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캅스 이름에 걸맞게, 내가 좋아하는 마실 거리에 대해 불만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을 일이 있었다. 얼마 전, 2024년 '세법 개정안'이 발표되었다. 여기에는 막걸리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나의 관심을 무척이나 끌었고, 또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세법 개정안'이지만, 막걸리에 대한 어떤 개정된 부분이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서 직접 정부의 보도자료를 찾아보았다.
'민생 경제 회복 - 소상공인, 중소기업 지원 항목'이라는 카테고리 아래에, ‘주류 관련 제도 개선’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내용은, ‘주류 산업 지원’의 이유로 향료와 색소를 첨가하여 만든 막걸리도 ‘기타 주류’가 아닌 ‘탁주’로 분류가 가능하게 개선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밤바 맛 막걸리, 바나나 맛 막걸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해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막걸리들은 사실 '진짜' 막걸리가 아니다. 막걸리가 속한 '탁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되니, 라벨 어디에도 막걸리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개정안이 나왔을까 궁금했다. 호기심에 조금 더 찾아보니, 기재부의 세제실장은 이에 대해 "조금 더 다양한 탁주가 나올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뉴스 기사를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양조장에서 누룩부터 막걸리까지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낸 '진짜' 막걸리 보다, 불닭 맛, 엽떡 맛, 마라 맛, 탕후루 맛 막걸리, 그리고 제로 막걸리를 더 쉽고 빠르게 만나볼 것 같다.
집에서 막걸리를 빚어 본 경험이 있는가(있다면 나눠마시자).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쉼 없이 바쁘게 달려온 한국에서 일가 일주의 문화(집집마다 술을 빚는 문화)는 사라졌다. 그 대신, 사회를 열심히 굴려온 국민을 위로해 준 것은 값싼 희석식 소주와 아스파탐을 섞은 막걸리였다.
우리의 애환을 보듬어주는 소주나, 맥주, 막걸리를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에서조차 한국 술을 와인, 위스키, 사케 등의 해외의 전통주보다 한참 아래로 보는 현실이 참 아쉬울 뿐이다.
우리나라의 술이 초록색, 파란색 병의 소주, 맛이 티미한 맥주, 바나나맛 막걸리로 대표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아주 거창한 이유는 없다. 저렴한 술보다도, 한국에서 나는 좋은 재료로 만든 한국 술을, 해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맛있어서 또 찾게 되고, 그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전통주들을 최근 들어 많이 접하게 되었다. 트렌드를 이용한 한 철 장사의 도구가 아닌, 본인만의 철학을 담은 술 말이다. 이런 전통주를 만드는 양조장들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본인의 색을 끝까지 유지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오늘도 나는 궁금했던 전통주를 참지 못하고 구매해 집에서 마셔보고 있다.
뉴스 기사에서 시작해, 열받은 나의 마음을 천천히 글로 녹여냈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쉽게 잊히는 작은 소식일 수 있겠지만, 내 음주 가무 인생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공감은 차치하고, 이 글을 읽고 세법 개정안은 잊어도 내가 어떻게 만들어진 술을 마시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어쨌거나, 우리 집 냉장고의 막걸리는 오늘도 묵묵히 숙성되고 있다.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 만족하는 술을 빚게 된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과도 함께 맛볼 수 있기를 소소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막 걸러 막걸리라지만, 막 만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 Y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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