를 만들어 주었다. 마침내 ‘괜찮은 맛의 뇨끼다’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의 뇨끼를 먹은 막스와 다음 뇨끼 나잇을 기약하며 한국에 돌아와서는, 엄마와 아빠를 위해 제철 감자와 단호박으로 주방을 잔뜩 어질러가며 뇨끼를 만들어 나눴다.
이탈리아에서 뇨끼를 만드는 법을 터득하여, 드디어 제대로 된 뇨끼를 만들 수 있는거냐 묻는다면 그저 배부르게 뇨끼를 먹었던 그 날을 떠올리며 입맛만 다실 뿐이다. 뇨끼를 해달라는 손자와 그의 친구의 부탁에 망설임없이 뇨끼를 만들어준 할머니와 긴 말없이 흐뭇하게 웃으며 와인을 따라주던 할아버지가 사실은 먼저 떠오른다.
나의 짧고 소소한 뇨끼 일대기는 결국 끊임없는 나눔의 연속이었다. 나만을 위한 뇨끼는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 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은 나눌 때 그 기쁜 마음이 돌이 떨어져 일어난 물의 파동처럼, 더욱 커진다.
다음에 뇨끼를 요리할 때에는, 뇨끼를 나누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서 요리해 보자. 그것이 가장 중요한, 맛있는 뇨끼를 만드는 비법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고, 그렇게 요리하고 있다.
- Y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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