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합정에서 J와의 회동이 있었다. J가 제시한 수많은 합정 맛집의 홍수 속에 결정장애가 온 나는 마침 그 날따라 휴무인 식당을 골라버렸다. 뒤늦게 알아채, 약속시간이 다 되어서야 저녁 먹을 식당을 고를 수 있었고, 그렇게 고른 식당이 라몽림과 콩청대. 대단한 밥캅스인 우리는 고민고민하지 않고 둘 다 가기로 했다. J와 나는 먼저 라몽림에서 가벼운 한 끼를 마치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콩청대로 향했다. 우리가 대식가는 아니지만, 콩국수로 합정에서 힘깨나 쓰고 있는 콩청대를 밥캅스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마감을 1시간 앞둔 늦은 저녁 시간에 매장에 들어섰다. 식사를 하고 있던 J의 직장 동료와, 방금 매장에 들어와 메뉴를 고르고 있던 나의 과거 직장 동료들을 우연히 마주쳤으니, 얼마나 맛집인지는 먹어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콩청대의 메뉴는 가짓수가 적지는 않았지만, 그 컨셉이 아주 확실하다. 국산 콩으로 만들어내는 콩물과 콩국수는 기본이요, 직접 만든 두부를 활용한 순두부찌개,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를 활용한 비지찌개, 그리고 안주 삼아 먹기 좋은 두부 김치 등의 콩스러운 메뉴들이 탐스럽게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 일찍이 콩국수를 먹으리라 다짐했던 나는, 주문하기도 전부터 다음엔 어떤 메뉴를 먹어보아야 하나 콩청대에서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주문한 콩국수가 나왔다. 표면에 생긴 작은 공기 방울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정도의 걸쭉한 콩 국물에 오이, 토마토, 삶은 계란이 고명으로 올라간 아주 정석적인 콩국수였다. 소금을 살짝 얹어 한입 맛을 보았다. 국물은 묵직하지만 되직하지 않았고 콩의 고소함이 입안 한가득 채워졌다. 깨나 다른 재료를 섞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한 맛이랄까.
배가 불러 콩국수를 남기면 어쩌나 생각하던 J와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남은 것은 아주 약간의 건더기와 콩 국물, 그리고 입안의 진한 콩의 여운이었다.
콩청대의 콩국수처럼, 밥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음식을 만날 때면 참 반가운 마음이 든다. 가끔은 반가운 마음을 넘어 고맙기까지 하다. 좋은 재료를 고집하고 식당이 추구하는 맛을 고집하고 유지하지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레스토랑에서 일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들과 진한 우정을 쌓고 싶다. 자주 찾아가서 사장님과 소소하게 인사도 하고, 가끔은 여러 이유로 잠시 멀어지기도 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반갑게 식사를 하러 가는 그런 우정.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부단히 서로 노력하게 되는 그런 우정 말이다.
- Y의 글 -
*밥캅스 시즌 1은 여기서 마칩니다. 주말에 보내드리는 에필로그 글로 짧은 후기를 대신하겠습니다.
*밥캅스의 글이 여러분의 식탁에 불만과 만족과 관심을 가져다 주었기를. 그럼 오늘도 맛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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